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쓸모없습니다.

내안의 믿음 바꾸기 

by 김글리 Feb 04. 2019
언제든지 자신의 어두운 면과 대면할 때가 온다. 
처음에 나는 그들과 싸웠다.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고, 파괴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최소한 제거는 할 수 있을거라고.그런데 힘과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나는 힘이 빠져갔고, 상대는 더욱 더 세져갔다.
어둠과의 싸움은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종종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생각과 믿음‘을 프로그램에 비유한다. 프로그램 중에서도 악의적인 목적으로 개발돼 컴퓨터 시스템을 교란하고 다운시키는 악성프로그램이 존재하듯, 우리의 마음에도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거나 스스로를 실패자로 몰아가는 악성 믿음들이 있다. 


‘나는 뭘 해도 안돼’, ‘나는 살 가치가 없어’, ‘나는 남에게 폐만 끼치는 존재야’, ‘누구도 날 좋아하지 않아’, ‘나는 어떤 일도 마무리하지 못해’ 이런 믿음은 관계를 맺고,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에 교묘하게 침투하여 사용자가 이를 믿게 되면, 이 믿음들은 서서히 사용자를 파멸로 몰아가거나 깊은 우울에 빠져들게 한다. 




내가 가장 두려워한 한마디


사람을 움직이는 여러 가지 동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사랑과 두려움’을 들 수 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다른 감정들은 사라지거나 약해지지만, 이 두가지 감정만은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는다고 한다. 사랑과 두려움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면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으로 작용한다. 


내 삶을 움직여온 가장 큰 동력은 사랑보다는 두려움이었다. 내 안에는 수많은 두려움이 존재했다.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는 두려움, 평범해지는 두려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가난해지는 두려움, 혼자가 되는 두려움, 살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두려움은  쓸모가 없다는 두려움이었다. 만약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나를 죽이는 말은 바로 이 말이다. 


“넌 정말 쓸모 없는 존재야.”


이 한마디면 내가 가진 열정과 에너지를 즉시에 빼앗고 나를 깊은 우울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이미 마음속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만큼은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를 증명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히말라야를 오르고, 무전여행을 하고, 조직의 리더를 맡고, 열심히 공부해서 1등을 하고, 세계여행을 하고, 남이 하지 못하는 걸 해나가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자 했다. ‘봤지? 내가 뭘 했는지 봤지? 봐,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난 부족하지 않다니까!’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원했던 건 이 한마디였다. 


‘넌 정말 대단하구나! 근데 이렇게 하지 않아도, 넌 이미 멋진 사람이야. 존재 자체로도 충분해.’


하지만 내 안, 저 깊숙한 곳에서 반복되어 들리는 소리는 이랬다. 


‘아무리 애써도 넌 여전히 부족해. 가치가 없다구. 알아? 네 실체를 알면 모두가 떠나갈걸. 쓸모 없는 녀석.’

가만히 있으면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이 올라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여행을 하든,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뭔가를 배우든, 뭐라도 해야 했고, 스스로를 증명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서 쉽게 지쳤다. 그러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심하게 자책했다. 그럴 때마다 우울감에 빠지고 쉽게 무기력해졌다. 그러면 다시 ‘나는 쓸모없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이게 나의 패턴이었다. 


이 패턴이 심해지는 날이면,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 생각은 ‘그럼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연결되었다. 나는 너무 쓸모가 없어서 죽어야 한다는 이런 생각의 흐름은 일종의 ‘킬러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나는 자주 자살을 생각했고, 폭식과 같은 자기학대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도 두렵지 않았지만 단 하나. 나를 비난하고 학대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 킬러프로그램은 너무 두려웠다. 언제 어디서 작동하여 나를 어둠으로 끌고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용자를 괴롭히는 악성프로그램 (출처: tistory)

내면 속 전투, 이너게임 Inner game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게임이 있다고 한다. 외부에서 벌이는 ‘아우터게임(Outer game)’과 내면에서 벌어지는 ‘이너게임(Inner game)’이다. 아우터게임은 외부의 목표물을 얻기 위해 외부의 장애물을 돌파하는 것이고, 이너게임은 잠재역량을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는 내적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다. ≪이너게임≫을 쓴 티머시 골웨이는 성공하는데 혹은 행복해지는데 정말 중요한 건 ‘이너게임’이라고 본다. 그는 테니스 코치를 하면서 이너게임의 원리를 발견했는데,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는 것이다. 그는 스킬이나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보다 잠재력을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는 내면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선수들이 성과내는 데 훨씬 중요하다는 걸 발견한다. 이너게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내면에서 지시하고 통제하고 잔소리 하는 나를 ‘셀프 1’로, 그 잔소리를 듣는 대상인 또 다른 나를 ‘셀프 2’로 명명해보자. 셀프 1은 코치, 셀프 2는 선수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 둘이 벌이는 게임을 잠깐 살펴보면 이렇다.


