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장 두려워 한 그것을, 꺼내거라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날조된 '완벽한 사실'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태초에 '신'이 있었다. 게임광에 노는 걸 좋아하는 신은 매우 창조적이었다. 신은 '지구'라는 꽤 아름다운 행성을 만들고, 많은 존재들을 창조했다. 마침내 막판에 자신의 세포를 떼어 만든, '인간 Human Being'이라 불리는 종족을 만들었다. 이 종족은 매우 영리하고 창조적이며 지금껏 내보낸 동물 중 능력이 가장 뛰어난 반면,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눈과 귀가 밖으로 향해 있어,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신은 이를 이용해, 인간과 게임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바로 인간들의 기억을 모조리 삭제한채 내려보낸 것이다. 인간의 진짜 능력은 기억이 깨어날때까지, 봉인된다. 대신 신은 기억을 일깨울 힌트들을 그의 삶 속에 여럿 숨겨두었다. 그 힌트는 각 개인마다 다르게 디자인되었으며, 자기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발견할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기억이 삭제된 채 깨어날 순간만을 기다린다. 자신의 진짜 존재를 깨닫는 인간은, 그 순간 미몽에서 깨어나며 자신이 봉인해온 능력을 쓸 수 있는데 그 능력은 어마어마하여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이라 알려졌다.
그리고 수 만년, 수 십만년이 흘렀다............
그동안 자신의 본성을 깨달은 존재는 손꼽을 정도였다. 나머지 존재들은 그 소수의 깨어난 자들을 붓다, 크리스찬 등으로 부르며 숭상해왔다. 붓다가 "나를 절대 숭배하지 말라. 당신 안에 부처(깨달은 자)가 이미 있음을 깨달으라"고 간곡히 말했지만, 그를 귀담아 듣는 자는 없었다. 대부분 자신이 신과 같다는 걸 믿느니, 신 자체를 믿는 편이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그 편이 훨씬 정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엄청난 힘을 두려워했다. 덕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수십 세기에 걸쳐 대 유행했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답은 없는 걸로 전해진다.
신은 '즐거움을 누리라'고 내려보낸 인간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고통속에서 생을 보내게 되자, 고민에 빠진다. 결국 '신'은 더 큰 힌트를 전 지구에 주기로 결심한다. 과연 그 힌트는 무엇이었을까?
1955년, 태국 방콕에 ‘왓 트라이밋(Wat Traimit)’이란 사원에서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졌다. 이번 기회에 20년 동안이나 임시지붕 아래 방치됐던 점토불상도 옮기기로 결정한다. 새롭게 지어진 법당으로 이 불상을 옮기려고 기중기로 들어올리던 중, 그만 무게를 이기지 못해 '뿌직' 소리와 함께 불상에 금이 가버린다. 불상이 손상될 것을 염려한 주지스님은 당장에 공사를 중단시키고, 큰 천으로 불상을 덮어놓았다.
그날 밤이었다. ‘수백년 간 이어온 문화재를 손상시켰다’는 자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 주지는 불상을 살피러 한밤 중에 나온다. 손전등을 비추는 데, 갈라진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걸 발견한다. 안에 뭔가 있음을 직감한 주지는 점토를 부수기 시작한다. 몇 시간 후 점토가 다 떨어져 나간 자리에, 그는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부처를 마주하게 된다.
황금부처는 발견된 즉시 화제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몸체가 순도 40%의 황금으로 이뤄진 이 불상은 높이 3m, 무게 5.5톤에 달하고, 머리는 순도 99%의 황금 45kg로 되어 있는데, 황금값만 우리 돈으로 2,665억(2014년기준)을 넘었다. 역사적인 가치를더하면 값을 매길 수도 없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황금불상으로 널리 알려지며 명성을 떨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이 이 황금부처를 보고자 했다. 그들은 황금부처에 절을 하고, 사진을 찍고, 봉물을 바쳤다. 하지만 왜 황금부처가 이 세상에 나타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황금부처를 보러 온 여행자 중에 '지니'라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지니가 9살때였다. 어느날 아빠가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며, '세상에서 가장 큰 황금부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옛날 옛날 버마 (지금의 미얀마)군대가 태국을 공격했을 때야. 전쟁 통에 많은 게 부서지고 파괴됐지. 황금부처를 모시고 있던 사원에도 곧, 군대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들렸어. 사원을 지키던 승려들은 황금부처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밤낮 궁리를 했단다. 그러다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지. 바로 황금부처의 몸에 점토를 바르는 것이었단다. 덕분에 불상은 무사했지만, 비밀을 아는 모든 승려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 이후, 황금부처의 존재는 잊혀진 채 200년 이상이 흘렀단다. 황금부처는 오랫동안 점토불상으로 알려진채로 지냈지.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된거야.”
그리고 아빠가 말해준 사연은 위와 같았다. 그때 아빠는 이런 말을 덧붙였었다.
"황금부처가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가 이렇게 우연히 드러난 건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아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황금부처는 아니었을까? 다만, 우리가 그걸 잊었을 뿐인거야. 황금부처는 그걸 알려주려고 다시 나타난거고. 그러니까 내 말은, 이미, 우리 안엔 황금부처가 있는거야.
아이는 이야기에 단단히 홀렸다. 어느 연금술사가 '어떠한 사물이 진화할 때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더불어 진화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황금부처로 진화한, 아니 본래의 모습을 찾아간 점토불상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순간부터, 지니는 진화할 준비를 스스로 시작했다. 이 질문을 품음으로써.
세월이 흘러 9살의 소녀는 29살이 되어, 그 황금부처 앞에 서 있다. 그동안 많은 게 변했지만, 지니의 가슴에는 황금부처는 언제나 있었다. 찬찬히 황금부처를 살펴봤다. 그 옆에는 점토불상일 때 사진이 있었다. 어디에나 있음직한, 중후한 부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황금부처는 달랐다. 자기의 가치를 아는 존재가 풍기는 그런 아우라가 뿜어져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처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온 자의 위풍당당함이 있었다. 지니는 그런 황금부처가 부러워졌다. 그동안 자기 안의황금부처를 발견하려고 무척 애썼다. 하지만, 애쓸수록 더 닿을 수가 없었다.
좋은 친구, 좋은 사람, 좋은 딸이 되려고애썼지만, 그럴 수록 점점 더 초라해지는 자신을 볼 뿐이었다. 끊임없는 열등감과 자기연민에 시달렸다. ‘안돼,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 같이 쓸모없는 건 없어져도 괜찮아, 난 더 나아져야 해, 난 더 완벽해져야해.‘ 이런 생각들이 자신을 억눌러 왔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서 있는데, 눈물이 쏟아지려했다. 고개를 들자, 황금부처가 자신을 굽어보는게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빛나는 본질을 가려버린 건 내가 아니었을까. 열망하면서도, 두려움으로 한 스푼, 열등감으로 한스푼, 이렇게 점토로 덧씌워버린 건 아닐까.'
황금부처는 계속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지니는 그곳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네 안에서 나를 발견하거라., 나를 꺼내거라, 나를 표현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