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 유비가 끝끝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
<삼국지>에 수 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대놓고 '유비'다. 모든 에피소드가 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개인적으론 조조와 제갈공명을 더 좋아하지만, 유비가 끌리는 때도 있다. 특히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침울해 질 땐 유비가 절로 생각난다.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살아생전 그는 패왕(敗王:진 사람)으로 조롱받기 일쑤였지만, 사실상 진정한 패왕(霸王: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유비는 빈털털이에서 출발해 촉한의 초대황제까지 오른, 흙수저의 대표 성공사례다. 결론만 놓고 보면 승승장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유비는 실패의 아이콘이다.
유비는 평생동안 수 많은 격전을 치르는데 민망할 정도로 자주 졌다. 생애 첫 출정이었던 황건적과의 싸움에서는 처참하게 깨져서 죽은 척해서 간신히 살았고, 경쟁자였던 여포, 원술에게도 지고 조조에게는 단골로 졌다. 정사에 기록된 총 22회의 전투에서 유비가 승리한 건 9번 뿐으로, 3할에도 못 미치는 승률이었다. 개중 일가족을 버리고 간 것만 4번이다. 그나마 9승을 할 수 있었던 건 주변에 제갈공명과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눈부신 수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조가 8할에 가까운 승률을 자랑했던 것과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표다.
때문에 유비는 종종 패왕(敗王:진 사람)으로 조롱 받으며, 유비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다. 정치, 전략, 문학 등 다방면에 재능이 출중했던 조조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유비는 지략가나 용맹한 인물로 평가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삼국지의 영웅으로 수 천년동안 살아남은 건 무슨 이유일까? 대체 그에겐 무슨 능력이 있었던 걸까?
유비에겐 두 가지 특출난 능력이 있었다. '관계능력'과 '의지력’이다.
유비는"사람을 잃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크게 잃는 것이다"고 말할 정도로 의리를 중시했다. 자리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닐때에도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았고, 한번 그를 따른 장수들은 끝까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유비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유비의 인간됨에 매료되었다고 정사에 기록돼 있다. 이처럼 유비는 공감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능력 - '관계지능'이 매우 높았는데 그 덕에 인재를 얻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현시켰다. 덕분에 수시로 싸움에서 졌지만 금세 다시 군대를 모아 일어설 수 있었고, 제갈량과 봉추와 같은 인재를 얻으면서 싸움에도 이기기 시작했다.
관계능력만큼이나 유비의 뛰어난 점은 의지력이었다. 유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무수히 실패하고, 싸움에 지고, 늦도록 자신의 때를 만나지 못했지만 유비는 자책하거나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초라한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때를 기다리며 몸을 웅크렸다.
쓸데없는 울적함에 오래 빠져 있지 않으리라. 기다린다. 오래 참고 기다린다.
그러면 언젠가는 때가 오리라."
한 두번의 실패는 견딜 수 있어도, 실패가 연속되면 대개는 자신감을 잃고 '나는 안돼'라고 생각하며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습관성 무기력'이라고 부르는데, 실패의 경험이 반복되면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능력을 제한해 버린다. 하지만 유비는 달랐다. 50대가 넘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끝까지 달렸다. 포기하고 뜻을 접을만한데도, 그는 끝끝내 다시 일어났고 기회를 잡았다. <삼국지>를 지은 '진수'는 “좌절을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유비를 평한다. 싸움에 질 때마다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졌으나, 지지 않았다."
"실패해도 바로 시인하면, 실패한 게 아니다."
뭥미? 싶지만 이게 유비가 실패를 정의하는 방식이고, 스스로를 일으킨는 힘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유비의 위대함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를 알기 위해선 그가 실패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토머스 에디슨은 “난 천 번 실패한 게 아니다. 다만 전구를 발명하는데, 천 번의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 라고 했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지그 지글러는 "실패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며, 포기하지 않는한 패배는 없다"고 말했다. 크든 작든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긴 이들은 모두 실패에 대해 자신만의 정의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실패하더라도 주눅들지 않는 자세가 무척이나 필요하다. 유비는 무수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저앉지 않았다. 좌절을 겪을 때마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를 더욱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유비는 천하삼분의 꿈을 안고 오래도록 공손찬, 조조, 도겸, 유표, 여포, 원소 밑에서 전전하다가 마침내 촉나라를 세운다. 그때가 221년, 유비 나이 52살이었다. (유비는 건국 2년 후, 54세 나이로 별세한다)
앨 시버트(Al Sievert)는 미국에서 생존특성 연구로 큰 명성을 얻은 심리학 박사다. 무려 40년 이상을 생존력 연구에 몸 바쳤는데, 위기에서 살아남아 역경을 기회로 바꾼 사람들- 회복력이 강한 생존자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연구상을 받기도 했다. 시버트 박사는 생존자들을 연구하며 몇 가지 중요한 특성을 밝혀냈는데, 일단 생존자들은 고통으로부터 회복력이 엄청나게 빠르다. 그들은 어떤 고통의 순간에도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방법을 궁리한다. 상황 자체보다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독일 심리학자 안드레아 우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실패 후 행동력을 꼽았다. 즉, 실패한 뒤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다. 그에 따르면,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괴로워하고 심지어 원망하는 반면, 행동력 높은 사람은 주저앉지 않고 재빨리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는 2015년 남편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냈다. 결혼한지 11주년이 되던 해, 친구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멕시코로 함께 떠난 길이었다. 그곳에서 남편 데이브는 운동을 하다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한다. 그때부터 샌드버그에겐 지옥 같은 날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마음을 다잡았고 어렵사리 일상으로 다시 복귀한다. 그리고 1년 뒤 UC 버클리 졸업축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는 일정량의 회복탄력성을 손에 쥐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육처럼 키울 수 있고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자아 중 최고 버전으로 발전할 겁니다."
독일심리학협회는 무엇이 성공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지 연구했다. 연구결과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생기든 다 잘될거라는 마음가짐이었다고 밝혔다. 성공 경험을 쌓으면 자신감이 생기지만, 실패 경험을 쌓으면 회복력이 생긴다. 되도록 일찍, 많이,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라’는 조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미국의 성공한 부동산 사업가인 '래리 미젤'에게 누군가 실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미래를 다시 볼 기회를 얻었지, 실패를 경험한 기억이 없습니다."
실패는 사건이나 상황이 아닌 '태도'에 있다. 진짜 실패는 실패를 겪고서 자신을 놓아버리는 순간이다. 자신의 잘못을 곱씹으며 머물러 있는 건, 백미러만 보면서 운전하는 것과 같다. 다시 나아가려면 백미러가 아니라, 앞을 보고 다시 한 발 내딛는 길 밖에 없다.
"인생의 많은 실패는
그들이 성공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알아채지 못한 채 포기해버린 결과이다."
-토마스 에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