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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ug 20. 2019

미래를 설계할 시간, 나만의 갭이어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경험할 시간과 기회

인생을 설계할 나만의 시간


'갭이어  Gapyear'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갭이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그 틈인 1년여 동안 청소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이 시기에 청년들은 봉사활동, 여행, 교육, 인턴, 창업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면서 향후 자신이 어떻게 살 건지 미래를 설계할 시간을 갖습니다.  


19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교육제도이자 문화로, 효과를 인정받고 유럽과 미국 등지로 전파됩니다. 영국과 미국의 청소년 8명중 1명꼴로 갭이어를 갖는다고 합니다. 영국의 자료에 의하면, 갭이어 경험이 있는 젊은이의 대학 중퇴비율이 3-4%로 평균 20%보다 현저히 낮고, 갭이어 이용이 대학의 전공 목적을 뚜렷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산케이 신문(2011.8.8) 참조) 영국왕실에서도 갭이어를 적극 활용하는데요, 윌리엄 왕자는 영어교육 봉사활동과 팜스테이, 군사훈련 등을 하며 보냈고, 찰리 왕자도 아프리카에 가서 고아원에 갭이어를 하고 왔습니다. 

갭이어 중인 배낭여행자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N


제가 갭이어를 처음 접한 건, 21살때 호주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당시 많은 유럽친구들을 만났는데, 너 지금 뭐하고 있어? 물으면 "나 갭이어 중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갭이어? 그게 뭔데? 묻자 한 친구가 이렇게 답해줬습니다. 


"우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1~2 년간 유예기간을 줘. 그게 갭 이어야. 그동안은 일을 하든, 여행을 하든, 공부를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지,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를 탐색해보는거지. 나는 이번에 여행마치면 대학에 가서 심리학을 공부할거야."


이 말을 듣고 심장 튀어나올뻔 했습니다. 너무 부러워서. '세상에 사회가 공식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설계할 시간을 준다고?' 막말로 우리는 앞날을 고민하려면 "너 대체 취직은 어떡하려고 이러니, 공부는 언제하려고 그 모양이니. 아직 얘가 철이 덜 들었네' 와 같은 주변의 걱정과 잔소리를 감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휴학을 하든, 직장을 그만두든 그 시간을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데, 이 친구들은 제도의 '지원'을 받으며 그런 시간을 가진다니, 너무 부러웠죠.  


현재 미국의 많은 대학이 신입생들에게 '갭이어'를 장려합니다. 대표적으로 하버드대학은 2000년초부터 갭이어를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관련해 홈페이지에  “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학 때까지 공부에만 몰두하는 게 요즘 학생들의 현실”이라며 “한발 물러나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탐색하고 삶의 목표에 대한 시각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의 많은 고등학생들이 대학입시로 많이 지쳐있고, 상당수가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갭이어를 통해 학업을 벗어나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재충전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현재 미국에서만 고교 졸업자 중 매년 3만명 이상이 갭이어를 택하는데요, 이를 통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미국갭협회 (American Gap Association)'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갭이어를 택한 학생 10명 중 9명꼴로 갭이어를 통해 더 성숙해졌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아시아에는 2010년 일본에 재팬갭이어가 도입된후, 2012년엔 한국갭이어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갭이어를 시행하는 대학교가 없습니다. 또 국내대학은 신입생이 첫 학기에 휴학하지 못하도록 학칙으로 규정해두고 있어 갭이어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됩니다. 아쉬운 부분이죠.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경험할 시간과 기회' 


제가 예전에 IT 쪽에서 크게 성공하신 분의 강의를 듣다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오히려 실패의 요람입니다. 실패해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요. 99번 실패해도 1번 성공하면 그걸로 된 겁니다.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법입니다.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기회’를 주는 거에요.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아는 기회요.”



