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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Sep 30. 2015

내 직업은 나다

일의 재발견 2편

내 직업은 김어준이다

  

딴지일보 총수, 야매상담가, 방송인, 벤처기업인, 작가, 정치평론가... 김어준에겐 많은 직업 타이틀이 따라 붙는다. 대체 그의 직업이 뭘까?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전 어릴 때부터 꿈을 말하라고 하면 당황했어요. 다들 직업을 얘기하는데 저는 직업이 떠오르지 않았죠. 그때는 제가 이상한 건 줄 알았어요. 나이가 들어서 여러 가지 업종을 했는데 인생 전체로 보면 그때그때 하는 업이고 나는 나로 살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직업을 물어보면 김어준이다내가 나로 사는 게 직업이지뭐, 그런 거죠.”

  





김어준은 자신의 말을 다시 이렇게 풀었다. 흔히 꿈이나 천직 찾기라 하면 직업 타이틀만 생각한다. 수많은 직업 중에 내게 가장 잘 맞는 직업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걸로 생각한다. 하지만 직업은 내가 아니라, 내가 하는 선택중 하나일 뿐이다. 정해진 답이 없다. 자신이 써낸 것이 정답인지 아는 사람도 오로지 자신뿐. 정말 자신만의 천직을 원한다면 직업 타이틀에 목맬 필요가 없다. 내가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깨닫고 어디에 그 열정과 재능을 쏟아부을지만 고민하면 된다. 고. 

  

김어준 총수는 20대를 위한 강연에서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일에 대해  생각과 그 생각을 하게 된 계기' 등을 여러 사례를 들어 말해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돌아왔다. 


한 학생이 물었다.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합니까?"

김어준 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닥치는 대로 해. 왜~ 아무도 모르니까!"

  

다른 학생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김어준 왈, "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자기계발서는 모두 사기야.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사례일 뿐. 정주영이 지금 태어났다면 그만큼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난 아니라고 봐. 성공의 비밀.. 그건 90%가 운이야. 능력은 운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거지. 매직은 없어. "


또 다른 학생이 물었다. "그럼 뭘 해야 하나요?"

김어준 왈, "재밌는 통계가 있었는데, 회사 들어가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의 공통점을 찾는 게 있었어. 20대, 30대에 엄청나게 많은 직업을 가졌고, 그 직업 간의 상호 관련성이 없더라고. 일단 해보고 싶어서 하는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관두는 거지. 다른 일이 더 땡기면 그걸 하고. 해보고 싶은 대로 도전하고, 그걸 멈추지 않지. 그래서 30대 후반까지 해봤더니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이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데이터가 쌓이는 거야. 그런 데이터로 어떤 일을 시작해서 10년이 지나고 나니 그걸 목표로 한건 아니었는데 나만의 일을 하고 있더란 거지. 한우물 파라는 것도 거짓말이야. 20대에 한우물 파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하면. 어차피 인생은 계획이 없다. 그러니 안정적이어서 하진 마. 안정적이어서 공무원을 택하는데 사실 인생 자체가 비정규직이고 불안한 거거든. "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들어온 조언들을 떠올렸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자, 선배들은, 이미 취직한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쏟아내었다. 

  

“조직에 들어가 2년은 최소한 박박 기어봐야 한다.”

“이젠 정말 한 우물을 파야할 때야.”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해봐.”

“뭘 하든 치열하게 해야 돼. 끝장 보겠다! 그 마음으로 하라고.”

들을 땐, "맞씁니다" 하다가도 돌아서면 물음표가 떠올랐다.

  

정말 한 우물 파야하나?

20대에 꼭 일해야 하나?

  


한 우물 파기의 허점

  

한우물 파기에 관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에 대해 예전에 안철수 원장이 해준 말이 있다. 

2009년 <희망제작소>에서 인턴 할 때 안철수 원장을 초빙해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안철수 원장이 이런 재밌는 얘기를 해주었다. 

  

"얼마 전 교육부에서 직업만족도 조사를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만족도 높은 직업 1위는 사진작가, 2위는 작가, 6위는 인문과학 연구원, 9위 성직자 등이었고, 낮은 순으로 1위는 모델, 2위는 의사, 3~5위는 화물/건설 노동자들이 나왔죠.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렇게 어렵게 일하는 사람들보다 직업 만족도가 낮은 게 바로 ‘의사’라는 거예요."


이 부분에서 수강생 45명 모두  궁금해했다. 아니, 왜?


"모든 부모들이 못 보내서 안달인 그 의대 출신들이, 의사 잡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7%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어요. 심지어 의사를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겠다고까지 했답니다. "


아니, 대체 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의사라면 정말 괜찮은 우물을 선택해서 판 게 아닌가? 한 우물파기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아닌가? 근데 왜? 안철수 원장은 그 현상을 이렇게 풀었다. 


“제가 의대 나와서 보니까, 의대는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 갈 필요가 없더라고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 있고, 따뜻하고, 성실한 사람이 가야겠더라구요. 의사가 되게 되면 그 사람들 일상이 매일 백 명이상의, 어딘가 병 가진 분들을 만나야 합니다. 자 누군가 공부는 잘하지만 성격이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의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와서, 백 명 이상의 타인들을, 만나야 되는 일이 일 년 내내 반복되는 거예요. 그거는 거의 지옥이거든요. 고문이라구요. 그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죠.”

