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글리 Aug 26. 2019

내 마음이 편한 길을 따릅니다

어떻게 살까? 24살 농부처녀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쉽지가 않다. 돈을 벌어도, 아름다워도 여전히 불행한 사람들도 많다. 나의 길을 찾기 위해 10년 이상 방황해오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하지만, 그 누구도 행복을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것. 

'내가 언제 행복한가’를 알아가는 건 결국 나의 몫이고, ‘내가 누군지 아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누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지  너무 막막한 일 질문에, 빛같은 힌트를 준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졸업을 앞두었지만, 취업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친구들은 밤낮으로 취업 스터디를 하며 애를 태웠지만 내 관심을 다른 곳에 있었다. 내 주된 관심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디자인 하는 일이었다. 당장 커리어를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보았을 때,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해야할 시간이 20대라고 생각했다. 20대는 무엇을 선택해서 올인하기엔 너무 빠른 시기였다. 내 길을 정하기 전 마음껏 헤매고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언제 행복한지, 무엇을 견딜 수 없어하는지, 더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막막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나보다 먼저 자신의 길을 찾고 만들어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았는지 듣다보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내 계획을 알려,  지인들로부터 몇 군데의 장소와 사람들을 추천받았다. 그러다 귀농한 분의 소개로 '풀무학교 전공부'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풀무전공부는 귀농자들에게 농업전반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주는 곳이다. 공식인가는 받지 않았지만 국내 최초의 교육시설로, 농업대학교라 할 수 있다. 

풀무 전공부 본관 전경 ©복음과 상황 이종연



24살 농부처녀 이야기


내가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전공부에 도착한 건 9시가 넘은, 으슥한 밤이었다. 미리 연락을 하여 방문요청을 한 덕분에 하루를 머물며 둘러볼 수 있었다. 학교 측의 배려로 기숙사에 짐을 풀고 예닐곱명의 학교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30대 ~ 50대 정도로 보이는 선생들 사이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여자 선생이 눈에 띄었다.  원예를 가르치는 '조 선생'인데, 24살 나와 동갑이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어, 편의상 조선생이라고 칭한다)


순간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나는 아직도 내 길을 몰라서 방황중인데,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농업 학교 선생'이 되겠다고 결정했을까? 


마침, 그날 밤 조선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나는 조선생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어떻게 지내나요? 근데 여기살면 힘들지 않나요? 도시에서 친구들처럼 살고 싶진 않나요?” 조선생은 수수한 인상만큼 말도 군더더기 없이 조곤조곤 하였다.


조선생이 시골출신일거라는 추측했는데, 그는 예상외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토박이었다. 중학교까지 서울에서 다니다 고등학교를 농업대안학교인 ‘풀무고’로 가게 되었고, 이후 일본으로 유학가 2년간 원예를 배우고 돌아왔다. (풀무고는 1958년에 설립된 농업대안학교로, 농약과 비료를 엄청 써대던 70년대에 이미 유기농법을 도입했을 정도로 앞선 곳이다-글리 주)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오전에는 농사를 짓고, 오후에는 귀농자들에게 원예를 가르쳤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선택에 얼만큼 확신이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대답했다. 


“에유, 저라고 힘들 때나 아쉬울 때가 왜 없겠어요. 저도 도시에서 보통 친구들처럼 살고 싶죠. 친구들은 저를 보면 의아해 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예쁜 옷 입고 꾸미지도 못하는데 왜 할까 싶은거죠. 근데 여기에선 서울에선 누릴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어요. 별 보는 거, 좋은 공기 마시는 거... 작은 것들이지만 이런 게 더 귀하다고 느껴요.그걸 아니까 추스리면서 사는거죠."


그녀도 100퍼센트 확신이 없었다는게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다면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선 농업이 매우 취약한 산업이고 매우 힘들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잘 안다. 또 시골은 나이들어서 오고 싶어하지 이십대에 농사짓고 살기 바라는 건 드물지 않는가? 대체 왜 농업을 택했을까?  


