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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Sep 30. 2019

무전여행, 발톱 잃고 자신감을 얻다

자신에게 작은 승리를 선물하기

(*이 글은 무전여행 한 번 해볼까?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장장 천리 길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랬다.

이 말은 나를 위해 만든 말임에 틀림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장장 천리길.  아직 갈길은 980리가 남았지만, 일단 한 발 내딛고 나니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앞으로 보름 동안 서울 남대문에서부터 부산 동래까지 이어지는 옛 과거 길을 따라 무전(無錢)여행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 가장 큰 프로젝트다. 막막하긴 했지만 내 작은 배낭엔 전국지도도 있었고, 머릿속엔 계획도 있었다.


기세좋게 출발은 했지만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가를 깨닫게 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루 10키로 걸어본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하루 30키로를 걸으려고 하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하루 만에 두 발이 물집으로 뒤덮혔고, 어깨와 종아리, 허리 구석구석이 안 쑤신 데가 없었다. 게다가 사람 하나 없는 인적드문 국도를 혼자 걷다보니 이 지구에 생존자가 나 뿐이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외로웠다.

이 세상을 홀로 걷는 기분이었다



언제라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온다


게다가 돈 없이 여행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나는 숫기도 없고 부끄러움도 많아 부탁도 잘 못했는데, 무전여행을 하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낯짝이 두꺼워져 갔다. 어떻게 살아남아야겠다는 본능이 200% 가동된 덕분이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궁리를  짜내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갔다. 


가다 절을 만나면 절에 들어가 신세를 졌고, 마을을 보면 이장님한테 부탁해 ‘마을회관’에서 자기도 했다. 식당을 만나면 식당에 들어가 주방 일을 도우며 먹거리와 잠자리를 해결하기도 했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을 찾아가서 말벗을 해드리며 하룻밤 자기도 했다. 정 안될 땐 경찰서에 들어가 밤을 지새우며 여정을 이어갔다. 부끄러움이란 녀석은 배고픔 앞에서는 온데간데 없어지는 덕에 낯짝은 날로 두꺼워졌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발은 낯짝만큼 두껍지 않았나보다. 첫날부터 물집 잡힌 발이 셋째날 드디어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다.  


걷는 데 문득 왼쪽 발이 허전해졌다. 무겁게 짓누르던 뭔가가 훅, 하고 날아간 느낌이랄까. 급히 양말을 벗어보니, 허걱, 왕방울만하게 잡혀있던 물집이 터지면서 새끼발톱이 함께 날아가버린게 아닌가! 발톱 빠진 건 또 처음이라 신기했는데, 그걸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엄청난 아픔이 밀려왔다.


뭔가 조치를 취하고 싶었지만, 가진 거라곤 맨소래담과 반창고뿐. 게다가 한적한 시골길이라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일어나 걸었다. 걸을 때마다 발톱 빠진 곳의 속살이 신발에 쓸려  눈물 쏙 빠지게 아파왔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1시간을 걸었는데, 표지판을 보니 고작 1키로를 걸은 게 아닌가!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루30키로 이상을 걸어줘야 예상된 날짜에 부산까지 갈 수 있었는데, 1키로 걷는데 한 시간이 걸렸으니, 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힘든데 걍 집에 가버릴까?' 내일이면 더 아파올텐데 고민이 됐다. 사실 아픈 것보다 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가 더 걱정이었다. 보름 뒤면 고등학교 졸업식이라 여행일정을 더 지체할 수도 없었다. 이 발로는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고.


여행 시작하고,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첫 싸움에서 이겨라


그날은 근처 절에 들어가 하룻밤 묵으며, 밤새 머리를 굴렸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처음으로 뜻을 세워 나선 길이었는데, 도중에 포기해버리기엔 아까웠다. 게다가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면 앞으로 이같은 위기를 맞았을 때, 또 그만두지 않을까? 처음부터 지는 역사를 만들 순 없었다. 나를 걸고 떠나온 길이니만큼, 무조건 해내야 했다. 하지만 마땅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어쩔 수 없이 절뚝거리며 다시 길을 나서는데 문득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머리 속에서 형광등 1000개가 한꺼번에 켜졌다.


'그래, 자전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걷는 게 안되면 자전거로 가면 되잖아!'


