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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Nov 29. 2016

주류를 벗어나, 내 두 발로 설 수 있을까?

퇴사 고민을 교육사업으로 풀어내다, 퇴사학교 교장 장수한 

네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해.
안 그러면 돌아가는 길을 잃고 말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대사다. 평범한 십대 소녀인 '치히로'는 우연히 다른 세계의 정령들이 사는 온천장에 들어오게 된다.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그곳에서 치히로는 마녀 '유바바'의 저주에 걸린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란 다른 세계의 이름을 얻어 노역에 시달린다. 이때 옆에서 몰래 도왖던 '하쿠'라는 소년이 말한다. 네 본래 이름을 절대 잊지 말라고.

끝까지 이름을 잃지 않던 치히로는 우여곡절 끝에 본래 이름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 마녀 유바바로부터 탈출해 집으로 돌아와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 <퇴사의 추억> (장수한 지음) 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 포스터

 여기서 유바바는 '사무실', 센은 '직장인'으로 대체될 수 있지 않을까?  직장인들은 사무실로 출퇴근하면 본래의 이름 대신, '정 대리', '김 비서', '이 부장' 등과 같은 다른 세계의 이름을 얻어 갖은 노역에 시달린다. 그리고 일에 치여 내 본모습을 서서히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간혹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직급이나 명함에 의탁하는 존재가 아닌, 본래의 자기 이름대로 살고싶은 바람을 가지고서.


퇴사학교, 들어나 보셨습니까?

'퇴사학교'란게 있다. ㅎㅎ 퇴사를 조장하는 게 아닌, 바람직한 퇴사와 나아가 삶을 설계하도록 도울 목적으로 세워진 성인 교육기관이다. 수 많은 학교가 있지만  '퇴사'를 키워드로 내건 학교로는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설립 타이밍이 기막히게 좋다. 요즘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6일 발표된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퇴사율은 2012년 23.6%에서 매년 증가해 올해 27.7%를 기록했다. 신입 사원 4명 중 1명꼴로 퇴사하는 셈이다. 덕분에 퇴사학교 강좌들도 매번 마감 릴레이다. 퇴사학교 설립자는 이제 32살 된 청년이다.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그는 한때 잘나가는 삼성맨이었지만, '살아있기 위해' 퇴사를 감행한다. 


강의 중인 장수한 대표. 사진제공: 퇴사학교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퇴사의 추억"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자신의 노동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를 책으로 출간한 것도 모자라, 아예 "퇴사학교"를 세워 버렸다. 나는  ‘퇴사’라는컨텐츠를 이토록 잘 살려낸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삼성맨이라는 다소 매력적인 이름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우뚝 선 것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의 모습 위로 센이 겹쳐졌다. 


그는 왜 만족스러운 직책을 버리고 굳이 자기 이름을 찾으려 했을까?

어떻게 '퇴사'라는 컨텐츠를 발굴해서 그를 비즈니스로 연결시켰을까?

본래의 내 이름으로 서기까지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왔을까? 

그를 좀더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모월 모일 퇴사학교 사무실이 있는 서울 은평구의 혁신파크를 찾았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기 위해. 



삶이 너무 소중해서 퇴사한 남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 했으니, 
삶은 이처럼 소중한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가 월든 호수가에서 2년여간 홀로 지내면서  쓴 명저 <월든>에 나오는 글귀다. 장수한 대표는 5년 동안 근무했던 삼성을 떠나면서 위 문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전략기획, 해외영업, 사내벤처 등 촉망 받는 부서를 이동하며 열심히 일했고 적성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러고 나니 회사에서 더 이상 배우고 실험할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일을 찾고 싶었다. 더불어 야근과 주말까지 바쳐가며 일하면할수록 공허함이 커져갔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한다. 


“살아있고 싶었어요. 회사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생각했죠. 바쁜 일상이지만공허한 업무와 야근에 지치기도 했구요. 회사에 있으면 죽을 때까지 대리인 역할밖에 못할 거 같았어요.” 

