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 카슈가르] 다양함의 꽃이 화약고의 상징으로
실크로드를 육로로 따라가면서 나는 예기치 못한 큰 재미를 발견했다. '중국'에서 '터키'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다면, 그냥 모든 게 짠~ 하고 바뀔 테다. 그러면 '아 정말 다르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육로로 따라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 생김새며, 먹거리, 풍습등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시나브로 바뀌어가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매일 매일 내가 ‘서양’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를 아주 생생히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서역.
무협지에 보면 ‘서역’이 많이 등장한다. 이곳이 어딜까 무척 궁금했는데, 넓게는 중국 서쪽지방을, 좁게는'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가리킨다. 중국인들은 서역인을 다른 생김새, 괴팍한 성정, 이해할수 없는 인물로 많이 그리고있다. 이를 테면, '머리는 검되 얼굴은 희고, 코는 오똑하고 눈은 푸르다. 하지만 괴팍하여 그 성정을 알 수 없다'. 는 식으로 서역인을 그린다. 그만큼 중국인들에게도 서역은 이국적인 곳이었다.
이 서역의 주인공이자 신장 위구르 자치족의 주인이 위구르족이다. 위구르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민족이다. 중국말로는 웨이우얼족, 우리가 ‘돌궐족’이라 부르던 투르크족의 후예다. 이들은 수천년동안 실크로드에 자리잡으며, 중국과 페르시아의 문화를 매개해왔다. 덕분에 실크로드를 따라 가는 동안 내내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투루판에 들어갔다.
시안이 덥다, 둔황이 덥다 그래도 진정 더운건 여기. 불구덩이 도시라더니. 허명이 아니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화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화염산도 여기있다. 화염산은 낮에 자그만치 80도까지 올라가 접근불가다. 정말 화염산 이름한번 잘 지었다.
투루판부터는 중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 말도 중국말이 아닌, 위구르 말이 들려온다. 간판에도 중국어와 함께 위구르어가 함께 표기돼있다. 이들은 한자가 아니라 '아랍문자'를 쓴다. 신기하다. 위구족은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원래는 불교를 믿다가 11세기부터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이는 복장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여자들은 히잡을 써서 머리와 몸 전체를 가리고, 남자들은 납작한 흰모자를 쓴다. 무슬림 율법상 돼지고기와 술도 금한다. 거의 모든 것에 돼지고기를 넣는 중국과 달리, 여기선 양고기를 많이 먹는다. 돼지를 싫어하는 나로선,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사람들 체형도 다르다. 좀 더 키가 크고 골격이 있다. 약간 서구의 삘이 있다. 남자들은 대개 콧수염을 그리는데, 이목구비가 역시 서양사람들처럼 콧대가 높고 눈은 크고 움푹꺼진게 서양사람처럼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눈은 갈색이고 머리는 까맣다. 그러고 보니, 남자들이 터키사람들처럼 생겼다. 먹는 것도 달라졌다. 이들은 주식으로 ‘낭’이라는 빵을 먹고, 양고기를 많이 먹으며 빤미옌 혹은 라미엔 (스파게티와 흡사한 국수)를 먹는다. 또한 요구르트를 즐겨 마신다. 달라진 걸 보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혀빼물정도로 더운데도 계속 돌아다녔다.
이처럼 위구르족은 한족과 말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다. 즉, 생활 방식 자체가 한족과 다르다. 만약 지배권이 흔들리면, 중국내에서 가장 가장 먼저 독립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민족으로 꼽힌다. 그래서 충돌이 많다. 한족과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대놓고 적대감을 표시한다.
우루무치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갑자기 버스가 서더니 중국 경찰이 올라탔다. 경찰은 이유없이 버스 안의 모든 남자들을(대부분 위구르인) 연행해갔다.뭐지?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알고보니 신분증검사를 하는 거였다. 휴. 십여분 뒤 다시 남자들이 굳어진 얼굴로 돌아온다. 투루판 이후 마주하는 첫번째 ‘살벌한’ 풍경이었다.