  

안철수 원장은 말을 이었다. 


"창업을 하고 성공하는 데까지 7년 정도가 필요하다는 통계가 있어요. 그런데 보통은 3,4년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들의 특징은 일자체에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은, 돈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 재밌어서 하거나 의미를 느끼거나, 독립적으로 나만의 일만 하고 싶다던지, 그런 것들이 있을 때 오래간다고 해요."


그러면서 덧붙인 말. 


“성공에 대한 정의 있잖습니까.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창업할 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왜 이일을 하려고 하는가? 성공은 과정에 있지 목표 자체에 있지 않거든요. 자신의 타고난 성격 배경 지식 등을 가지고 자신만의 성공에 대한 정의를 해야 해요. 그럼 뭐가 인생에서 성공인가?

내가 생각한 가이드라인은 이래요. 

첫째, 그 일 자체가 자신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 

둘째, 재미있어야 한다. 

셋째,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 잘하는 일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거든요. “

  

그때 생각했다. 아, “한 우물을 파야 한다.” 이 진리가 완전 똥일 수도 있구나.

잠시 생각해보자. 김연아처럼 어릴 때부터 피겨스케이팅 하나만 보고 달려온 사람, 박지성처럼 축구 하나만 보고 달려온 사람. 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가 명확하다. 이들은 한우물 파도 된다.  하지만!!  이들처럼 내가 뭘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20대에 명확한 이가 얼마나 될까?  20대에 한 우물 팔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이미 자신의 진로를 확실히 정해둔-운 좋은 몇 명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자기가 어디에서 뭐하며 살지 고민하며 지내지 않을까? 자기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 우물을 파는 게 과연 현명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돈을 많이 번다고 하니까. 성공한다고 하니까 - 그곳에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인정해주는 대기업이니까 들어간다. 안정적인 공무원이니까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간다.... 그런데...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대기업에 들어갔고, 공무원이 되었지만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정말 즐겁다고 하는 사람을 정말로,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한 우물 팠어, 아주 잘~팠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는 길로, 성공한다는 길로 경력을 쌓아서 그 길에 들어섰어. 그런데 막상 해보나니 이게 아니야,.. 그럼 그때부턴 어쩔 건가?

그때는 두 가지 선택뿐이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걸 버리던가, 

아님 아까우니까 그냥 참고 버티던가. 

대부분은 그냥 버티기를 선택할 거라고 본다. 지금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대기업을 선택하고, 공무원을 선택하고, 한 우물 파기를 선택한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정말로. 다만, 우리를 그렇게 밀고 가는 믿음과 부추기는 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다면, '경력'과 '경험' 어느 게 나을까?


한 우물 파기가 '경력 쌓기' 에 해당한다면, 김어준 총수의 말처럼 여러 우물을 파보는 건 '경험 쌓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나같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는 20대에게 필요한 건, 한우물이 파는 '경력'이 아니라 여기저기 찔러보는 '경험'이 아닐까어디에 물이 있는지  모르니까여기저기 찔러보는 경험 필요한 거다그러면서 내가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어떤 것을 못 참는지 알게 되고, 그를 바탕으로 나만의 가치관을 세워가게 된다. 아, 나라는 사람은 이렇구나알아가는 거다경력이 될진 모르지만일단 '경험'해보는 거다. 


친구들이 영어 때문에 외국에 나갈 때 나는 외국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고 그들의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갔다. 그리고 1년간 먹고 자고 돈 벌고 여행하며 그야말로 '생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선배가 취직하려고 1년간 휴학하고 토익 공부할 때 나는 1년 휴학하고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에 들어가 나를 연구하며 보냈다. 내가 관심 있는 3가지 분야- 문화, 환경, 인간에 열심히 찔러봤다. 자원봉사도 많이 했고, 인턴생활도 많이 했다. 그게 내 우물이 될진 뭔진 모르지만,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도전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좇다 보니, 경험들이 '경력'으로 되어있었다.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존중해주는 곳에 취업까지 했다. 나는 한우물 파라고 조언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뭔지도 모르는 성공을 위해 한우물 파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따라 다양한 곳을 찔러보는 경험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여러 개 파도 물이 안나오면, 빈 우물을 하나로 연결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볼 수도 있잖아, 왜, 안돼!  



어쨌든. 

그날, 나는 김어준을 만나고 너무 흥분해서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핀잔만 들어오던 내 인생에서 강력한 불빛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직업을 꼭 찾아야 하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안되나? 는 생각을 해온 내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미리 그런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는 거, 그것도 아주 재밌게. 너무나 반가워서 심장박동이 평소보다 1.5배나 빨리 뛰었다. 나는 내 방식에, 자신감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래, 누가 뭐래도 나만의 답을 한번 써보는 거야. 김어준도 그러잖아. 꿈, 꼭 직업일 필요 없다고! 

 

<건투를 빈다>(김어준 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 가지만 명심하자. ‘인생은 비정규직이다’. 삶에 보직이란 없는 거라고직업 따위에 지레 포섭되지 말라고하고 싶은 거 닥치는 대로 덤벼서 최대한 이것저것 다 해봐라. 그러다 문득 정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하지만 개미 군체의 병정개미는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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