이미지출처: 퇴사학교

퇴사하던 날은 화창한 4월이었다. 입사할 때 만큼이나 '부럽다', '축하한다'는 주위의 격려를 받으며 짐을 챙겨 회사를 빠져 나왔다. 햇살이 얼마나 따사롭고, 마음은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하지만 상쾌하고 자유로운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올 때는 좋았죠. 그런데 나오면서부터 굉장히 불안해지더라고요. 아, 이게 백수구나 내가 백수가 됐구나.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페북을 한동안 안했어요. 친구들이 힘들다 투정하는 것도 보고싶지 않더라고요. 난 이렇게 힘든데. 퇴사하고 이렇게 힘든데.. 투정처럼 느껴졌죠. 왜 사람들이 퇴사를 말리는지 뼈저리게 알았어요.”


 불안했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플랜B가 있었다. 

'1년 동안 해볼 거 다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재취업하자. 대신 1년 동안은 무엇이든 다 해보자.'

 특정한 계획도 없었다. 다만 내가누구인지 좀 알고 싶었다. 첫 번째로 시도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기. 굳이 뭔가 하려는 대신 흘러가는대로 스스로를 내버려두었다. 낮잠을자고, 요리도 하고, TV를보고, 한가로이 산책도 했다. 그렇게 딴짓을 해가는 동안 머리속 잡념은 가라앉고, 명징하게 떠오르는 생각 한 줄기가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


그는 3개월간 100권의 책을 읽으며 회사생활에 대해 고찰한글을 브런치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평생 이것만 해도 좋겠구나' 할 정도로  글쓰기가 굉장히 재밌었다.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글만 쓸 정도였다.  ‘퇴사의 추억’라는 타이틀을 걸고 쓴 글들은, 그가 쏟은 시간만큼 아니 그가 행복을 느낀만큼 반응도 좋았다. 브런치에서조회수 100만, 구독자 1만 명을 돌파했다. 좋은 일은 연이어 일어난다고, 그는 책 출간지원공모전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자신의 글을 묶어 <초일류사원, 삼성을 떠나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후에 <퇴사의 추억>으로 개정되었다)

“예전에 회사 동료와 쉬는 시간에 ‘미래에 뭘 할까’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동료는 로스쿨을 가고 싶다고 했고, 전 책을 내고 싶다고 했죠. 어떻게낼지, 무슨 글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을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실제로 이뤄지니까 신기했죠.”


퇴사의 추억을 책까지 내면서, 그는 이제 이걸 다 털어버리고 다른걸 할 수 있겠다싶었다. 글쓰는 재미를 맛본터라, 글쓰면서 평생 살아가도 좋겠다 했지만 막상 책을 내보니 글로 먹고 사는건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니었다. 돈이 안됐다. 그래서 책쓰기는 장기플랜으로 놔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사업 도전, but 스펙은 내가 아니었다

"예전부터 막연히 내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기회에 창업하기로 마음먹고 여러가지 사업을 구상했죠. 퇴사할 때 죽이되든 밥이되든하고 싶은거 다 실험해보자고 다짐했어요. 무조건 실행하자."


그래서 시도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마사지사업, 육아사업, 농산물 사업…. 사업기획서도 써보고 관계자도 만나봤는데  어느것도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사지, 육아, 농산물 모두 자신이 잘 모르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그간 쌓아온 스펙이 도움되는 것도 아니었다. 삼성에서 5년이나 빡세게 일했으면 보고 배운 게 많을 텐데, 아니 왜? 


"회사에서 일해보면 알아요. 내가 가진 스펙들을 회사라는 조직에 고용될 경우에만 의미가 있어요. 재취업할게 아니라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동물원 안에서 아무리 힘세봤자, 동물원 안의 호랑인 거랑 같아요. 그걸 야생에선 쓸 수 없죠.  우리가 받은 교육도 알고보면 피고용인이 되기 위한 스펙들이에요.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은 회사에서 승부하는게 아니라, 밖으로 나와 자생하는 건데….5년만에 회사를 나오면서알았어요. '아, 내가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정말 하나도 없구나. 나는 정말 나에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구나.' 뼈저리게 알았어요."