우루무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성도로, 예부터 ‘서역’이라고 부르던 지역의 일부로 동서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만큼 교역하던 '바자르(시장)'가 발달했다.
하루는 우루무치 최대 바자르라는 '이도교(二道橋)'에 갔다. 가보니 한족은 거의 없었고 위구르족만 가득했다. 그런데 어째 나를 보는 위구르인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넌 뭐야, 대체 여기 왜 있는거야? 우린 너 싫어해!” 대놓고 보내는 적대적인 눈빛이었다. '왜 그러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신기한게 많아서 계속 돌아다녔다.
그러다 배가 고파져 한 위구르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안에서 밥 먹던 위구르인들이 나를 보더니, 모두, '아이쿠' 하면서 화들짝 놀라는 아닌가? 왜 그러지? 분명 내가 좋아서는 아니었다. 국수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힐끔거리며 나를 보는시선이 곱지 않았다. 눈빛을 신경쓰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그때, 서빙보이가 굉장히 위협적으로 다가오더니, 국수그릇을 내 앞에 탁! 하고 쏟아질 듯 놓았다. 팔짱끼고 날 한번 째려보고 갔다.
'아니 뭐야, 내가 국수 시킨게 죄야? ㅠㅠ'
그날 서너시간을 돌아다니는 내내 사람들 반응이 그랬다. '니가 못올 곳을 왔어', 하는 무언의 눈빛들. 알고보니, 게다가 전날 호탄에서 위구르인들이 비행기를 납치하려다 사살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거리에 평소보다 경찰이 더 많아졌고, 분위기도 살벌했던 거였구나. 위구르족은 한족처럼 생긴 내게 엄청 까칠하게 대했다. 한족과 위구르족의 갈등이, 그야말로 온몸으로 느껴졌다.
한족과 위구르족사이에, 뭔가가 있는게 틀림없다. 나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3년전 일어났다는 우루무치 사태를 찾아봤다.
2009년 위구르족들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처음에는 300여명의 위구르인들이 소수민족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는데, 시위대가 3천여명으로 불어나자 경찰이 강제해산에 나섰다. 중국정부가 이를 총으로 진압. (정부발표상으론) 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우루무치 사태'라고 한다.
그 후부터 우루무치는 계엄상태로 돼, 경찰이 시내에 항시대기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차량에 신분증 검사가 이뤄졌고, 인터넷, 국제전화 사용이 모두 제약됐다. 인터넷카페조차 중국인 신분증이 없으면 이용이 불가하다. 천안문 사태 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를 기록한 그 유혈사태 이후, 차별과 억압적인 정책으로 인구의 2/3를 차지하던 위구르인들이 우루무치를많이 떠났다. 그 자리에 한족은 계속 유입돼, 현재는 사실상 한족이 제 1민족이됐다고 했다.
끊임없는 분리 독립운동에도 쉽진 않을 것 같다. 중국 정부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장이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보고라는 점과 독립하면 다른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가 이어져, 구소련처럼 해체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담인데, 중국은 많은 문제를 '머리수'로 해결하는데 이게 또 먹힌다. 정부는 독립투쟁이 일어나는 신장위구르 지방뿐 아니라, 티베트까지 정책적으로 한족들을 이동시켰다. 일단 한족이 많아지면, 문화도 바뀌고, 경제도 한족 중심이 되며, 정치도 그렇게 바뀌어간다. 내가 방문한 2012년에도 한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위구르족에겐 전망이 밝지 않다. 중국, 절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큰 자원인 ‘사람’으로 무엇이든 밀어붙여버린다. 이걸 과연 누가 당해낼 것인가.
위구르인들이 나를 보던 적대적인 눈빛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들에겐 내가 한족처럼 보였을 테니까. 나를 보던 적대적인 눈빛에는 핍박받는자가 가지는무언의 저항과 분노, 그것들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예부터 활발한 교역으로 다양한 인종이 몰려살던 ‘서역’이 이제는 한족-위구르족 분쟁의 중심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