셀프 2가 경기장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한다. 

“좋아, 이제 들어가자. 한번 멋지게 해보는거야!”  


이때 셀프 1이 코웃음 치며 말한다.

“웃기고 있네. 넌 훌륭하지 않아. 넌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고. 봐봐,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영리하지도 않지. 네가 지난번에 해냈을 때 누가 좋아하디? 넌 안돼. 더 강해지면 그때 돌아와. 지금은 안된다니까, 넌 너무 부족해!” 


이처럼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관중석에 앉아서 나를 평가하고 조종하고 비웃는 99%는 코치를 가장한 셀프 1, 즉 나 자신이다.  티모시 골웨이는 셀프 1과 2가 충돌할 때, 의도적으로 셀프 2에 집중하기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며, 셀프 2에 신뢰를 보내야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경기장을 뛰고 있는 선수이지, 코치가 아니니까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velt)의 아래 연설이 유명하다. ‘경기장의 전사(the man in the arena)’로 많이 회자되는 부분이다. 


“비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관중석에 앉아서 선수가 뭘 어찌했고, 뭐가 부족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지적하는 사람들은 중요치 않다. 모든 영광은 먼지와 피와 땀을 뒤집어 쓴 채 경기장에 뛰고 있는 자의 몫이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사람, 노력에는 실패가 뒤따르기 마련임을 아는 사람,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 앞서면 이길 것이요, 뒤쳐지면 질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고 패배했다 하더라도 그는 담대하고 위대하게 진 것이다.” 


사실 우리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평하고 비난하고 자책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인간행동연구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77%가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통 아이들은 자라는 18년 동안 “안돼!”라는 말을 14만 8천번 이상 듣고 자란다. 즉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라는 거다. 아무리 칭찬 100가지를 해준들, 고쳐야 할 점 한가지를 말해주면 거기에 꽂히게 되고 계속 그 생각만 하게 되는 경험, 다들 있지 않나? 누가 봐도 멋지고, 능력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무능력해’ ‘나는 가치가 없어’라고 믿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 내면 깊이 들어가면 그렇게 속삭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나처럼. 


‘나는 쓸모 없다’는 믿음은 내 삶의 모든 부분에 골고루 영향을 끼쳤다. 잘 나가다가도 막판에 알 수 없는 힘에 무너질 때가 있었다. 누가 나를 잡아 끄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를 옭아매고 있는 그 밧줄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내면의 비평가 입을 막고, 경기장 문을 열어 제치고 ‘그래도 하겠어!’하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믿는 대로 경험한다 


2014년 명상을 배우기 위해 (혹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인도의 한 명상학교에서 3개월을 지낸 적이 있었다. 아침 6시 일출명상으로 시작해 저녁 6시까지 요가, 명상, 철학수업이 번갈아 가며 진행되었는데, 재미있는 수업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내 안의 믿음 바꾸기> 세션도 있었다. 


하루는 인도인 선생이 들어오더니 대뜸 이런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어귀에 아주 멋진 차가 서있는 걸 보았죠, 둘은 그 차에 냉큼 올라서 장난쳤는데, 그만 차 주인을 만나게 되었어요. 차 주인은 엄청난 부자였는데, 성질이 고약했죠. 차에서 장난치는 두 아이를 보고, 엄청나게 혼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 명은 자기 사업을 일궈 큰 부자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어요. 분명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무엇이 그 둘의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바로 그 날에서 비롯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둘은 엄청나게 충격 받았습니다. 그리고 각각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내가 나중에 크면 엄청난 부자가 돼서 널 혼내 줄 거야!’

‘에이 씨, 역시 부자들은 싸가지가 없어. 난 절대 부자가 되지 않을 거라구!’

각각 부에 대해서 받은 인상이 달랐고, 그로 인해 부에 대한 믿음도 달라졌죠. 우리는 믿는 대로 자신의 삶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각자의 믿음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긴 이야기를 마치더니 우리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모두 조용히 앉아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속으로 이야기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정말 그 믿음 하나로 그렇게 달라지게 된 걸까? 뭔가 다른 게 또 있지 않을까?’ 선생이 이어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대로 경험합니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단 한 가지 차이뿐입니다. ‘단단한 믿음’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어떤 믿음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어떤 믿음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에너지를 앗아갑니다. 그럼 내가 어떤 믿음으로 가지고 있는지 그것부터 한번 있는지 살펴봅시다.”