 10대, 20대를 주입식교육과 스펙 경쟁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왔는데,  스펙이 내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뼈아팠다. 회사밖에선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재취업을 할까 진지하게 고려했다. 재취업한다면  스펙을 재활용 할수있을 것이고, 괜찮은 곳을 들어갈 수도 있을터였다. 


어느 날, 그는 카페에 앉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냉정히정리해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퇴사의추억'을 쓰면서 참 행복했다는 게 떠올랐다. 


"회사에 대한 연구, 일에 대해 고민하는 걸 좋아하더라구요. 왜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아무도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거지? 이건 떠밀려가고 있는건데, 현실에 타협하고 순응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지? 이런 문제의식이 컸어요. <퇴사의 추억> 책을 내고, 이런 고민을 다 떨궈내고 가려고 했죠. 고민하는게 건 피곤하니까. 돈이나 벌자 했는데 결국 다시 돌아왔어요. 할줄 아는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살다보면, 자기대면(Self-Confrontation)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멀끔한 자기의 민낯을 보게 되는데, 이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길이 갈린다.  그는 자신의 민낯을 솔직히 인정했다. 

'나이 서른이 되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구나. 그럼 나같은 성인들을 위한 재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평소에도 일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기 때문에 회사나 조직, 일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었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건, 일에 대해 고민하고 통찰하는거였다. 그렇다면  이걸 가지고 뭘 해야할까?


"그동안 이것저것 해 보면서 아닌 것들을 하나씩‘소거’해 왔어요. 하기 싫은 것들을 없애나가자, 하고싶은 게 조금씩 드러났어요.  교육, 교육을 해보자. 이건내가 잘할수있는일이었고,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잖아."



'꿈을 찾는 어른들의 학교'를 세우다

교육사업을 하자고 마음먹고, 창업스쿨 <언더독스>에 합류했다. 회사를나온지 6개월만의 일이다. 그는 커리큘럼짜고, 콘텐츠 만드는 걸 잘했지만, 마케팅이나홍보, 재무와 같은 제반 업무는 잘 몰랐다. 그래서 자신이 못하는 것들을 도움 받기 위해 합류했다. 장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참 명쾌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할 수 없는지가 잘 알았다. 장대표는 낮에는 창업교육 담당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사업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5월, 국내유일무이한 퇴사를 위한 <퇴사학교>를 세운다. 


사진제공: 퇴사학교


"다들 '뭘 해야 하는가' 대한 고민이 가장 많습니다.그렇다고 이대로 회사를 다닐 수도 그렇다고 무작정 퇴사할 수도 없죠.  왜냐하면 지금까지 회사에 만족했다고 해서 오래 계속 다닐 수는 없거든요. 불만이 있어도 본인 혼자 회사를 변화시키기 힘들죠. 결국 내가 앞으로 뭘 더해야하고, 어떤식으로 내 미래를 설계해야할지가 장 큰 고민입니다.퇴사학교는 퇴사하라는 곳이 아닌 내가 누군지 알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지 생각하는 학교에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직장인 사이 게시글이 끊임없이 공유되면서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 2주 만에 '좋아요' 1만명을 넘어섰다. 퇴사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좌 소개글을 보니, 솔깃한 문구가 많았다. 예를 들어 <퇴사학개론> 수업은 "다음주는 조금 다른 월요일을 맞이하고 싶다면", "회사라는 회두를 통해 진정 나답게 사는 법을 찾는다"와 같이 소개되고, 사용자들의 평도 좋았다. '실제로 퇴사한 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고민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 '감정적 기름기가 빠지고 좀 더 시야가 확보되었다' 등이다.  