자신에게 기회를 주라는 말엔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잘하는 일을 찾고싶다고 하는데, 뭘 잘하는지는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그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죠.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현재 각광받는 곳은 그 학과를 졸업하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전망도 부질없습니다. 현재 있는 직업이 30년 내 40%가 사라진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대세를 따르기보다, 오히려 자기에게 맞는 걸 하는게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자신을 알아볼 기회, 인생을 어떻게 살 건지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면, 언제고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면 남이 좋다는 걸 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의 답이 없으면 결국 남이 만들어 놓은 답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잘하는 일을 찾고 싶다고 말들 하는데, 잘하는 일은 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보니 몇 가지 정도 시도해보고, 나머지는 선입관으로 분류해버립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알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포기할 뿐이죠.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탐색하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자신을 알아볼 시간이 필요한 데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를 탐험하고 경험할 시간과 기회가 필요합니다.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가마와 같은 탐험가들은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기 위해서 수 많은 곳을 항해했습니다. 신항로를 개척하자면 길이 없는 곳도 가야하고, 때로는 길을 만들어가면서 가야합니다. 기꺼이 길을 잃어도 봐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 내가 어떤 인간이며 어떤 길을 걸을 건지 스스로 답을 찾고,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혹은 아예 뿌리내리지 않고 살 것인지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갑니다. 효율성만을 따지면 어렵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알아볼 기회, 인생을 어떻게 살 건지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면, 언제고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면 미래도 없습니다. 



방황할 때는 미래를 생각하지 말 것


지금 반드시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순간 반드시 해야 할 고민이라면 그 고민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도적으로 살고싶다면 더더욱 인생을 설계할 나만의 시간을 필요합니다.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없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몇 년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그 해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으로 직업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는 구직하는 대신, 우드스톡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어가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모조리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독히 가난한 생활이 이어졌지만 그는 책상 서랍에 1달러를 넣어두고는 그 돈이 있는 한 괜찮다고 위안하며 버텼습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면서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무런 책임질 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즉 방랑을 할 때는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면 안된다. 특히 다음 두 가지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는 굶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다.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이다. 성취에 대하여 생각해서는 안된다.” 

-구본형,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중에서


조셉 캠벨의 사진

5년 뒤 우드스톡을 나온 그 청년은 사라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이 사람이 바로 금세기 최고의 신화학자로 꼽히는 '조셉 캠벨'입니다. 훗날 그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그것이 헌신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그러니 방황할 때는 미래를 생각하지 말 것.
설령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문은 열릴 것이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나만의 갭이어 실천법>

도끼도 쉬면서 갈아주어야 더 잘 드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주기적으로 갭이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3~4년에 한번씩, 한번씩 갭이어를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 갭이어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가장 먼저, 갭이어를 선언한다.

언제고 앞날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갭이어를 선언한다.

"나 지금부터 갭이어 할거야."


2. 필요한 만큼, 나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1개월이든, 3개월이든 1년이든 필요한 시간을 가늠해 그를 나에게 선물한다.

시간을 미리 정해두는 건 이유가 있다. 시간을 정해두고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고민하고 모색해야할지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기 쉽다. 이렇게 시간을 정해두면 스스로 불안감이 좀 덜해진다.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가게 되면 불안감, 조급증으로 인해서 여유를 가지기가 어렵다. 내 길을 찾아가는 방황길에서, 여유는 황금처럼 귀하다.   


3. 나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셀프계약서를 작성한다.

나는 갭이어를 시작하면 나와 계약서를 쓴다. 6개월의 시간을 선물하고, 그도안 한달에 100만원의 지원을 하고, 무얼 해도 괜찮다는 내용을 쓴다. 내가 무얼 하든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무을 하든 집중해서 충만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계약서를 쓰는 게 유치해보일 수도 있지만, 말로만 하는 것보다 훨씬 있어보이는 데다 이 시간과 나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아래는 내가 수년 전 작성했던 계약서다.

  

4. 나만의 갭이어를 시작했다면, 이를 주변에 적극 알린다.

"나는 앞으로 석달은 내 시간을 가지기로 했어. 그 가긴동은안 내가 하고싶은 걸 좀 해볼거야. (그러니 뭘하든 간섭하지 말아줄래?)" 라고 미리 방어벽을 치는 거다. 사람들은 대놓고 하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간섭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해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각자만의 방식으로 알아서 해결하자.


2016년에 나와 쓴 갭이어 계약서다. 혹시 궁금해할까봐 참고로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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