선생은 우리에게 먼저 자신이 가진 믿음들을 모두 적어보게 했다. 믿음은 신앙만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다. ‘나는 감정표현을 잘 못해, 나는 필요할 때 사람들이 도와줘,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어, 돈은 좋은거야, 정치인들은 사기꾼이야, 난 착해, 난 운이 정말 없어.’ 이런 것들이 모두 믿음이 된다. 내가 어떤 것이든 ‘믿게 되면’, 그것은 내 무의식에 영향을 주게 되고, 무의식이 영향을 받으면 그는 내 삶을 지배하는 프로그램이 되어 내 현실에 반영된다. 


선생은 여러 믿음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부정적 것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힘을 주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보자고 했다. 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치 없다, 쓸모 없다’는 내 안의 부정적 고리를 끊어낼 절호의 기회. 인도인 선생은 어떻게 하는지 실제로 보여주겠다며, 누가 자원하겠느냐고 물었다. “저요.”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이 나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부정적 믿음을 하나 말해보세요.


“나는 쓸모 없다, 입니다.”


선생은 내게 눈을 감으라고 주문하고 말을 이어갔다.

“만약 당신이 그 믿음을 2년 후에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 거 같나요? 5년 후에는요? 관계에서, 재정에서, 경력에서 모든 부분에서 생각해보세요. 내 미래가 어떨지 ‘그려보고’, ‘느껴보세요.’”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던 40여명의 학생들은 침을 삼키며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선생의 주문대로 눈을 감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쓸모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땐 나는 언제나 ‘실패자’였다. 관계도, 일도, 잘 안됐다. 나의 두려움이 모든 걸 망치고 삐걱대게 만들었다. 미래를 상상할 것 없이 지금이 바로 그랬다.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온몸이 떨렸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것에 걸려버린 느낌.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모든 것에서 좌절했고, 슬펐다. 나는 나 자신과 세상에 화가 났다. 왜 날 알아주지 않는 거지? 왜 난 이 모양 이 꼴인 거지?난 꿈을 가졌지만, 언제나 실패자였다…. 


선생이 새로 주문을 했다. 

“이번엔 내게 힘을 주는 긍정적인 믿음을 하나 말해보세요.”


나는 영감이 발달해있고, 강한 영적인 힘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은 거기에서 “나는 세심합니다(I’m sensitive).”를 뽑아냈다. 그게 내게 힘을 주는 믿음이라고. 그 순간 반발심이 올라왔다. 그렇게 사소한 게 어떻게 내게 힘을 줄 수 있겠느냐 그리고 그게 긍정적인 믿음이냐, 선생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선생이 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나는 세심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경우, 2년 뒤,,, 5년 뒤 내 삶이 어떻게 될 거 같나요? 그려보고, 느껴보고, 우리에게 말해주세요.” 


수강생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상상했다. 그리고 말했다.


“음, 내가 세심하다면… 나는 사람들을 더 잘 느껴요. 그들이 필요한 게 뭔지, 그들이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 느낍니다. 그리고 도와줄 수 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세심하니까요. 내 인생은 분명해지고 확실해졌어요.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명확히 알고, 그걸 해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얻고 고맙다고 말하네요. 행복합니다.”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내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고, 그들이 내게 고맙다고 하는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아, 나는 가치 있는 존재였구나.’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다른 수강생들이 박수 치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줬다. 굉장히 행복했다. 내가 이렇게 환영 받고 있구나, 내가 이렇게 쓸모가 있구나. 엄청나게 기뻤다. 모든 게 참 고마웠다.


세션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내게 고맙다고, 정말 대단했다고 인사해왔다. 나를 안고 우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게 나 때문인지 그들 자신의 문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엄청 벅찼고, 내 안의 큰 오물 덩어리가 빠져 나간 것처럼 시원했다. 


그 동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했다. 내 실체-가치 없다, 쓸모 없다는 걸 알게 될까 봐, 그래서 그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서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7개월을 넘지 못했고, 누가 내게 호감을 표해도 결국 그가 ‘내가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아는 순간이 올까 봐 두려워 거리를 두었다. 누구에게도 나를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지 않았고, 항상 상대를 의심했다. 결국 이 같은 나의 모든 행동, 두려움들이 결국은 ‘나는 쓸모 없다’는 그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보니 정말 쓸모 없는 건, 내가 아니라 ‘나는 쓸모 없다’는 그 믿음이었다. 내가 버려야 할건, 내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는 쓸모 없다’는 그 믿음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부정적인 믿음들이 내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분명히 보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그 믿음들이 결코 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를 달리 볼 수 있는 힘이 새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바꾸는 대신, 나를 보는 눈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어둠’이라고 기피했던 부분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New Change (출처: Guardian Jobs)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한 용기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