나는 실제로 그가 어떻게 자신의 것을 풀어놓는지,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는지 보고싶었다. 그래서 그가 운영하는 <퇴사학개론> 수업을 참관했다. 일요일 오후에 진행되었는데, 10명 정원에 14명이 신청해서 작은 강의실이 꽉 찼다. 수강생들의 참가목적은  퇴직, 이직, 진로고민 등 다양했고, 마케터, 디자이너, 언론인부터 엔지니어까지 직군도 다양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다. 장 대표는 수업 시작 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의중인 장 대표. 사진제공: 퇴사학교

"많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 수업 하나로 방향을 잡고, 이유를 찾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작은 힌트는 얻으실수 있고 또 방향을 생각해보실 수 있는 계기가 될겁니다. 자신이 뭘 잘하고 내가 누군지. 그건 시간을 들여 경험해보시고 고민해보는 가운데 드러날거에요. 퇴사학교가 그걸 도와드리겠습니다."


2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들은 소감이 이어졌다. 여전히 올 때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지만, 적어도 자신만이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앞으로 달라질 사회 패러다임을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라는 걸  알아서 만족한다고들 했다. 직장인들이 퇴사학교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롤모델이 부재한 사회

"퇴사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회사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하나같이  회사에서는 5년, 10년 뒤 롤모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요. 저도 실은 퇴사 후 가장 두려웠던 건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이 없다는 사실이었거든요. 똑같이 정해진 길만 걸어가는 시대에서, 우리는 롤 모델이 부재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닌 싶었어요."


퇴사학교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다 현실적인 대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퇴사의 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들을 찾아 강사로 초빙했다. 걔 중엔 퇴사후 세계여행을 감행한 부부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책과 술을 결합해 책바를 연 사람도 있다. 강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강좌도 있고, 방황을 도발하는 강좌도 있다.  막연히 꿈꾸는 이들에겐, 이미 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거 자체가 큰 힘이 된다. 강의는 직장인들의 시간을 고려해 대부분 주말에 개설되는데, 매번 빈 자리 없이 마감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한다.  


내가 무릎치며 공감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한국 사회는 대부분 비슷비슷한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일에 있어 다양한 롤모델을 찾는게 쉽지 않다. 다르게 살고 싶어도, 그게 나 혼자라면 쉽게 길을 벗어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인터뷰를 시작했던 이유도 정확히 그 지점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고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과 공유하고 싶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이들 최대한 많이 찾아내어, 그들의 용기와 아이디어를  자신의 삶을 꾸려가려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 죽지 않아. 

장수한 대표. 사진제공: 퇴사학교

이쯤에서 다시 한번 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지금 하필 '퇴사'를 이야기해야하는가?


“고용모델이 바뀌고 있어요. 기존 대기업 중심의 산업들은 현재 포화 상태예요. 점점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죠. 결국 새로운 ‘창작’을 해야 합니다. 취직이 더이상 답이 아니라,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거죠.“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졌고, 퇴사 자체가 빈번한 현상일 정도로 직장의 개념 자체가 짧아졌다. 내 미래를 책임지는 건, 조직도 국가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장 대표 역시 자신의 일을 만든, '창작'의 케이스다. 그는 퇴사하고 1년 안에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뤄냈다. 어떻게 자신의 일을 만들 수 있는가? 


"처음부터 퇴사학교를 생각하고 온 게 아니에요. 그때그때마다 내게 닥쳐오는 것들을 하나씩 헤쳐가면서 여기까지 온거죠. 그전까지는 항상 생각하고, 계획하고, 전략짜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동사로만 살자고 생각했어요. 글쓰고 싶으면 글쓰자. 스타트업 경험 쌓아야 하니까 스타트업 들어가자. 창업 해야하니까 또 창업하자. 그렇게 실행하니까 여기까지 온 거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일단 행동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안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를 바탕으로 ‘퇴사학교’ 를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이 무척 매끄럽게 연결되어 보이지만, 결코 한 순간에 이뤄진 건 아니었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발씩 나갔다. 일단 한 걸음씩 가는거. 그러면서 내가 가려는 곳과의 갭을 줄여나가기.


누구나 고민하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 것 - 행동, 그 안에 답이 있었다.  



