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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Oct 20. 2017

개미와 베짱이, 그 새로운 결말

베짱이는 굶어 죽지 않는다, 다만

개미와 베짱이의 속뜻

우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개미와 베짱이>. 그 내용은 한 줄로 압축하면, "열심히 일한 개미는 살아남고, 놀기만 한 베짱이는 굶어죽는다"다.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땀흘려 하지 않는자는 굶어 죽어도 마땅하다. 게으른 자의 끝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주면서 '성실하게, 땀흘려 열심히 살자'고 격려한다. 


안녕 개미! 넌 또 일하는구나.



어릴 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으면, 늘 마음 한 켠이 찜찜했다. 결론이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내가 보기에 개미와 베짱이는 가치관이 다를 뿐, 누가 착하고 나쁜 놈은 아니었다. 개미는 앞날 대비형으로, 지금 당장의 기쁨보다 앞일을 대비해두는 게 훨씬 중요한 녀석이다. 반면  베짱이는 현재에 매우 충실한 캐릭터로 'YOLO 욜로'의 선두주자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땀흘리기보다, 지금 당장 좋아하는 걸 잔뜩 하는게 훨씬 중요한 녀석이다. 왜 꼭 베짱이에게 이런 가혹한 결말을 내렸어야 했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한편 이런 생각도 했다. 

  

'베짱이는 노래부르고 즐겁게 노는 재주를 가졌는데, 왜 굶어죽었을까? 왜  자기 재주를 활용하지 않았을까?' 

'성실한 개미는 착한 놈처럼 나오는데,  왜 베짱이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이웃이 어려움을 겪다 죽어버려도 괜찮단 말인가?' 


재밌게도 '개미와 베짱이'는 나라별로 다양한 결말로 변주되고 있었다. 


개미와 베짱이 다국판버전


# 쿠바편

추운 겨울,  먹을 것이 없어진 매미가 식량을 얻기 위해 개미를 찾아간다. 그러자 개미가 심술궂게 묻는다.  "내가 땀 흘리며 일할 때 너는 무얼 하고 있었지?" 매미는 아주 당당하게 대답한다. "열심히 노래해서 모두를 즐겁고 신명나게 만들어주고 있었지!" 그 말을 들은 개미는 급 반성모드가 된다.  '아. 내가 지금까지 일밖에 모르고 살았구나.' 개미는 자신을 뉘우치며 매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는 함께 춤추며 살자꾸나."  개미와 매미는 먹을 것을 서로 나누며 즐겁게 겨울을 넘겼다.

(분배의 중요성과 문화예술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나에 다 담았다. 이야기에는 사회의 가치가 담기는데, 과연 문화가 발달한 공산국가다운 결론이다. ㅎㅎ)


# 일본편

베짱이가 겨울에 개미의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개미가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을 알아보니 여름에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과로사한 것이었다. 

(사실 이 버전은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는 버전이다.) 


# 러시아편 

베짱이가 문을 두드리니 개미가 문을 활짝 열고, “동지여, 어서 오시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형제, 함께 나눠 먹읍시다.”하고 환영했다. 그들은 동지가 돼 겨우내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러나 개미와 베짱이는 이듬해 봄에 함께 굶어 죽었다.  

(쿠바와 비슷하게 흐르다,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아무래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탓이 아닌가 싶다.)


#미국편

베짱이가 문을 두드리니 개미가 안에서 소리쳤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곡식을 왜 너하고 나눠 먹어야 되냐? 자기 밥벌이는 자기가 하는 법, 어서 꺼져!” 베짱이는 집에 돌아와서 그 슬픔을 노래로 불렀는데 마침 지나가던 음반 기획자가 그 노래에 반해서 음반을 내게 되었다. 베짱이는 노래만 부르다가 너무 노래를 잘하게 돼 가수가 된 것이다. 음반은 크게 유행해서 베짱이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개미는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 디스크에 걸려 눕게 되었다. 그동안 벌어 놓은 재산은 병원비와 생활비 등으로 온데간데없어져 거의 빈 털털이가 되었다. 

(소위 아메리칸드림을 달성한 베짱이와 소시민 개미의 이야기인데. 재밌는 건 이 뒷부분이다. 개미는 나중에 허리디스크를 치료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해서 결국 자수성가한다. 베짱이는 마약과 도박, 술에 빠져 다시 빈털털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미국적인 결말이다.)


한편, 지구 환경문제를 반영한 이야기도 있다.


# 지구온난화편


ㅋㅋ 지구 온난화로 여름이 계속되는 덕분에, 베짱이는 내내 노래하고 개미는 내내 일만 하게 된다는 이야기. 아닌게 아니라, 여름만 계속되는 기후와 4계절이 존재하는 기후권에서 개미와 베짱이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다. 쿠바처럼 여름이 계속되는 아프리카에서는 우리와 개미의 가치가 정반대다. '개미'는 사재기만 하는 욕심쟁이로, '베짱이'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쉬지 않고 노래하는 자기계발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된다. ㅎㅎ 


우리나라의 씁쓸한 경제 상황을 반영한 금수저 편도 있다.


# 금수저 편 by 꼬마야 툰

 사실 베짱이로서는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다. 우화 덕분에 베짱이는 일 안하고 게으르고 여유 부리는 곤충으로 유명세를 타는데, 사실 선조들은 이 베짱이를 밤새도록 베를 짜는 부지런한 벌레로 여겼다. 이야기 한편으로 이미지 타격을 크게 입은 셈이다. (이거 누가 보상하나)


이 밖에도 여러 반전스토리들이 존재한다. 또 다른 이야기다.


악덕 고용주에게 노동착취 당해 병에 걸린 개미가 입원을 했는데 치료비가 부족해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빌보드를 정복한 배짱이 가 순회공연중 스케줄을 펑크내고 개미를 찾아와 개미의 수술비를 대주고 병실을 지켰다라는 훈훈한 결말도 있다.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개미와 베짱이를 보여줘

 

대한민국은 우주공인 자타공인, '개미들의 나라'다.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발표한 고용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중 하나다. 무려 세계 3위다. 이마저도 야근이나 주말근무 같은 연장근무가 빠진 것이라,  아마 제대로 통계냈다면 거뜬히 1위를 했을것이다.  


그런데 정말 물어야 할 건 이거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우린 과연 그만큼 행복해졌는가?  


근면성실이 통하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 개미처럼, 열심히 살면 그만큼 보상이 따랐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 지속되면서, 열심히만 해서는 성공하기도 행복해지기도 어려워졌다. 그러니까 자꾸 과로사하는 개미와 금수저 개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야기에는 본디 그 시대의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이야기에는 시대가 반영돼 있다는 건, 거꾸로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할 때,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다르게 쓰여져야 할 때가 아닐까? 과로사로 끝나지도 않고, 금수저이야기로 씁쓸하게 끝나지도 않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열심히 일하는 한편 죄책감 없이 인생 즐기는 개미는 어떤가? 
잘 즐긴다는 기질을 적극 활용해 연예계에 진출해 성공한 베짱이는 어떨까? 
개미와 베짱이를 융합한 개베짱이는 어때?

우리에겐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 개미와 베짱이를 상상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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