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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ug 20. 2019

길이 보이지 않을 땐 딴짓을 권함

내 삶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조언했다. 


뭐라도 한 길을 택해서 딴짓하지 말고 가라고.

'포기'는 김장할 때나 쓰는거니 '존버'하라고.

앞날이 어찌될지 모르니 일단 지옥같아도 이 자리에서 잘 버텨보라고. 


나 잘 되라고 해준 고마운 말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사실 나도 열심히 지내면 잘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해 다이어리에 빼곡히 스케줄 관리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바쁘면 잘 살고 있는 거'라는 생각에 위안받으면서. 그러다  인생좌표가 순식간에 틀어져버린 계기가 생겼다.    



계속 가, 말아?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com)


27살, 그녀에게 일어난 일 


당시 모 NGO 단체에서 교육기획 활동가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틀에도 박히거나 소속되길 싫어하는 내가 조직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조직이란 시스템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 선배들은 "최소 조직생활 2년은 해봐야 한다"며 "그래야 사회를 알게 된다"고 조언해줬다. 내 길을 찾는 데에 좋은 말이라고 생각되어 기왕이면 내가 하고 싶은 일 '청년, 소통, 소셜 비즈니스'를 다루는 조직을 찾았고, 마침 운 좋게 그 일을 하는 중이었다. 야근이 많긴 했지만 일은 재밌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으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꽉 짜인 조직 생활 속에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계속 불편해왔다. 


'다른 사람의 일을 해주고 돈을 받고 댓가로 내 인생을 팔고 있는게 아닐까? 

내 시간을 조직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 쓰면 어떨까?' 

나도 모르게 점점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미지 출처: 싱글라이프티스토리닷컴)

갈수록 조직에서 보내는 내 시간들이 무척 아까워졌다. 월급날이 되어도 전혀 기쁘지 않았고, 퇴근길이면 허무해졌다.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내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내 시간. 하루하루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데 모조리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기는 두려웠기 때문에 무조건 버텨야겠다고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지냈다. 퇴근 길마다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에 휩싸이곤 했다. '다 때려치고 싶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일주일만이라도 죽도록 아팠으면…' 나도 모르게 이런 말들만 되뇌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했을 때 일주일 간 여름휴가를 떠났다.


휴가 마지막 날 소백산을 등반하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급하게 내려오면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엔 별일이 없었는데,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허리가 심상치 않았다. 당장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다. 결과를 기다리며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데, 잠시 후 의사가 오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상태가 생각보다 중증이에요. 척추 맨 아래 디스크가 터져서 흘러나왔네요. 이 상태로 라면 입원도 생각하셔야겠어요." 


병명은 '척추추간판 탈출증'. 의사는 완쾌되는데 최소 3개월 이상이 걸리고, 적어도 한 달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바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병가를 내고 입원을 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지만, 희한하게 내 마음은 크게 안도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시간을 갖는 구나..'   




살고 싶은 대로 살수 있을까?


완쾌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1개월을 입원치료하고도 그 뒤로 꼬박 3개월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지냈다. 회사 일은 물론이고, 어학공부, 커뮤니티 활동, 책 쓰기 등 열의를 쏟으며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이 모든 게 올 스톱되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자니 생각만 많아졌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직장은...?  


더 이상 직장생활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도,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빨리 나아서 돌아오라는 팀장님의 응원을 받고서, ’회사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만두면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대로 백수 될 확률 100%. 하지만 회사 돌아간다고 해서 더 나아지리란 보장도 없었다. 문득 억울해졌다. 뭐든 '열심히'하면 행복해 질 거라고 해서 그를 따라왔는데, 돌이켜보니 바쁘기만 할 뿐, 행복하지가 않았던 것. 


문득 억울해졌다. 뭐든 ‘열심히’하면 행복해 질 거라고 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돌이켜보니 바쁘기만 할 뿐 행복하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은 병가 동안 하루가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지금 내가 정말로 포기하고, 선택해야 할 건 무엇일지, 결정해야 했다.


별별 생각이 떠올랐다. 책 써서 밥 벌어먹고 살까? 번역해서 돈을 벌어볼까? 아니, 20대에 백수로 살면 안되나? 왜 굳이 일해야 하지? 심지어 20대엔 일하지 말고 놀아야 한다는 데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을 그만두기는 두려웠다. 이대로 세상과 영영 멀어질까 봐, 겁났다. 


‘대부분이 가는 길을 떠나서 살 수 있을까? 정말 내 마음대로 살아가도 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의해봤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러다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책 ≪나를 부르는 숲≫을 읽게 되었다.



내 삶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이 책은 브라이슨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몇 달 간 걸으며 쓴 경험담으로, ‘뉴욕타임즈’의 3년 연속 베스트셀러였으며 기행문학의 현대적 고전으로 꼽히기도 한 좀 대단한 책이다. (한번 책을 펼치면 끝까지 낄낄대며 읽을 수 있을만큼 재밌다.) 


읽다보면 어디라도 걷고 싶게 만드는 책

사실 저자 브라이슨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배가 남산만한데다 생전 운동이라고는 안 해 본 중년남성으로, 하루 10킬로미터를 걷는 것도 좀 무리인 그런 체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에 이르는 3,360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꿈꾸게 된 계기가 책 초반에 나온다. 


어느 날, 빌은 어느 날 집 근처를 산책하다 우연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발견한다. 이 길은 해마다 2000여명이 도전하지만 10%도 안 되는 숫자만이 종주에 성공하는, 상당히 고난이도 코스다. 그런데 그 길에서 막 대학을 졸업한 젊은 커플을 만난다. 그들은 대학졸업기념으로 6개월 동안 트레킹중이었으며, 상큼하게 자신들의 길을 즐기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커플의 뒷모습을 보며, 빌은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항상 지금은 다음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나쁘게 보면 근근이 갚아 나가는 빚진 죄인 같다.
철학적으로 말하며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소외되고 있다.
빚을 다 갚았을 때 -아이들이 다 자라고 직장에서 놓여 날 나이-에는 
이미 자신에게 시험해볼 만한 것들은 남아있지 않다.”
-위의 책, 13p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군대를 다녀오고, 군대를 나와서는 취직하고, 떨려 나지 않기 위해 밤낮 일에만 몰입하는 인생.... 너무 달리고 있어 종종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왜 가고 있는지 조차 잊을 때가 많은 인생. 그래서 그는 한번도 꿈꿔보지 않은 애팔래치아 종주를 꿈꾸고, 행동으로 옮긴다. 


자신의 삶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아니 빚지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그만두는 용기가 필요해


당시 나도 그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내가 진짜 두려웠던 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삶에서 소외되는 것, 그게 진짜 무서운 일이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이렇게 살아볼 걸' 후회 하는 게 가장 두려웠다. 내 마음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지금의 삶을 더 열심히 사는 게 아냐.

                                     지금과는 다르게 사는 거지. '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인간이 지구에 태어날 확률은 무려 100조 분의 1, 

그런데 이대로 살아서 행복할 확률은 0.000001%. 

이대로 이 귀중한 시간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행복한 방식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자면 선택해야  했다. 

선택할 때는 무엇을 가질 건가 보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고려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엇을 포기할 건가, 그건 명확했다. 


한 달간의 고민고민 끝에 '재활치료'를 사유로 사표를 썼다.  


27살. 친구들은 경력을 위해, 결혼 혹은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열라게 일하고 있는 때,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사람들은 앞으로 뭐 할거냐고 물어왔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그저 한번이라도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었을 뿐.


죽기 전 단 한번이라도 내 멋대로! (이미지출처: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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