다른 게 뭐, 어때서?
내가 자주 가던 카페에 알바생이 하나 있었다. '써니'라는 이십대 중반의 여자였는데, 짧은 머리에 어지간해서는 웃질 않아서 첫인상이 차가웠다. 자주 드나들게 되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애교도 많고, 엄청 재치있는 친구였다. (*써니는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하루는 써니가 몹시 우울해했다. 왜 그래, 물어보니 얼마 전에 친구가 자살했단다. 헉. 어떻게!!
그런데 그렇게 자살한 친구가 무려 13명이라고 했다. 뭐라고?
“실은 나 레즈비언이에요.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는데, 거기에서 지난 5년간 자살한 친구가 벌써 13명이라고요. 믿어져요?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비로소 써니의 얼굴에 언뜻언뜻 스쳐가던 그림자가 이해되었다. 하지만 나로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지 감히 가늠해볼 수도 없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힘들어야 할까?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 순 없는걸까? 문득 호주에서 만났던 가족이 생각났다.
2003~2004년에 걸쳐 호주에서 1년 가까이 지낸적이 있다. 초반에 영어를 좀 익히고, 농장에서 일해서 모은 돈으로 신나게 쏘다녔다. 여행하다보니, 호주 현지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들과 아예 살아보고 싶어서 ‘우프(WWOOF)'를 하게 됐다.
우프는 문화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호주 호스트 집에 가서 반나절 정도 일해주면, 그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다. 현지인들과 함께 살아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두달 간 4군데를 방문했는데, 다 좋았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3번째로 방문했던 전원레스토랑이었다.
'서호주'에 있는 우리아저씨와 샌디아주머니네집이었다. 이들은 50대 부부로 아주 멋진 전원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었다. 레스토랑 바로 옆에는 강이 흘렀고 그림 같은 초원 위에 있는데, 주말에만 문을 열었다. 우리아저씨는 스티븐 잡스와 정말 똑같이 생겼는데 요리솜씨가 끝내줬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담당했고, 샌디아줌마는 서비스 및 경영 전반을 맡았다.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은 아주 단순했다. 주중엔 정원일을 하다가 (일이라고 해봐야 풀 뽑거나 낙엽 모아 태우는게 전부였다) 주말에는 레스토랑일을 도왔다. 설거지며 음식준비같은 일이었다. 가끔 결혼식이 열린다거나 큰 행사가 잡혀 일손이 딸리면, 이웃에 사는 '니키'와 '샘' 아저씨가 도와주러 오곤 했다.
호주는 상대적으로 결혼이나 이혼, 동거 같은 게 자유롭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정말 다양한 가족형태를 봤다.
1. 동거중인 아저씨와 샌디아줌마
처음에 봤을 때, 20살 된 딸이 있어서 나는 당연히 부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거중’이었다. 둘 다 이혼한 경력이 있고, 자식도 각기 있었다. (같이 살고 있는 딸은 샌디아줌마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었다.) 지금은 동거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흔해졌지만, 십년 전만 해도 동거는 흔치 않았고, 이혼도 대놓고 말하기가 어려웠던 때였다. 서로 '달링'이라고 부르며 아주 금슬이 좋았는데, 나까지 부러워질 정도였다.
2. 강아지를 자식 삼아 사는 아들부부
샌디 아줌마는 이미 결혼한 아들 하나가 더 있었는데, 같이 아들네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아들 부부는 아이 대신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를 낳는 대신 ‘강아지’를 키우기로 합의하고 결혼 했단다. 허걱. 요즘은 한국에서도 가끔 이런 커플을 보는데, 십년 전에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당시 나는 주위에서 이들에게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3. 미혼모 니키 아줌마
니키는 이웃집에 사는 29살 싱글맘이다. 말조련사인데, 10살난 아들을 둔 아주 씩씩한 아줌마다. 16살부터 동거해 19살에 헤어지고 지금껏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산다. 자기 형제가 9명인데, 아버지가 전부 다르다고 했다. 아버지가 4명인지, 5명인지 본인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같으면 흑역사로 감춰두거나, 울면서 할법한 이야기의 범주인데, 니키는 그런 이야기를 마치 날씨 얘기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난 더 놀라웠다. 그런 것들이 전혀 불편한 진실이 아닌 건지, 그녀의 성격이 무딘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4. 독신자 게이아저씨 샘
이웃집에 사는 50대 싱글남으로 아주 귀엽게 생기셨다. 슈렉에 나오는 당나귀 덩키와 닮았는데, 알고보니 게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태어나서 게이를 그때 처음 보았다. 그런데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샘 아저씨는 자그마한 체구에, 굉장히 친절했고 자상했다.
이상, 우리아저씨네 레스토랑에 모인 사람 일동이다.
우리로 치면 어느 하나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놀랍도록 '평범하게'들 살았다. 사실 결혼, 이혼, 동거, 미혼모는 여기선 아주 흔하고 그래서인지 누구도 눈치 주거나, 이상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모든 게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나라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평범하게 살수 있었을까??
어딜가나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모습들은 비슷하다지만, 호주는 좀 달랐다. 호주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때 일이다. 한번은 아침에 시내를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양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007가방까지 든 말쑥한 차림이었는데, 맨 발이었다. 오마이갓!!!! 그는 도심 한가운데를 맨발로 걸어가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 광경에 누구 하나 놀라거나 곁눈질 하지 않았다는 것. 난 그게 더 신기했다. ㅎㅎ
이처럼 호주에선 어떻게 살든, '아, 저게 쟤 사는 방식이구나' 해버린다. 그게 우리와 무척 달랐다. 우리에겐 어느 정도 표준화된 삶이 있다. 일정 기준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대학 나오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걸 ‘정상’이란 범주로 둔다. 대부분 그 정상의 범주에서 살아가는데, 간혹 그를 벗어나면 스스로도 불안해 하고, 주위에서도 많은 압박이 들어온다.
'대체 왜 그렇게 사는 거니? 언제 정신차릴래? '넌 왜 결혼 안 하니? 넌 언제 안정적인 직장 잡을 거니? 아이는 안 낳을 거니?' 하지만 여행을 다녀보니, 정상은 커녕 내가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위공무원을 포기하고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터키 아저씨,
일흔에 배낭 매고 젊은이들처럼 배낭 여행하던 영국할아버지,
3년째 호주에서 일하며 여행하던 이탈리아청년,
대학가기전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자 배낭 매고 떠난 네델란드 여자아이.
일흔에 캠핑카 사서 호주 전역을 여행하던 할머니까지....
삶의 여러 가지모습을 보면 볼수록, 내가 이제까지 믿고 따라왔던 수 많은 규율, 매너, 도덕... 절대적이라고 생각해온 그 모든 게 한 순간 붕 뜨는 느낌이었다. 그래, 애초 정상적인 삶 따윈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또한 우리가 사회적인 편의상, 구조상 만든 것일 뿐. 내가 믿어왔던 것들이 항상 옳거나, 절대적인 게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그러니 좀더 릴렉스~ 유연하게 살아가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