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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례식에 놀러오실래요?

진정 의미있게 살고 싶다면, 메멘토 모리

by 김글리

어느 정신병원에서 비밀리에 이런 모의실험이 행해졌다.

'과연 죽음을 앞둔다면, 사람의 하루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 사람의 인생은...?'


실험의 대상은 아리땁고 젊지만 무미건조한 삶을 견디지 못해 수면제 4통으로 우아한 자살을 택한, 그러나 미수에 끝나 정신병원으로 온 '베로니카'다. 의사는 재미없는 삶으로 다시 깨어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일주일뿐이라고 말해준다. 처음 그녀는 일주일 후엔 다시 죽을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걸 경험해버리게 된다. 죽음을 앞두게 되자, 그녀는 모든 가식된 예의범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남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으며, 처음으로 자기에게 무례해졌고, 다른 이들에게 'NO'라고 말했으며, 사람들에게 화도 내었다. ~척, ~체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삶이 너무 짧았으므로. 무엇보다 죽음 앞에선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으니까. 자기에게서 예술의 혼을 보게 됐고, 사랑을 발견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jpg 영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포스터

마침내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베로니카는 사랑에 빠진 같은 정신병동 환자와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연인의 품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려한다.........버뜨! 죽기로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베로니카는 죽지 않았으며 멀쩡히 살아있는 게 아닌가. 그랬다. 실은 이 모든 게 정신병동 의사의 계획이었다. <죽음의 자각을 통한 정신적 효과>에 대한 논문을 위해, 멀쩡한 베로니카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고 그녀의 삶이 어떻게 바뀌려는지 관찰하려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완전히 바뀌었고, 주변인물까지 바꿔놓았다. 순수한 죽음의 자각을 통해 말이다. (본인이 알면 경칠 일!) 위는 파올로 코엘료가 쓴 책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이야기다. 죽음으로 자신의 오늘을 바꿔버린 베로니카는 온몸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위해 살기엔 생이 너무 짧아. 니 인생의 오르가즘을 느끼라구!”



제 장례식에 놀러오실래요?

살면서 종종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나는 이전에 써둔 장례식 스피치를 꺼내 읽는다.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남기는 말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방 한 가운데 내가 누워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자고 깨보니 이미 숨이 멎어 있습니다. 과로사였을까, 사고사였을까? 아니면 너무 고민하다 생각이 폭발해버렷을까. 어쨌건 중요한 건 이미 제 몸이 지구에서 떠나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주위에 친구들과 가족들이 보입니다. 모두 눈 시울이 빨갛습니다. 난 내가 죽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데, 사람들이 슬피 우는게 싫습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엄마를 보는데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이제 겨우 24살인데,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저 젊은 여자가 너무 애처롭습니다.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말씀하셨죠. “멋지게 살아봐.” 그러나 멋지다란 말, 너무 모호하네요. 난 얼마나 멋지게 보일까 남들 시선에 훨씬 많은 신경을 쓰며 살아왔는데, 그것도 멋진 게 되나요? 얼마 전에 본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가 떠오릅니다. 엄마는 여자가 되고 싶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아들아, 나도 한때는 예뻤단다. 근데 남에게 예쁘게 보이고 멋지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더라. 스스로 멋지게 살아볼 수 있다는 것, 그런 용기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스스로 살고 싶은 삶은 만들어 가는 게 훨씬 멋있는 거야. 네가 가는 길이 절대 쉽지 않겠지만, 엄마가 앞으로 널 응원해줄게.”

젊음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아요. 만약 내가 더 살수 있다면 누구보다 멋지게 늙어갈 수 있었을 텐데, 방황만 하다 죽어버린 것 같아 새삼 분합니다. 전 제가 정말 오래 살 줄 알았어요. 너무 건강했고, 에너지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를 세계의 문화중심국으로 키우는 데 크게 일조할 줄 알았어요. 전 꼭 잘 될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인생은 내가 계획세운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너무나 조바심 났어요. 사소한 것에 화내고 짜증부리기도 했죠. 아... 사람들한테 미안한 일이 참 많네요. 10년 후, 20년 후 계획까지 세워놓았는데 신은 내가 24살에 이곳을 떠나도록 계획세우셨습니다.

아,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춤도 추고 시도 쓰고 내게 주어진 모든 걸 누릴 텐데. 비교 따윈 안하고 내가 가진 걸로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텐데. 조카들도 더 귀여워 해주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도 사랑고백을 더 많이 했을 텐데.

24살 귀자는 아쉬움과 후회만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아, 지나온 시간들이 스쳐가지만, 아무것도 생각할 수 가 없습니다. 그녀가 묻습니다. 내가 좀 더 살았더라면, 내꿈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걱정만 하며 삶을 낭비하고 있었을까? 제발 당장해버리세요. 무엇이든지 원하는 건 지금 해버리세요. 이 순간을 잡지 못하면 당신도 끝이에요. 죽음은… 노크 따윈 하지 않고 오니까요.


위는 24살 때 쓴 나의 장례식 스피치다. 죽는 걸 상상하며 쓰는데 너무 슬퍼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천년만년 잘 살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 떠나려고 하니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시한부 인생


생각해보면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다. 내가 이곳에 천년 만년 사는 게 아니라, 언제고 죽을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었나?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건 뭘까? 만약 내가 곧 죽는다 해도, 이렇게 살아갈까? 그런 질문들을 몇 번 던지곤 나면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는 대신,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내게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가끔 죽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아래는 내가 종종 하고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연습들이다.


주기적으로 유언장을 쓴다.

내 장례식장 풍경을 상상하며 장례식 스피치를 쓴다.

죽음에 관련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추천영화: <라스트홀리데이>, <어느 날 그녀에게 일어난 일>)

공동묘지를 찾아간다. (나는 주로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를 간다)


죽음을 생각할 때 가장 좋은 점 하나는, '무엇이 중요한지' 본질을 다시 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게 맞지 않는 옷들을 당장 벗어버릴 수 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다음의 묘비명을 만들었다.


[전 세계를 내 집삼아 잘 놀다간 이- 귀한자식 김글리]
내 안에 있는 거 남김없이 쓰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이제 즐겁게 후련히 갑니다.
Be free, jolla!
김글리 묘비명.jpg 이건 '봉봉'이라는 웹사이트에서 장난삼아 해본 거다. 그런데 이 문구도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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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할 때 또 하나의 좋은 점은, ‘무엇이 중요한지’ 본질을 다시 잡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도 죽을 때 ‘내가 좀 더 심각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돈을 좀더 모았어야 했는데, 사람들에게 보다 인정받는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미처 해보지 못한 일들을 아쉬워하고, 더 많이 행동할 것을. 좀 더 즐겁게 살 것을…후회한다. 확실히 죽음은, 삶에서 강력한 네비게이션임이 틀림없다. 내게 맞지 않는 것들을 가려낼 힘이 생기니까.


시인 존 휘티어에 따르면,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는데…’ 이다. 그래서일까? 불교도들은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두고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오늘이 그날인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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