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을 포용하는 힘이 생존을 갈랐다

[문득, 인문학] 우리는 과연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일 힘이 있는가

by 김글리

힘 센 네안데르탈인은 왜 사라졌을까?


지금으로부터 4만년 전, 지구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가 함께 살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4촌쯤 될 정도로 가장 가까운 종이었으며, 수천년간 현생인류와 공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안데르탈인 _동아사이언스.jpg 네안데르탈인의 생활상을 나타낸 그림 - 막스플랑크 연구소 제공 (동아 사이언스 게재)


이들은 현생인류보다 월등히 큰 키와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1대 1로 싸운다면 현생인류가 절대 이들을 이길 수 없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힘이 더 센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에 밀려 약 3만년 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멸종원인을 두고 전염병, 급격한 기후변화 등 의견이 분분한데, 대체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전멸했다는 것이 지지를 받고 있다.



현생 인류는 어떻게 힘이 더 센 자들을 물리쳤을까?


호모사피엔스는 라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소뇌가 8배 가량 컸다는 연구결과가 2018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되었다. (나오미치 오기하라 게이오대 기계공학과 교수팀 연구) 이는 현생인류가 문화전쟁에서 이겼다는 견해를 뒤받침 하는 결과다. 즉, 네안데르탈인은 신체능력이 훨씬 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보다 '소통능력과 사회적 유대' 능력이 약해 협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소뇌는 언어능력과 관련돼 있으며, 클수록 언어처리 능력, 집중력, 상황에 맞게 지식을 재구성하는 인지능력이 뛰어나다.


현생 인류는 소통능력으로 협력할 수 있었고, 다른 것을 수용함으로써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사회성'이 생존을 갈랐다는 건데,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멸종과 생존을 가르는 지점이 낯섦과 다름을 수용하는 자세"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새롭거나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 덕분에 다른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협력하면서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들이 익숙한 직계가족이나 가까운 친척들과 생활하였다. 이들에게 ‘외부인’은 적이며, ‘다름’은 제거 대상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이주하였다. 그들이 밟는 땅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들은 이주를 통해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 그곳에 원래 거주하는 자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고고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낯선 사람’들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영입하여 공동체를 끊임없이 확대하였다고 본다. ‘낯선 사람’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가족 혹은 친구로 여겼다."

-<배철현의 비극읽기; " 낯섦과 다름에 대한 이타적 수용, 그것이 민주주의다"> 중 (한국일보 연재)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엔스 두개골 비교 _ 출처 에듀넷.jpg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비교. 보다시피 뇌 용량은 네안데르탈인이 더 크다 (이미지 출처 에듀넷)

즉, 새로움과 다름을 수용하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은 한순간에 멸종한 반면, 끝없이 이주하며 낯섦을 수용한 호모사피엔스는 현재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봐도, 다양성을 포용한 사회나 제국이 오래도록 번성하였다. 천년을 번성한 로마제국, 페르시아가 그러했고, 세계 최대 영토를 확장했던 몽골의 공통점은 모두 '개방성'에 있었다. 특히 몽골은 종교적 관용 태도를 통해 거대한 영토를 만들어갔다. 이들은 정복한 곳의 문화와 정치체제를 멸종시키는 대신, 그대로 수용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다양성을 자신의 문화로 흡수시켜 더욱 발전시켜갔다.


다양성과 개방성에 관심이 많고, 그런 사회를 꿈꾸는 1인으로서, 다양성이 꽃피었던 시기- 르네상스로 이를 확장시켜보았다.



르네상스기는 어떻게 창의성이 꽃피웠을까?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출발해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간 문화 부흥기로, 문화 예술뿐 아니라 철학, 정치, 과학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그리스 고대 문화에 대한 재해석과 적용이 있었던 시대다. 지금도 뭔가가 부흥하거나 잘 될 때 '00의 르네상스'라는 말을 쓰는데, 그만큼 이 시기 많은 예술작품이 쏟아졌고 여러 분야에서 많은 창조력이 발산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창의성을 꽃피웠을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위대해졌던 걸까?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창의성을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람들이 알약을 먹고 갑자기 창의적이 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시기에 도시 전체가 뭔가 창조적인 결과물을 원했을 뿐이죠. 우리가 더 염두에 둬야 하는 건 '창의성을 무엇에 적용하도록 할 것인가'입니다. 창의력은 대부분 사람이 다 갖고 있습니다. 활개를 펼 여건만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설 거에요. 그런 가능성이 사회 속에서 표출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창의력을 쓸 마음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사회가 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죠. 공급 부족이 아니라, 수요가 부족한 겁니다. 우리가 과거의 틀에 심하게 메어 있다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와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창의력으로 향하는 첫걸음은 세상에 옳은 답은 오직 하나라고 더는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 오마이뉴스 인터뷰, "사회적 자살, 개인이 우울하면 국가 위태롭다."

renaissance-art-lead_라파엘 아테네학당.jpg 르네상스시대의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아테네 학당>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 고대 대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 상상화다.


이처럼 현재의 인류가 번성하게 된 것도, 르네상스 시기에 창의성이 번성하게 된 것도 모두 근본적으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AI 시대에 접어들수록 '창의력'이 매우 중요해진다고 귀가 아프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사회가 그런 창의성을 원하는 걸까? 의심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지금의 교육정책이나, 정치행태를 보면 그렇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행태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다른 것에 점점 더 문을 닫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 문득 해본 인문학 공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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