“뭐,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일할 기회가 주어졌고 지금 하고 있는 거죠. 보면 알겠지만, 사실 여기에서 사는 게 그렇게 거창하거나 특별한 일도 아니에요. 다 똑같거든요. '생태'를 추구한다 해도 맨날 라면 끓여먹고 ㅎㅎ 사소한 걸로 싸우고 그래요. 하지만 도시에서는 돈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많은데, 여기선 돈없어도 할 수 있고, 하고싶고 누리고 싶은 걸 할 수 있죠."


그녀의 입에서 ‘농촌을 제일가는 생태현장으로 만들겠다’ 이런 거창한 목표가 흘러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무심한 답에 놀랐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에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 강한 충격을 느꼈다.


"무엇보다 여기 있으면 제 마음이 편해요. "


거창한 목표 따위 없어도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다니!!!! 남다른 길을 가기 위해선 지구평화나, 남들이 범접하지 못할 큰 목표가 있어야만 하는 거 아닌가? 사명감이나 남다른 비전이 있어야 하는거 아니었어? 고작 그런 평범한 걸로도 가능하다고?????  '내 마음을 따라간다'는 그 흔한 말이,  24살 농부처녀에게서 흘러나오자, 커다란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땅, 하고 때렸다. 



남다른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어질어질한 밤을 보낸 다음날. 풀무전공부에선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보고 싶어서 수업 하나를 청강했다. 오전에는 논밭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인문학부터 철학, 이론등을 공부한다고 했다. 마침 철학수업이 진행중이었다. 

풀무 전공부의 현장실습 시간 ©복음과 상황 이종연


평소 나는 귀농자들은 뭔가 ‘남다른 사람’ 일 것이라 생각했다. 일반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만큼 다른 뭔가가 있을거라고 여겼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에 질려 숲에 들어간 헨리 데이빗 소로처럼 특별한 철학이 있거나, 평생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니어링 부부같은 소박하지만 범접못할 꿈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수업에 들어가, 방해되지 않으려고 입 꾹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예닐곱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걔 중 나이 지긋하신 분이 내게 여길 왜 오게 됐냐고 물었다.


“색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요.” 라고 했더니, 그 분이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 글리씨는 무슨 색입니까? 여기 색다른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색다르다’ 는 말 속에는 이미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잣대가 있었다. 

“아, 그렇네요. 그냥, 여기 오신게 평범하진 않은 거 같아서요. 귀농을 어떻게 선택하신거에요?”


이번엔 전체 수강들에게 내가 물었다.  다들 대답이 간단했다.

"그냥."

"체질에 맞아서요."

"한번쯤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틀을 귀농학교에서 지내면서 보니, 정색했던 그 수강생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남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똑같이 ‘어떻게 살건가?’ '행복하고 살고싶다‘와 같은 비슷한 물음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선택의 기준이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거였다. 생각보다, 내 길을 찾는 건 단순했다. 자기계발서의 말들과 달리 거창한 명분, 목적같은 건 없어도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마음이 편한가.'



마음이 담긴 길 


내 마음이 편하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여기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나의 가치관과 부합하는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다른 일을 한다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라는 질문을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하게 된다. 가치관이 부합하지 않으면 내면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둘째, 그 일의 장단점을 모두 감내할 수 있는가. 

어떤 일이든 좋은 면만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창업도 막상 뛰어들면 죽으라고 일하고 고생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여행도 막상 가보면 생각지 못한 위험이 숨어있고 피곤한 일들의 연속이다. 이처럼 어떤 일의 이면에 숨어있는 면들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면, 아무리 가치관이 부합한들 불만스럽기 마련이다. 


내 마음이 편한 길을 간다는 건, 성공하는 길과는 다르다.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고 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정반대로 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담긴 길을 걸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이에 대해 참고할만한 좋은 글이 있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건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것이 마음이 담긴 길이라면. 마음에 담긴 길을 갈 때 자아가 빛난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류시화) 중 






길을 찾는 데엔
이정표가 없어도 문제지만, 이정표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이 세상에 수 많은 이정표가 있지만, 내 길을 가는데 필요한 이정표는 하나뿐이다. 

나의 마음


 오늘 나에게 물어본다.

'이 길에 내 마음이 담겨 있는가?'



지금 너의 이정표는 어딜  향하고 있어?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길이 좋은 길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