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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름답습니다

거기에서 Magic이 펼쳐진다...

by 김글리

6월 어느날이었어.

베이징 거리를 걷고 있는데, 내 눈앞에 오토바이 한대가 쌩~하니 지나가더라구. 그 오토바이에는 중국 언니가 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어. 하늘거리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가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졌는데, 헬멧쓰고 바람처럼 질주하더라고. 와, 근데 그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는거야. ㅎㅎ

우아함과 강인함이 조화를 이뤘을 때 나오는 그런 멋, 이 있었지. 와, 참 아름답다.......

사진 찍으려고 허겁지겁 사진기를 꺼내봤지만, 이미 그 언닌, 저 멀리 달려가 버리고 없더라구.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이건 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면서 꽤 화제가 되었던 카피야. 이걸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


나는 우리나라 여자들만큼 이쁜 데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왔거든. 그래서 세계 여행하는 동안 만나는 외국 친구들마다, '너 한국 여자들 얼마나 예쁜지 아냐, 한국여자들 진짜 예쁘다'고, 마구 자랑질 했어. 피부좋지, 날씬하지, 거기에 얼마나 공들여서 잘 꾸며. 정말 예쁘잖아. 그런데 세계여행을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뭔가 이상했어.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 한국여자들이 별로 예뻐보이지가 않았던거야. 여전히 세련은 됐는데, 다 엇비슷할 뿐이었어. 객관적으로는 참 예쁜데, '확 사로잡는' 주관적인 매력이 보이질 않더라고. 왜일까.


2014 엘르(Elle)지가 세계 42개국 여성 2만 3천명을 대상으로 외모만족도를 조사했는데, 한국여성들의 외모 만족감이 최하위권인 39위였대. 그걸 보고 느껴지는 바가 좀 있었어. 아, 여기서 또 쿠바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네. 내가 지금껏 내가 본 여자들 중에서 쿠바 여자들이 가장 섹시했거든. 그 섹시함이 쫙 달라붙는 의상과 예쁜 몸에서 나온거기도 하지만, 뭔가가 더 있었어, 그녀들에겐. 그게 뭘까.


쿠바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상당히 끈덕지고 느끼한데, 그와 비례해 굉장히 로맨틱해. 립서비스를 굉장히 잘해줘. 단체적으로다가 작업의 기술을 배우는가봐. ㅎㅎ 쿠바를 여행하는 두달 동안 내가 30년 살면서 받은 칭찬보다 더 많은 찬사를 들었거든. 확실히 자신감이 넘치고 기분이 좋았지. 옆에 여자가 지나가잖아? 그럼 쿠바 남자들은 설사 배가 뽈록 나온 아줌마라도, "오, 오늘 정말 멋진데요, 당신 아름다워요"라고 말해줘. 그럼 아줌마가 어떻게 반응할까? 손사래 치면서, 당황해 할까? 아님 얼굴 붉히며, '아니에요' 라고 극구 부인할까? 이 쿠바 아줌마는 이랬어. 뒤도 안돌아보고, 아주 시크하게 말하더라구.

"나도 알아."

SAM_7940.JPG "나도 알아" 쿠바 아줌마의 자신감 넘치는 뒤태ㅎㅎ

ㅋㅋㅋ 그거 보고 너무 웃었는데, 한편 너무 부러운거 있지. 바로 쿠바 여자들의 자신감이 여기서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 생각해봐. 거리를 다니면,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수시로 칭찬해줘. 하루에도 몇번이고 사람들이 '아름다워요, 눈이 너무 예뻐요, 오늘 헤어스타일이 아주 끝내주는데요?' 말해줘. 이게 매일 반복된다고 생각해봐. 내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될거 같지 않아? 그렇게 매일 칭찬들어서인지는 조사안해봐서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쿠바여자들의 외모 자신감은 상당히 높았어. 그 자신감이 그녀들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더라구. '나는 나대로 참 괜찮아' 이런 것.


그런데 우리는 별로 칭찬해주지 않지. 칭찬해주면 기고만장해질까봐 미리 방지라도 하는건지. ㅎㅎ 어쨌든 왠만큼 예뻐도, '다리가 굵니, 이가 조금 나왔느니, 얼굴이 좀 부었니' 하면서 까대기 바쁘지. 설령 누가 내게 예쁘다고 말해줘도, '아부하지 마라, 너 뭐 잘못먹었니, 내게 뭘 원하는거니' 라고 스스로 아름다움을 반품해버리잖아. 아름답길 그토록 바라면서도,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도 '내가 아름답다'고 인정하는데는 정말로 인색하지.


"나는 아름답습니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나의 아름다움을 알아봐주고 칭찬해줄 쿠바남자가 없어. 근데 더 중요한 건 내가 날 어떻게 보느냐,그거 아닐까? 누가 뭐래든, 내가 먼저 아름답다는 걸 인정하고 가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하거든.


"너 얼굴 폈다"


내 얘길 해줄게.

