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나긴 포도단식이 끝났다. 무려 24일이나 지속된 기나긴 프로젝트였다. 중간에 출장도 다니고, 할머니 병간호도 하고 여기 저기 다니느라고 힘들었다. 진짜 너무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기간을 무사히 지나와서 매우 기쁘다. 단식을 하면서 느낀 것과 변화된 것들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5일 이상 단식을 하면 장기단식으로 분류한다. 나는 총 24일을 했으니... 정말 긴 단식이었다. 이렇게 장기단식은 몸을 재생하거나, 병을 치료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쉽게 해서는 안된다. 단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전문가 없이 도전하는 건 십중팔구 실패하게 된다. 몸을 비우는 과정에서 고통과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나도 이번에 단식을 하면서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단식중에 가장 힘든 것을 꼽으라면 식욕과 무기력함이다.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식욕이 더욱 강화되어서 정말 먹방을 엄청 봤다.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힘이 없으니까 육체적인 활동도 안되고, 또 집중하기도 힘들어서 무기력해졌다. 계획해둔 일들 중에 필수적인 것만 간신히 소화할 수 있었다. 특히 힘든 순간들이 총 4번 있었다.
첫번째는 단식을 시작하고 3일차까지다. 매번 먹는 습관에서 먹지 않으면 몸이 보내는 공복감 신호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기운도 완전 떨어져서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3일차가 지나자 공복감에 적응되면서 다시 몸이 괜찮아졌다. 저녁에 빈 속으로 자는게 얼마나 상쾌한지 느낄 수 있다.
두번째는 9일차였는데 어지럼증이 심하고 정신이 아득해져 조금만 움직여도 세상이 핑핑 돌았다. 그래서 종일 누워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다시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세번째는 14일차였는데 정말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지방출장을 3일동안 다닐 때였다. 원래 단식을 제대로 하려면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에서 푹 쉬면서 해주는 게 좋다. 그래야 독도 제대로 빼고 몸에 무리도 덜하다. 그런데 일정 때문에 도시를 돌아다니며 단식을 하다보니 기력이 더 고갈되었다. 포도도 먹지 못하고 거의 물만 마셨다.
마지막으로 20일차~22일차에 다시 고비가 왔다. 이땐 정말 걷는 것도 힘들어서 포도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소파에 누워 있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매순간 올라왔다. 다시는 단식을 하지 말아야지, 라는 다짐을 하루에도 열번은 했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지치고 고통스러웠다. 식욕은 또 얼마나 올라오던지. 내내 짜장면과 순대볶음 먹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3일차가 되자, 머리도 맑아지고 몸에 기운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날에는 몸이 너무 가뿐해졌다. 그간 24일동안 단식을 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운이 쌩쌩하고 힘이 넘쳤다. 내가 그간 단식을 했던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ㅎㅎ 단식을 지도해준 목사님은 나를 진맥하시더니, 몸의 숙변이 80%이상 빠져나가서 피가 깨끗해졌다고 한다. 이런 고통과 쾌락은 장기단식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단식기간 동안 체중이 좀 줄었다. 시작할 때에 비해 총 9.5키로가 감량했는데, 그중 단백질이 2~3키로, 수분이 2키로가 줄어들었다. 근육손실을 예상했지만, 막상 수치로 단백질이 빠져나간 걸 확인하니 많이 속상하더라고. 그런데 더불어 체지방도 많이 빠져서 그건 좋았다.
입맛이 좀 바뀌었다. 나는 단맛을 편애하고 신맛은 극혐한다. 과일도 수박과 참외처럼 단맛만 있는 걸 골라먹을 정도다. 오렌지나 포도 같은건 셔서 잘 못먹었다. 그런데 단식을 하면서 단맛이 싫어지고 되려 신맛이 더 좋아졌다. 단식을 지도해준 분의 말에 의하면 위와 간이 튼튼해져서 입맛의 조화를 찾은 거라고 한다.
무엇보다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 단순히 감량만은 아니라 마음도 정화된 기분이다. 단식하는 동안, 온갖 욕구들로 마음이 혼돈상태였는데, 단식이 끝나고 호수처럼 고요해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느껴져서 이런 몸과 마음 상태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 단식을 하면서 몸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정성들여 먹고 살면서 세심하게 돌보고 가꿔 주려 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단식을 하면서 욕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하고자 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자 하는 것들도 많은 인간이라 욕심이 많다. 그런데 그 욕심에 치이다 보니, 늘 허둥지둥하면서도 깊이 만족하며 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욕심을 버리고 무욕으로 살아야 하나, 그런데 욕심을 버리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이루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민하다, 좋은 해법을 발견했다. 욕심이 많아서 고민아라는 하는 사람에게 법륜 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욕심을 버리지 마세요. 뭣하러 버립니까. 하고 싶으면 그냥 하세요. 다만 내가 품고 있는 욕심이 어떤 욕심인지, 그게 내게 진정으로 이익이 되는 건지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나다. "
욕심을 버리라는 말만 듣다 욕심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자 귀가 번쩍 뜨였다. 욕심은 하고자하는 마음으로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위인들이 이룬 업적들도 결국은 욕심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큰 욕심일 때, 욕심이 나를 끌고다닐 때 그 욕심은 해가 될 수 있다. 식욕자체는 생존에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먹으면 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욕심을 버리는 것 자체보다, 자신이 부린 욕심에 책임지는 태도이다.
먹고싶으면 먹어라. 대신 그로 인해 살이 지는 건 감내해야 한다.
돈을 벌고 싶으면 벌어라. 대신 그만큼 남과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해내야 한다. 더 많이 일해야할 수도 있다.
좋은 사람을 사귀고 싶으면 사귀어라. 대신 그만큼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욕심에 제대로 책임지기.
이번 단식을 통해 배웠네 ㅎㅎㅎ
앞으론 건강하게 몸을 가꾸는 나의 욕심에 기꺼이 책임질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