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적할 때 읽는 글

굳이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잖아

by 김글리

마음이 울적할 때, 읽는 글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하거나 할 때는 글을 읽는 버릇이 있네요.

어려움을 겪을 때는, 그 상황에 맞는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마치 약처럼요.

오늘 가져온 글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를 때', '뭔지 모르지만 좀 후회가 될때' '마음이 울적할 때'

찾아 읽는 글입니다.




나는 어릴 때, 집 근처에 흐르는 와타라세 강에서 소중한 것을 배웠다.


내가 겨우 헤엄을 칠 수 있게 되었을 무렵이니까, 초등학생 때였을 게다.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와타라세 강으로 헤엄을 치러 갔다. 그날은 물이 불어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살도 빨라서, 큰애들은 건너편 강기슭에 있는 바위까지 헤엄쳐 갈 수 있었으나, 나는 겨우 개헤엄이나 치는 정도였기 때문에 얕은 곳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새 강 한가운데로 너무 들어가 버렸는데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있던 강기슭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물살이 점점 더 빨라지고 친구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빠른 물살에 휩쓸려 버둥거리다가 얼마나 물을 들이켰는지 모른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언제나 바라보던 와타라세 강의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푸르스름하게 보일 정도로 수심이 깊은 곳도 있지만 흰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얕은 여울이 많았다. 아마 지금 내가 휩쓸러 가고 있는 곳은 내 키보다 깊지만, 물살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반드시 얕은 여울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래. 굳이 되돌아가려 하지 않아도 되잖아.”


나는 몸의 방향을 180도 틀어서 이번에는 하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렇게 빠르게 흐르던 물살도 어느새 날마다 바라보던 와타라세 강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하류를 향해 얼마 동안 흘러가다가 발로 강바닥을 짚어 보았더니 그곳의 깊이는 이미 내 허벅지에도 차지 않았다.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때의 무서움보다는 그 무시무시한 물살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는 기쁨에 나는 가슴이 벅찼다.


부상을 입고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앞날에 대해서나 지난날에 대해서 생각하며 괴로워하다가, 문득 급류에 떠내려가면서도 본래 있던 강기슭으로 헤엄쳐 가려고 발버둥치던 내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굳이 거기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잖아.... 쓸려 내려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 무렵부터, 나를 지배하던 투병이라는 의식이 조금씩 옅어져 간 듯하다. 걷지 못하는 다리와 움직이지 않는 팔만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면서 살아가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이 글은 호시노 토미히로라는 일본 화가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그는 중학교 체육교사였는데, 체육동아리 지도를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 사나이는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기회로 바꿔 버립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죠. 그렇게 수 많은 책을 펴냅니다. 그가 쓴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라는 시화집은 200만부나 팔렸다고 합니다.

8970123776_1.jpg


'굳이 되돌아가려 하지 않아도 되잖아,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거야'

아리가또, 토미히로상!



* 참조: '하류를 향해', 류해욱 신부의 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른 것을 포용하는 힘이 생존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