나는 키가 174cm야. 어깨는 자연발달로 넓고 골격은 스칸디나비아의 민족과 맞먹어. 뭐랄까, '뮬란'을 닮은 묘한 얼굴과 인상적인 체형을 가졌지. 한국에서 아름답다고 추앙하는 168cm, 49kg의 여리여리한 몸과는 차이가 많아. 한국에선, 내가 한번도 예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어. 누구도 그렇게 얘기해주지 않았고. 그런데 세계여행 출발지인 중국에 갔는데, 사람들이 나보고 그래. "피아오량(예뻐요)." 처음엔 이 사람이 미쳤나 했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내가 예쁘다는 거야. 그래서 '아 내가 중국에서 좀 먹어주나?' 했어. 그런데 이집트, 모로코, 칠레, 쿠바, 멕시코, 미국, 튀니지… 그 다음 나라에서도 다들 나보고 예쁘다고 하는거야!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남자든 여자든 나를 쳐다 봐. 물론 외국인이라 쳐다보는 것도 있긴해. 그런데 지나가며 사람들이 뚫어지게 나를 보거나, 슬쩍슬쩍 훔쳐보는 눈길, 심지어 넋나간 눈길로 나를 봐. 그건 외국인이라서 보는 눈길과 좀 다른거잖아.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


“너 처음봤을 때 깜짝 놀랐어. 아시아인 중에 너처럼 키도 크고, 예쁜 애는 처음이었어. 대부분 아시아 여자들은 작고 못생겼는데, 넌 아니더라구. 달라, 많이 달라. 난 네얼굴이 너무 좋아. 모 든게 퍼펙트해. 정말이야."

튀니스에서 만난 어떤 카타르 남자가 내게 저런 고백을 하더라고. 그리고 몇 날 며칠을 나를 쫓아다녔지. 아름답다는 말, 엄청 듣고 다녔어. 솔직히 너무 좋더라. 처음엔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봐주니, ' 아, 그런가? 나도 예쁠 수 있구나. 나도 예쁘구나.' 나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여행, 참 잘 나왔다 싶었지.ㅎㅎ

내 여행사진을 보고, 한국에 있던 친구들이 그래.

"너 얼굴이 폈다."


맞아. 여행하면서 나는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다'는 느낌을 받았어. 한국에선 내 큰 키, 잘 발달된 상체는 단점이었거든. 근데 외국에 오니 사람들이 그점을 오히려 좋다고 봐주더라고. 초점이 달랐던거야. 나는 같은 인간인데,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거야. 그래서 알았어.

아, 아름다움은, 굉장히 주관적인 거구나.


아름다움_카렌족 여인 _BBC인터넷판.jpg 목이 길수록 아름다운 카렌족 여인 출처:BBC인터넷판


아름다움의 기준은 내 마음 속


아름다움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더라구. 보는 눈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다른 많은 이유로 얼마든지 달라지더라구. 한국에선 뚱뚱하면 못생긴건데, 아프리카에 가면 뚱뚱해서 아름답다고 칭송받을 수가 있거든.


이집트에서 겪은 일이야. 한 친구랑 같이 동행했는데, 그 친구가 굉장히 통통했어. 한번은 한 이집트 부호가 오더니, 내 친구가 통통해서 참 좋다며 진지하게 제안하더라구.

"낙타 100마리 줄테니 나한테 시집와요."

아쉽게도 그 부호는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고. 난 낙타 괜찮은데..

sticker sticker


이런 일도 있어. 호주에 갔는데, 세상의 중심이라는 '앨리스 스프링'에서 호주 원주민과 잠시 얘기할 기회가 있었지. 그가 자기네 결혼 풍습을 얘기해줬는데 독특하더라구. 부족간의 약속에 의해서 맺어지며 당사자는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대. 듣고보니, 궁금해졌지.

"상대 모르고 결혼하잖아. 그런데 만약에, 결혼하는 상대가, 너~~무 못생겼어. 그럼 어떻게 할거야?"

그의 대답이 이랬어.

"그런 건 상관없어. 우린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없거든. 외모로 판단하지 않아. 우린 사람들한테 '오, 아름다운 여인', '이봐, 잘생긴 남자'라고 말하지 않아. 우린 그저 다를 뿐이니까."

아름다움의 기준이 없다는 이야기에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지. 기준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은,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훅~ 흔들어 버렸어. 문득 의심이 생기더라구. 그럼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그 기준들은 대체 어디서 온걸까? 실은 학습된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난 말야, 그 기준에 나를 끼워맞추느라, 정작 내가 갖고 있는 진짜 아름다움은 보지 못한게 아니었을까?


그 이후로 아주 진지하게 '대체 진정한 아름다움이 뭘까', 생각하게 됐어.


아름다움은 기세야


여행다니면서, 전세계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지.

사실 예쁘지 않은 사람을 못봤어. 다들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더라구. 이 사람은 섹시한 매력이 있구, 저사람은 귀여운 매력이 있고… 저마다 매력이 있는데 그걸 자신이 알고 있느냐, 그리고 그걸 살리고 있느냐가… 그게 아름답다, 를 결정해주고 있더라고.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이목구비는 예쁘지 않은데 볼수록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자신만의 매력을 알고, 발산해. 온몸으로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매력있다'는 에너지를 마구 뿜어내는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 아, 예쁘다고.


탁재형 피디가 "욕은 기세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외국에 가서 기분 나쁜 일이 있을때는 어설프게 영어로 욕하지 말고, 가장 자신있는 언어로 욕을 하라는 거야. 상대가 알아먹든 아니든, 내가 호기있게 우리말로 욕하면 그게 통한다는거야. 기세가 있으면 통해. 나는 그처럼 아름다움도 기세라고 생각해.

따산즈 798.jpg 누가 뭐래도 우린 잘생긴 거임! 하하하!! 사진제공: 따산즈 798

내가 예쁘다고 하면 예쁜거야. 굉장히 상대적인 거라구. 심지어 말근육처럼 굵은 허벅지라도 내가 그걸 좋아하면, 사람들이 그걸 매력이라고 생각하더라고. 단추구멍처럼 찢어진 눈도 내가 매력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줘. 그게 진짜 마법이지.


별 일 많았던, 세계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어.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렸지.

'모두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걸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그러니까 이젠 인정 해주자. 좀.

너 졸라 예뻐. 정말 아름답다구.

진짜야.

내 말 믿어.


목걸이.jpg 구본형 사부가 그려준 목걸이. "Find your jewelry. 너만의 보석을 찾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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