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최대한 드러내보여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댄다.
시내 중심지에 있는데다,
음악연주, 페인팅, 각종 퍼포먼스 를 하는 거리 예술인들이 많아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남미의 광장은 스페인 제국 시절에 지어진 탓에, 어딜 가나 지겹도록 똑같이 생겼다.
아르마스도 예외는 아닌지라,
광장을 중심으로 사면에는 성당, 관청, 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아르마스 광장 한쪽에 자리잡은 대성당에는
기도하거나 잠시 쉬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그 앞 길바닥에,
아까부터 누군가가 쭈그리고 앉아 미동도 않고 있었다.
뭘하는 거지?
호기심이 일어 가까이 가보니,
그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수 백명이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속에서도, 고개 한번 안들고 그림만 그렸다.
종이도 없고, 물감도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을 스케치북을 삼아, 물감도 없이 분필로 성모마리아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멋졌다. 분필로 그린 것 치곤 정말 멋졌다. 하지만 길바닥에 분필로 그린 그림이라니...
오래 가봐야, 오늘 저녁? 내일이면 깨끗이 지워질테다.
하지만 남자는 굉장히 진지했다.
지금 그리고있는 행위가 이 세상에서 전부인 것처럼,
자신의 작품이 길이 남겨질 것처럼.
자신의 혼을 길바닥에 아낌없이 쏟어부었다.
곧 지워져버릴 그림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는 뒷모습에서
나는 뭔지 모를 엄숙함을 느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성모마리아보다, 그의 뒷모습이 더 성스러웠다.
신에게로 가는 길은 수 없이 많다.
성공해서 남을 크게 도울 수도 있고,
성직자가 되어서 길 잃은 양을 인도할 수도 있다.
훌륭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아프리카에 가서 난민을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이 남자.
신의 집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성모마리아를 그리던
그 남자는 신에게 가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주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