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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나의 한계를 알아보고 싶다면

by 김글리
인생을 시작한 그 순간, 누군가 우리에게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생을 최고 한계까지 살려고 애쓸 것입니다.
-유진 오로츠키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꿀벌은 참 재밌는 녀석이다. 공기역학적으로 보면 몸체, 몸무게, 날개의 폭과 크기 때문에 날 수 없는데, 그 녀석의 주특기가 나는 일이다. 날개 크기에 비해 몸이 너무 커 이론상으론 날 수 없지만, 다행히도 (?) 꿀벌은 자기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아무 문제 없이 잘 날아다니며, 꿀까지 끌어 모으고 있다! 한계를 넘는다는 것에 대해 뭘 좀 아는 녀석이다.


TO8cDbqo5JonHEUXB11cVJlJv6g 초당 200번이 넘는 날개짓으로 날아다니는 요 녀석, 꿀벌! (출처:www.flickr.com)


한계를 대하는 데, 내 생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 자신의 한계를 보고, 좌절하고 멈추는 사람

- 자신의 한계를 보고, 그를 발판삼아 더 나아가는 사람


나는 궁금해졌다. 대체 그들을 가르는 지점은 무엇일까? 그들을 이루고 있는 '환경'일까, 아니면 그들의 '생각'일까? 또 궁금해졌다. 나는 어느 부류의 사람일까?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과연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무전여행 한번 해볼까?


고등학교 졸업식을 2주 남긴 때였다. 대학합격통보를 받고, 입학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고등학생 신분에서 자유가 흘러 넘치는 대학생으로 급 바뀔 것이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별로 깔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왜 살아가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들은 풀리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있었다. 나라는 인간을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러다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도도로키 히로시’라는 일본인이 영남대로를 따라 도보여행을 한 뒤 답사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그는 서올에서 지리학을 전공하는 일본인으로, 옛문헌과 고지도를 뒤지고 마을어른들에게 물어가며 19일에 걸쳐 영남대로를 완주했다고 한다.


영남대로는 서울 남대문에서 시작해 동래까지 이르는 총 950리 길이다. 과거보기 위해,5일장을 돌아다니는 장사꾼들에게, 군사도로로 아주 중요한 길이었다.


영남대로는 군사대로로 왜구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길로 알려졌는데, 일본인이 최초로 완주했다니 자존심도 상하고, 대체 어떤 길이길래 라는 호기심도 일었다. 나도 영남대로를 따라 여행해보고 싶었다.


선비들이 과거를 보고 금의환향하던 길이라는 것도 좋았고, 내가 태어난 고향(경상북도 봉화)을 지나는 것도 좋았다. 이 정도면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보였다. 이왕 도보여행 하는 거, 좀 더 빡세게 해보자는 마음에 '무전여행'이라는 옵션을 더해보기로 했다. 5남매 중 막내로 자라면서 편하게 살아왔으니,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돈없이 여행하는게 가능할까? 알 수 없었다. 혼자 10키로 이상 걸어본 적도 없는데, 내가 이걸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해보고 싶었다.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을 해봐야 나를 안다고 하는데, 내 한계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El9kV7OgAA1XXplsmJNj9jeEhcI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 옛길

곧장 동대문으로 가서 새 워킹화를 하나 사고, 가방에 25만대 1의 전국도로지도도 하나 샀다. 일정을 계산해보니, 450km면 하루에 30km를 걸어 15일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자리가 좀 걱정이긴 해도 그 외는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옷 가지 몇 벌 챙겨 가방을 대충 꾸렸다. 오케이, 준비 끝!


"잘갔다 올게.”


나는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씩씩하게 문을 나섰다. 누구 하나 나를 말리지 않았고, 마치 내가 동네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처럼 대수롭잖게 인사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갈 곳은 부산 동래성. 나는 450km에 달하는 여정길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그것도 돈 한푼 없이! 2001년, 그 해 겨울엔 유난히 폭설이 많이 내렸다.


(*이 글은 발톱 잃고 자신감을 얻다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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