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노력하라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2. 독창성은 끈질긴 노력이 쌓여 드러나는 것

by 김글리

우연히 '제이블랙&제이핑크'라는 사람의 춤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남자인 그가 여장을 하고 여자춤을 추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실은 남성과 여성의 춤을 모두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해서 추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아,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제이블랙.jpg 제이블랙일 때의 모습 (이미지출처: 구글)

2개의 얼굴로 춤을 추는 댄서


그의 본명은 조진수. 그는 원래 힙합을 추는 스트리트 댄서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뒤늦게(?) 24살에 춤의 길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하루 13시간씩 춤을 추었다. 그러다 팝스타 비욘세의 안무가로 알려진 '존테 모닝'에게 영감을 받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걸리쉬댄스 girlish dance를 추게된다. 걸리쉬 댄스는 남자가 여자춤을 추는 걸 말한다.


그는 제이블랙과 제이핑크, 2개의 이름을 가진것 처럼 2개의 얼굴을 가지고 춤을 춘다. 남자와 여자춤을 모두 추는 건 그가 유일하다. 그런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고 매우 독보적이다. 제이블랙이란 이름으로 힙합을 출 때는 매우 남성적으로 춤추지만, 제이핑크로 걸리쉬 댄스를 출 때는 하이힐을 신고 여장을 하고 굉장히 섹시하고 관능적으로 춤을 춘다. 골반을 뒤흔들고, 손짓도 여자의 그것처럼 섬세하고 우아하고 표정도 그렇다.


Pinky Cheeks (J Pink) 8th GATSBY DANCE COMPETITION 2015 - Guest Show


그의 퍼포먼스는 좀 충격적이다. 남자가 하이힐을 신고, 온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아주 섹시한 춤을 춘다고 생각해보라. 그의 춤을 보고 '멋지다, 낯설지만 굉장하다라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간혹 춤이 더럽다, 게이다라고 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게이라는 욕을 들으면 더욱 뿌듯하단다. 자기가 제대로 몰입한 증거라고 말이다. ㅎㅎㅎ 걸리쉬댄스를 출 때는 최대한 몰입하기 위해, 여자용 보정속옷도 입고, 제대로 화장하고, 여자옷까지 갖춰입고 춘다. 그 feel을 살리기 위해서.

제대로 미친 녀석이다.


제이핑크.jpg 제이핑크일때의 모습 (이미지출처: 구글)



제이블랙일 때와 제이핑크일 때 춤을 다 봤는데 무척 달랐다. 나는 그를 보고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남자면 남자답게 강하고 멋진 춤을 추고, 여자면 여자답게 섹시하고 귀엽고 요염한 춤을 춘다. 자신의 성별에 맞게 춤을 춘다고. 그런데 이 친구는 성별을 오가면서 춤을 춰. 그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아, 저렇게도 자신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구나.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못한다고 억누를 필요도 없고, 그냥 하고싶은 걸 표현해버리면 끝이구나. 그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멋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한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독창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연습합니다."


24살에 춤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는 늦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조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춤을 췄다고. 스스로 춤에 재능이 있다고 말하지만, 재능보다 중요한 건 노력이라고 말한다.


"재능은 재능에서 끝나는 것 같아요.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걸 저는 확신해요. 열정 차이인 것 같아요. 안되는 데도 춤에 미쳐있는 아이들은 끝까지 가요. 그런데 재능있는 친구들은 재능만 믿고 있다가 좌절을 한 번 맛보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노력했던 친구들은 계속 좌절을 맛보니까 무덤덤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끝까지 가더라고요.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케이스가 훨씬 많아요." - 제이블랙 인터뷰 중 (한국경제)



이렇게 노력하면 누가 알아주나


하지만 노력이 늘 보상을 주는 건 아니다. 열심히 뭔가를 하다가도 '이렇게 노력하면 누가 알아주나'라고 힘빠질 때가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런 심정을 토로한다. 세상에나


"소설을 쓴다는 건 기본적으로는 몹시 '둔해빠진' 작업입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립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머리 쥐어짜며 하루 종일 단 한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입니다. (…) 소설을 쓴다는 건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인 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4쪽,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jpg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건 정말로 고독하고 음침한 일이다. 이렇게 노력해봐야 누가 알아주나, 라는 생각이 들면 더욱 음침해진다. 그럴 때면 나는 미켈란젤로를 떠올린다. 그에 관해 재밌는 일화가 있다.


미켈란젤로는 뛰어난 화가였지만 엄청난 노력파로도 유명했다. 한번은 바티칸 시스타나 성당에서 4년 6개월동안 천장화를 그릴 때였다. 매일 같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리다보니 허리가 꺾이고 페인트가 얼굴위로 떨어져 시력이 떨어지는 등 위태로운 작업환경으로 많은 고통이 따랐다. 그런데도 미켈란젤로는 인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그려넣으며 남들이 신경쓰지 않는 아주 작은 부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보다못한 친구가 말했다.


"자네는 왜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나? 그렇게 노력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안다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jpg 미켈란젤로는 4년 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무려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를 두고 '미켈란젤로의 동기'라고 말한다. 겉으로 드러난 보상이 아닌, 내면의 성취감, 만족감에 의한 동기부여를 뜻한다. 노력이 늘 보상받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항상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그 흔적은 언제나 내게 남는다. 그 노력의 흔적들이 쌓여 나만의 뭔가를 만들어간다. 나도 모르는 사이.



독창성은 끈질긴 노력 끝에 스스로 드러나는 것


독창성이란 건 말이다, 뭔가 대단한 걸 이끌어내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안에 머물고 있는 걸 있는 그대로 꺼내는 일이다. 그런데 그를 끌어내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미켈란젤로, 무라카미 하루키, 조진수 아니, 제이블랙&핑크의 말들은 바로 그를 압축한 말이 아닐까.


양이 없으면 질도 없다고 말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사람이든 작품이든 그것이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충분한 작업의 양이 쌓일 때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독창성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신만의 방식을 열심히 닦아가는 대가들을 보느라고, 어젯밤 잠을 설쳤다.

나는 나의 독창성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용기를 내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이 생각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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