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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가까워지는 길

너를 최대한 드러내보여

by 김글리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댄다.

시내 중심지에 있는데다,

음악연주, 페인팅, 각종 퍼포먼스 를 하는 거리 예술인들이 많아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SAM_5530.JPG 길거리 연주 밴드, "엘 칸도르 빠사, 부탁해요~!"


남미의 광장은 스페인 제국 시절에 지어진 탓에, 어딜 가나 지겹도록 똑같이 생겼다.

아르마스도 예외는 아닌지라,

광장을 중심으로 사면에는 성당, 관청, 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산티아고 아르마스광장_marlo salinas_flickr.jpg 아르마스 광장 전경 ©marlo salinas 출처 flickr.com

아르마스 광장 한쪽에 자리잡은 대성당에는

기도하거나 잠시 쉬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그 앞 길바닥에,

아까부터 누군가가 쭈그리고 앉아 미동도 않고 있었다.

산티아고 아르마스광장_네이버블로그sheenbee출처.jpg 아르마스 광장 서쪽에 자리잡은 대성당_ 출처: 네이버블로그 Sheenbee

뭘하는 거지?

호기심이 일어 가까이 가보니,

그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수 백명이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속에서도, 고개 한번 안들고 그림만 그렸다.


종이도 없고, 물감도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을 스케치북을 삼아, 물감도 없이 분필로 성모마리아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멋졌다. 분필로 그린 것 치곤 정말 멋졌다. 하지만 길바닥에 분필로 그린 그림이라니...

오래 가봐야, 오늘 저녁? 내일이면 깨끗이 지워질테다.


하지만 남자는 굉장히 진지했다.

사진 2049.jpg

지금 그리고있는 행위가 이 세상에서 전부인 것처럼,

자신의 작품이 길이 남겨질 것처럼.

자신의 혼을 길바닥에 아낌없이 쏟어부었다.


곧 지워져버릴 그림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는 뒷모습에서

나는 뭔지 모를 엄숙함을 느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성모마리아보다, 그의 뒷모습이 더 성스러웠다.


신에게로 가는 길은 수 없이 많다.


성공해서 남을 크게 도울 수도 있고,

성직자가 되어서 길 잃은 양을 인도할 수도 있다.

훌륭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아프리카에 가서 난민을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이 남자.

신의 집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성모마리아를 그리던

그 남자는 신에게 가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주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

재능을 숨기지 않고, 자신을 최대한 표현하는거야.

내 안에 깃든 을 드러내는 것,

그거야말로 에게 가까워지는 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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