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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힘

삶의 방향을 이끄는 이정표

by 김글리

세계여행을 3년 했는데 '길치'라고 고백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그럼 그동안 여행은 어떻게 했어요?" (뭐, 그럴 법두 하다)


하지만 나만의 비법이 있다. (음화홧~)

길을 잃고 헤매도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힘,

동서남북은 물론 왼쪽 오른쪽도 자주 헷갈리는 길치가 목적지를 찾아가는 힘,

그건 바로 바로,


'질문'이었다.



도보여행의 이정표가 된 질문


질문의 힘을 깨달은 건 19살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전여행할 때였다. 돈이 없으니 자연스레 걸어가게 되었는데, 기왕 가는 거 일반 국도보다는 옛길을 따라가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 남대문에서 부산 동래성까지 이어지는 '영남대로'를 따라 걸어갔다. (제 정신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ㅎㅎ)


이미 고백은 했지만, 나는 심각한 길치다. 아직 나만큼 길치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다. 분명 내겐 지도책도 있었고, 길에 세워둔 표지판도 보였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1시간에 1번 이상은 꼭 길을 잃었다. 길을 잘 못 들어 고속도로로 들어가기도 하고, 막다른 길로 빠지는 바람에 1시간 반을 고스란히 걸어서 다시 나온 적도 있었다. 심지어 길이 하나인 곳에서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방향감각을 저주했지만, 뭐 별 수 있나.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인 부산 동래성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수 없이 길을 헤매면서도 450km가 넘는 길을 열흘 만에 주파하였다. 수 없이 길을 헤매면서도 다시 방향을 잡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던 건, 바로 다음 질문 덕분이다.


"저기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떻게 가나요?"


길이 헷갈릴 때마다 묻고 또 물었다. 예전에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질문 안에 답이 있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랬다. 내 질문에는 내가 다다르고자 하는 목적지가 이미 들어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설사설사 길을 모른다 해도, 도중에 길을 잃는다 해도 괜찮았다. 질문을 하며 끊임없이 방향을 다시 잡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때 배웠다.


질문만 제대로 한다면, 아니 질문의 '방향'이 맞다면,

결국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르게 된다고.

Journey_www thebhavinshah com.jpg 질문이 나의 방향을 이끈다 (이미지출처:www.thebhavinshah.com)



우린, 과연 제대로 질문하고 있는가?


우리는 해답을 찾는데만 몰두하지, 질문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라는 영화를 보면,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인생의 정답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발명한다. 그리고그에게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깊은 생각’이라 불린 이 슈퍼컴은 답을 내놓을 순 있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얼마나?


“그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계산해내는데 750만년이 걸릴거에요.”


'깊은 생각'은 그로부터 긴 침묵속으로 빠져들어갔다. 750만년이 지나고, 마침내, 약속된 그날이 왔다. 곧 우주의 비밀이 풀리게 될 즐거움에, 지구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깊은 생각'이 내놓을 궁극적인 해답을 숨죽여 기다렸다. 750만년의 침묵을 깨고, 마침내 ‘깊은 생각’이 입을 열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_구글.jpg 슈퍼컴 '깊은 생각'이 정답을 말해주기 직전이다 _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한 장면


“해답은”

해답은?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삶과 우주와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해답은? 아. 제발 말해줘...


“42입니다!!!!

뭐어?


슈퍼컴이 해답을 알려줬지만, 아주 오랫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750만년 동안 기다려왔던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42라고? 수퍼컴 ‘깊은 생각’은 완전히 실망한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제안한다.


“답은 정확히 42입니다. 한 치의 오류도 없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여러분의 본래의 질문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진짜 질문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해답의 의미 역시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제가 그걸 알아낼 다음 컴퓨터의 설계를 만들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2.jpg 아......... 안돼!!!!!!!!!!! _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한 장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삶, 우주, 그 모든 것에 대해 질문했지만, 실은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걸. 답의 의미를 알려면 내가 던진 질문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다들 궁극의 질문이 뭔지도 모른 채 답만 찾은 끝에 일어난 해프닝! 질문을 모르는데 답이 뭐라고 말해준들 무슨 소용인가. 좋은 답은 좋은 질문을 던질 때 나오는 법! 조선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홍대용은 "질문의 크기가 곧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말했는데, 질문은 알고 보니, 내 삶을 넓혀주는 지평선 같은 거였다.