야근없는 삶을 위해 오늘도 야근중! 

인터뷰 내내 장 대표는 눈을 비볐다. 많이 피곤해보였는데, 얘길 들어보니 회사 론칭이후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한다. 아침 10시에 출근해 밤 12시,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날도 허다하단다.  농담삼아 "이대로 좀 만 더가면 건강이 훅, 갈거 같아요" 라며 웃는데.. 아니 그러고도 괜찮은건가? 이 참에 기회비용을 좀 따져봅시다. 


"지금 회사 다닐 때보다 2배로 일하는데 수입은 절반이에요. 근데 만족도가 훨씬 높아요. 왜냐하면내가하고싶은걸하니까. 시간을 온통 내꺼죠. 결국 허무한 일을 8시간 할 것이냐, 정말 내 일을 12시간 할 것이냐 그 차이인거 같아요.”  


무슨 일이든, 초반에 절대적으로 투입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고생을 해야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야근없는 삶을 위해 야근하고 있다고 말한다. ㅎㅎ 하고싶은 일을 하는 이들을 만나보면, 그 과정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말마따나 '개고생'을 하며 바닥을 박박 기어야 할 때도 있다. 꿈꾸는 창업을 해도, 그 뒤에선 죽어라 일해야 한다. 그 좋아보이는 세계여행도 막성 떠나보면 위험한 일 천지다. 


실과 꿈은 '갭이 있다'고 흔히 말하는데, 그 갭이라는 건 결국 내가 치러야 할 대가다. 달콤한 보상만 생각하지만 그를 얻기 위해 내가 흘러야할 땀과 눈물이 바로 현실과 꿈의 갭을 만든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내가 치러야할 대가가 있다는 걸 아는 자에겐, 생각만큼 갭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려운 점이 많다. 일단 돈 문제가 아슬아슬하다. 겉으로 보기엔 강의도 매진되고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줄까' 늘 걱정한단다. 생각지도 못한 위험도 곳곳에서 터진다. 퇴사학교는 원래 일회성 강연들만 진행했다. 그런데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8월, 수강생이 하나도 없는 걸 경험하면서 이런 일회성 강연이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리스크를 발견했다. 그래서 계절영향을 받지 않도록 시스템을 보강해, 3개월 연속으로 수강하는 학기제로 운영 중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하는 게 있어요. 하면서 하나씩 배워가고있어요. 실제 해보지 않으면 이런건  생각해낼 수 없었겠죠." 

건강한 퇴사문화를 위해 오늘도 야근. 사진제공:퇴사학교

그는 자신이 매번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전에는 일과 자신이 분리돼 있었지만, 지금은 퇴사학교 일이 곧 자신이다. 그래서 야근 스트레스도 없고 월요병도 없다.  추구하고 싶은 일들을 하니까 오래 일해도 지치지않고 허무해지지 않는다. 일하는 매 시간 매 분,  자신을 소비하지 않고 쌓아나가기 때문이다. 그의 앞으로 계획은 뭘까? 


"장기계획은 안 세웁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세울 순 있지만 아무 의미없죠. 대신 목표가 있어요. 퇴사학교를 삼성에 팔 수 있으면 퇴사하려고 해요. 그만큼 경쟁력을 갖춘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퇴사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쉬쉬하는게 아니라, 조직에서 건강한 퇴사를 위한 교육을 하고 서포터를 할 수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그정도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장수한 대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주류를 벗어났고, 야생으로 뛰쳐나와 자신의 두발로 서기 시작했다. 살아있다는 걸 느껴본 자는, 자신의 인생을 직접 주도해본 자는 그 맛을 쉽게 잊지 못한다. 책 <월든>을 좋아한다는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취업 대신 월든 호수가에 살면서 자립적 삶을 일구어낸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참 닮아 있었다.
중심이 선 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바퀴를 굴려간다.
한 번에 한 걸음씩.


**<퇴사학교> 홈페이지((http://t-school.kr/)를 통해 원하는 과목을 수강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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