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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이야기 1

[시안~투루판] 고난과 염원이 빚어낸 길

by 김글리

세계여행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게'실크로드'였다.


오래전부터 실크로드에 막연한 동경 내지 강한 호기심이 있었다. 어릴때 TV에서 본, 낙타를타고수개월이걸리는사막길을목숨걸고다니던상인들의모습은크게인상이남았다.


동서가 만나고 교류하던 길,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며 수천년간 교역로로 이용되어 온 길, 실.크.로.드. 길은 단순히 물건과 사람이 오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교류하는 장이다. 이 길을 통해 차와 비단이 이동했고, 네스토리우스교나 불교가 전파되었다. 나는 수많은 이들이 만들어낸 '교류'의 현장을 내 두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세계여행의 시작으로 중국을 찍었고, 실크로드의 관문인 '시안'을 세계여행 첫 여행지로 택했다.


중국 시안에서 시작해, 란저우, 둔황, 투루판, 카슈가르를 지나고,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을지나터키에 도착했다. 버스와 기차와 자가용 택시를 탔다. 가는 데만 총 석달이 걸렸다.

사진 3553.jpg 둔황 명사산에 서서

실크로드의 출발지, 시안에 서다

지금 막 시안에 도착했다. 드디어 실크로드에 섰다. 여기서 내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냥 길을 따라가보는거?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야 한다.






여행오기전에 실크로드길을낙타타고 따라가볼까 했다. 그게 얼마나 미친 짓이라는 건, 오래걸리지 않았다. 기차에 타서 앉아 가는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한번은돈도 아끼고 현지인들의 삶을 느껴본다고 3등석 기차를 탄적이 있었다.장장 37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는데, 젖혀지지도않는 딱딱한 3인석에 6명이 앉아서 갔다. 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화장실을 갈수도 없었는데, 그건 일어나면 바로 자리를 뺏기기 때문이고, 화장실은 멀리서 풍기는 냄새만으로도 갈 마음이 없어졌다. 37시간 동안 나는 아주 혼줄이 빠져버렸다. 그나마 나는 앉기라도 했는데, 옆에서 서서 가는 이들은 말해 무엇하리.

후아. 그런데 낙타라니.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정말 존경합니다.)

실크로드_hidome_flickr.jpg 낙타타고 이동하는 건 이젠 '레저'뿐이다 ©hidome 출처 Flickr.com

그래서였을까?

시안 – 란저우 – 둔황 등 실크로드 길을 지나가면서 수많은 문화예술물들을보았다.


위험 속에 피어나는 예술


특히 실크로드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려야 한다는, 둔황.

둔황에는 둔황석굴이 있는데, 막고굴을 비롯해 서천불동, 유림굴을 포함한다. 모두 규모가 장대하고 이름난 유적이다. 투어를신청해서 가이드와 함께 그를 둘러보았다. 차를 타고 가는데, 도로 주위로 황량한 흙판이끝없이 펼쳐진다. 그 끝이 어딘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척박한 곳을 짐 잔뜩 실은 낙타를 끌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길고 거칠고 험난한 길을 그들은무슨 생각을 하며 건넜을까. 일확천금을 꿈꾸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뭔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실크로드는 위험한 곳이었다. 다양한 민족이 있어 약탈과 침략이 빈번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보상도 컸다. 기회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현실이 척박하고 힘들수록 기댈 곳이 필요해진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무사를기원하며 만들기 시작했다는 둔황석굴은 자그마치 1,000년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고, 600여 개의 동굴에 2,400여 개의 불상이 놓여 있다.

IMG_1270.JPG 둔황 막고굴
IMG_1293.JPG 둔황 막고굴에 그려진 불교미술, 수천년이 지나도 색채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뿐.

서천불동은 절벽을 깍아서 천여개의 불상을 만든 것이다. 막고굴도 절벽에 있는 수많은 동굴에 불상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제대로 보존된 것은 몇 개 뿐이지만, 그것을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세세하게 조각해놓은 부처, 그리고화려하게 칠까지 해놓았다. 그게 우리 불교미술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몇세기 미술사조가 들어있고 이런 건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 어려운삶을 어떻게든 이겨내고자, 잘 살아내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져 있는 건, 느껴졌다.


내가 가이드에게 '왜 이런걸-막고굴, 서천동굴을 사람들이 만들었을까'라고, 물었더니 딱 한마디 한다.

(두손 모으며) “신앙信仰”


고난 속에 맺어지는 문화


그 뿐이 아니다. 둔황 다음 간 곳은 투루판이었다. 이곳은 손오공이 나오는 화염산으로 유명하며, 있는 거라곤 바람과 모래 뿐인 불모의 땅이다. 그런데 또한 포도의 산지기도 하다.


투루판 사람들은 저 멀리 천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을 끌어오기 위해, 카레즈라는 독특한 지하수로를 만들었다. 약 20미터마다 우물을 파고, 이 우물들을 땅 속에서 연결한 것이다. 무려 수천년동안.

카레즈_flickr.jpg 지하수로 '카레즈'의 모습

현재 이 카레즈는 투루판에만 1천개가 넘게 있고, 총 길이만도 5000킬로미터가 넘는데다, 저수량은 60만톤에 달한다. 만리장성, 남북 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불가사의로 꼽힐만 하다. 사람들은 그 물로 사막에 포도나무를 키우고, 살아갔다. 모래 사막 한 가운데, 굵은 포도알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밭 풍경은 말로 못할 장관이다.


투루판포도_Daniel Bock_flickr.jpg 투루판농부가 포두를 수확하고 있다 © Daniel Bock. 출처:Flickr.com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거 말이다. 실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기위해 발악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었다. 모래사막과 살인적인 폭염, 메마른 기후. 이 불리하기 짝이 없는 조건을 외려 동력으로 활용해 풍요로운 땅으로 탈바꿈 시킨 투루판을 보면서, 둔황의 유적지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런 건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은 것들, 훗날 우리가 칭송해 마지 않는 불상이나 벽화, 카레즈 이 모든 건 결국 우리의 가장 본능적인 ‘살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왔다. 그게 없었더라면, 그런 치열한 문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실크로드를 지나는 길에, 나도 막고굴의 한 불상 앞에 두손 모으고 빌었다.


이 방황하는 시대를 어렵사리 관통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나를 위해.

우리의 행위가 또 다른 문화기 되길 바라며.

(두 손 모아) 신앙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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