질문은 생각의 이정표다


질문은 이정표와 같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한다'. 질문이 생각의 방향을 이끄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생각의 수준이 결정되고, 그것이 곧 삶의 질을 만든다"고 가르쳤다. 위대한 성과를 내었던 위인들은 필생을 다해 좇던 질문들이 있었다.

필생의 질문 (이미지출처: www.pixabay.com)


"왜 사과는 아래로 똑바로 떨어질까?" (뉴턴)

"뉴턴의 물리학을 넘어서는 나만의 물리학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

"무엇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가?" (프로이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뉴턴은 과학의 획을 긋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은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으며, 프로이트는 지금까지도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무의식과 정신분석의 세계'를 탄생시켰다.


제대로 질문하는 건 이토록 중요하다. 그래서 프랑스의 부조리극 작가인 '외젠 이오네스코'는 "깨달음을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 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보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보인다.


미 인디언들은 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수시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방향을 잡아갔다. 이런 질문을 두고 ‘키퀘스천(Key Question)’이라 불렀다. 여기에 착안해 나도 내가 품고 있는 질문들을 한번 다 써보았다. A4 용지로 몇장이 되었다.


이 길이 내 길인가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요?

좋아하는 걸 하면, 업으로 연결이 될까요?

왜, 뭣 땜에 살죠? 목표가 없어요.

나는 대체 누구죠?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정말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되나요?

정말 방황해도 되나요?

어느 길이 좋은 길인가요?

실패하면 어쩌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열심히 살았는데도 허무합니다.

내게 맞는 길(직업)을 어떻게 찾나요?

두려움은 어떻게 없애나요? (이하 생략)



그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을 골라내 다음 두 개로 압축했다.

- 나는 누구인가?

-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두 개의 키퀘스천을 붙잡고, 내 길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이 질문에 답해보면 된다.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좋은 질문을 던져줄 질문들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좋은 질문은 구체적이고 예리하다. 모호하고 애매하지 않기에 문제를 파고드는 힘이 있다. 또한 닫혀 있지 않고 열려있다. 이 말은 생각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로 다양한 형태의 답이 나올 수 있다. 좋은 질문은 생각을 자극하고, 생각을 파고들고, 생각을 연결시킨다.


질문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게 된 뒤부터는 나를 이끌어 줄 좋은 질문들을 꾸준히 모아갔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questions-2245264_1920 pixabay.jpg 나를 이끌어줄 질문 (이미지출처: www.pixabay.com)


#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질문들


아래는 책 <스스로 답을 찾는 힘> (호리에 노부히로) 발췌한 질문들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어떤 일을 시작할때 물어보면 좋은 질문들이다.


1. 내가 얻고 싶은 결과는 무엇인가?

2. 나는 왜 그것을 얻고 싶은가?

3. 어떻게 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까?

4. 이것은 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5.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미래를 위한 3가지 질문들

아래는 내가 책상 앞에 붙여두고 자주 묻는 질문이다. 어떤 책에서 보았는데 '미래를 위한 3가지 질문'이라고 이름 붙여놓았다.


1. 지금 가는 방향에서 딱 한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2. 10년 뒤, 지금 나를 돌아본다면, 어떤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3. 지금 불가능해 보이는 것 중에서, 앞날에 정말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 나의 재능을 찾아가는 질문들

내가 잘하는게 뭔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면 아래 질문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시간을 내어 아래 질문들에 답을 찾아보자.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1.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칭찬하나?

2. 나는 어떤 순간에, 어떤 일을 할 때 열정적이 되는가?

3. 스스로 자랑스러울 때?

4.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면 가장 닮고 싶은점은?

5. 사람들이 내게 주는 피드백 중 가장 마음에드는 건 어떤 것인가?


# 나의 가치를 알아보는 질문들

가치는 한마디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내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진짜 가치관을 찾는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아래 질문을 활용하여 수시로 물어보면 도움이 된다.


1. 나는 무엇에 자극받는가?

(나는 어떤 말이나 생각에 힘이 나는가? 또는 화가 나는가?)

2. 나를 지탱하는 건 무엇인가?

(힘들 때, 나를 지탱하는 생각은 무엇인가?)

3. 내게 의미 있는 건 무엇인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어떤 것들인가?)



나는 믿는다.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선 먼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고.
좋은 질문이 좋은 답으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므로.


idea-1880978_1920 pixabay.jpg 어디로 갈건지, 말만 해. (이미지출처: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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