이거야, 이거.. 유.레. 카!!!!! (이미지출처: www.pixabay.com)


그 길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 집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기어변속도 안되는 고물자전거였지만 지금의 나에겐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걷기를 멈췄던 바로 그 지점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시 시작했다. 차도 인적도 없는 국도를, 신나게 바람맞으며 자전거 페달을 마구 밟아 달렸다.  바람을 가르는 기분이 끝내줬다. 이 상쾌함이라니!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건, 진실이었다. 사실 걷는 건 좀 지루했지. 안 그래? 이제부턴 도보여행이 아니라 자전거여행이 될 것이다, 야호!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를 용기백배로 만들어주었다. 시 한 수가 절로 나왔다.


“오늘 대낮의 밝음은, 전에 알던 그 밝음이 아니로세“ :)


그래, 걸어서 못가면 자전거 타면 되지! (이미지출처: www.flickr.com)



발톱 잃고 더 큰 나를 얻다


그 뒤로도 자전거 체인이 끊어지고, 잘 곳이 없어서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는 등 갖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결국 목적지인 부산 동래성까지 열흘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는 보름의 일정이었는데 자전거를 타면서 5일이 단축되었다. 그날 밤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 너무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서 몰골이 꼬질꼬질했지만,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내가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발톱도 잃고,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고통으로 눈물을 양껏 뽑아내고서 난 뒤였지만, 가슴 뻐근하게 기분이 좋았다. 기차에서 지나온 시간을되돌아보았다. 


"왜 돈 없이 여행해? 왜 사서 고생해?" 여행하는 내내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물었다. 그건 내가 스스로에게 계속 한 질문이기도 했다. 대체 왜 고생을 사서 한 걸까?


곰은 3개월간 겨울잠을 자며 기나긴 겨울을 난다. 그런데 동면을 하기 전에 몸에 지방질이 충분히 쌓였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곰이 지방질을 축적하는 것을 아는 방법은? 나무에 올라가서 한번 떨어져보는 것. 지방질이 충분히 쌓이면 덜 아플 것이고 아니라면 더 많이 아플 것이다. 곰은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파악한다. 


나도 비슷했다. ㅎㅎㅎ 5남매 중 막내로 자라면서 내 생각이나 능력으로 일을 해결하기 보단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스스로 결정하는 일도 드물었기 때문에 뭘 책임져 본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내 능력이 무엇인지 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존재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맨 몸으로 세상에 부딪혀서라도 나를 더 알고 싶었다. 극에 달하는 한계를 맛보면, 나도 모르는 내가 나올거라고 생각했다. 정채봉 시인의 '콩씨네 자녀교육'이란 시에 이런 문구가 있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스스로를 광야 속으로 내몰았던 이번 여행은 확실히 무모했지만, 덕분에 많은 걸 얻었다. 가장 큰 건 '자신감'을 얻은 것이었다. 그건, 내 인생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자신감'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 나온다'고 했다.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고, 잠자리 구하고 살아갈 궁리를 다양하게 해보면서 내게도 혼자 할 수 있는 힘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나는 언제나 내가 숫기없고 부끄럼 많은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적극적이고 때에 따라 능글거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주저앉는 사람이 아니라, 이기고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스스로에게 택한 첫번째 도전에서, 발톱을 잃고 더 큰 나를 얻었다.

이젠, 어디서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무전여행은 나만의 통과의례였다 (이미지출처: www.pixabay.com)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전여행을 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기운이 펄펄난다. 자신감이 필요할때면, 늘 무전여행을 하던 '19살의 내'가 생각난다. 녀석은 내가 약해질때마다 나타나서는 '그꺼이꺼,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파이팅을 외친다. 


 <인간의 품격>을 쓴 데이비드 브룩스에 따르면, 자존감은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 시련이 닥쳤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 유혹을 만났을 때 굽히지 않는 존재가 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건 외적 승리가 아닌 내적 승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자존감은 내적 유혹을 견뎌낸 사람, 자신의 약점에 맞선 사람, 최악의 경우라 해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갖게 되는 덕목인 셈이다.


시련이 닥쳤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안에 있다는 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다. 힘든 시간을 무사히 견뎌주고, 내 생각의 한계를 깨어준 19살의 나에게,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자기 인생의 승리를 만들어가게 되면,
자신이 디자인한 것대로 살아가본 경험이 하나 둘 씩 생긴다면,
자기 믿음이 생겨나고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생겨나고, 두려움이 감소한다. 
자신에게 먼저 작은 승리를 선물하라.
-구본형
자신에게 먼저 작은 승리를 성물할 것! (이미지출처: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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