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힘나게 하는 주문
'알 이즈 웰', 이 말 들어본 분 많을 겁니다. 전 세계를 강타했던 인도영화 <세얼간이>에 나왔던 대사였죠. 주인공 '란초'가 사는 마을에 경비가 있었습니다. 경비는 밤마다 순찰을 돌면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뜻으로 "알 이즈 웰All is well" 이라고 크게 외쳤죠. 그런데 어느날 도둑이 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날도 물론 경비는 알이즈웰이라고 소리쳤고, 사람들은 마음편히 잠자리에 들었었죠. 그런데 알고보니 이 경비가 야맹증환자였다더군요. 밤에 잘 보이지 않는데도 습관처럼 ‘이상없다, 괜찮다'고 외쳤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정말 이상이 없는 줄 알고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란초는 깨달음을 하나 얻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은 겁쟁이기 때문에 속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마음은 바보에 겁쟁이라, 쉽게 주문에 매혹됩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알 이즈 웰"이라고 다독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래서 극중 '란초'는 "알 이즈 웰" 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말에는 자기암시기능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말을 하면 그 자체가 암묵적 지시나 신호체계가 되어 잠재의식 속에 입력됩니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긍정적인 말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죠. 특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은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존 F 케네디가 1962년 미 대통령취임연설에서 한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는 "온 인류가 협력해서 우주를 탐험하는 미래를 만들자."라고 말했는데, 반응은 매우 싸늘했었죠. 그때만 해도 인류가 우주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 우주탐사에 가속도가 붙었고 결국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을 탐사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역사적인 위업들은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말로 선언함으로써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역시 자기암시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죠.
자기암시를 활용하는 것으로 '셀프토크Selftalk'가 있습니다. 셀프토크는 쉽게 말하면 '자기대화'로 혼자 말하기, 자기대화, 일기 쓰기, 침묵대화(내면대화, Inner dialog)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셀프토크가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 이 바로 그 사람의 셀프 컨셉(self concept, 자아상)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셀프토크를 통해 그 사람은 자신을 할 수 있는 사람 vs 할 수 없는 사람, 괜찮은 사람 vs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실제의 내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스스로가 그렇게 인식하고 말하면 그건 그 사람의 자아상이 됩니다. 자아상은 그 사람의 현실을 구성하여, 실제로 그런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만약 현실이 개떡같다면, 내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굉장히 가혹한 편이었는데요, 어느 개떡같은 하루를 보내고 왜 이럴까 생각해본 일이 있었습니다. 문득 내가 어떤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시험삼아 제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모조리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더군요....
이런 멍청한 XX를 봤나, 야이 XXX 똑바로 안 해? 죽여버린다. 그러니까 제대로 하라고!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해? 이런 멍청한 구제불능같으니라고...
세상에나! 99% 부정적인 말이 아니겠습니까? 마녀도 아니고, 제가, 제 입으로 스스로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었던 겁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말을 발견하면 메모해두고 써먹기 시작했어요.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붓는 대신, 격려하고 힘나는 '마법의 주문'을 걸기 시작한거죠.
예를 들어 실수했을 때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조금 실수한 거 가지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지마.
네가 좋아하는 걸 최대한 많이 하면 그걸로 된거야."
책 <지구를 걷는 아이>에 나오는 말입니다. 쟈콥에게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죠. 이 말엔 충분히 경험했으면 된거다, 배움을 얻었으면 된거다,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괜히 머리 복잡하게 생각할거 없이, 가볍게 털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낫다는 걸 알려줍니다.
한편 일이 잘 알풀리고 모르겠을 땐 이렇게 말해봅니다.
"역시, 내가 귀여운 탓인가?"
이건 트위터에서 본 문구인데, 쓸 때마다 재밌습니다. 말하면서 한번 웃고 나면, 일이 좀 만만하게 느껴집니다. 일이 잘 안 풀린 건 역시 제가 귀여운 탓이였더군요.
또 큰 일이 생기거나, 부담이 일면, 크게 심호흡하고 이렇게 말해봅니다.
"아, 별일 아니다."
이건 방송인 박경림이 해준 이야긴데요. 그가 힘들어할 때 선배 김국진에게 하소연을 많이 했답니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김국진이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경림아, 심호흡을 하고 따라해봐, '아~ 별일도 아니다.'" 웃기게도 그렇게 말하고 나면 진짜로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당장 써먹기 시작했습니다. 부담완화에 특효입니다.
사람 앞에 설 때, 발표할 때 자신감을 불어넣는 주문도 있습니다.
"다 좆밥이다."
개그우먼 장도연이 방송할 때 쓰는 말이라고 소개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소탈하면서도 재치있는 개그맨으로 입지를 다진 그는 사실 성격이 소심한 편입니다. 평소 주눅도 잘 들고 눈치를 많이 본다고요. 그런데 방송을 하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하잖아요. 특히 혼자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그야말로 기가 필요한데 그때마다 혼자 중얼거렸답니다. "다 좆밥이야." 소심한 그가 야생같은 방송에서 살아남은 힘이 된 것이죠. 이건 아직 안 써먹어봤는데, 대중강연을 할 때 써먹으면 효과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말들을 통틀어'셀프만트라' (Self-Mantra) 라고 부릅니다. 만트라는 반복해서 외는 문구, 일종의 자기암시입니다. 힘들 때 셀프만트라로 주문을 걸면 어느새 힘이 생겨납니다. 스스로가 더 좋아지는 효과도 생깁니다
일이 안 풀리면, '아 더 큰 기회가 오려고 지금 안되나보다'라고 하고,
돈을 잃으면 '더 큰 돈을 버려고 지금 이런 걸 경험하나보다' 생각하고,
글이 잘 안 써지면, '나중에 어떤 또 재밌는 이야기가 되려고 이러나'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넘어갈 수 있고, 빨리 회복돼죠.
란초 말대로 마음은 겁쟁이에 바보가 틀림없습니다. 말 한마디로 온도가 확확 바뀌니까요. 이 마음을 떼놓고 살 수 없다면, 잘 다독이며 살아가는 지혜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힘들다고 마음이 칭얼대면 힘을 불어넣어주고, 두렵다고 하소연하면 용기를 충전해주어야죠. 아, 용기가 필요할 때 쓰는 저만의 '용기처방전'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슬며시 떠오르면 이런 생각들을 조합해서 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시발 4% +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11% + 이만하면 괜찮다20% +어차피 누구라도 힘들다 65%"
그러면 어느 순간 한발짝 떼어 볼 용기가 솟아나죠. 당 떨어질 때 사탕 먹듯, 용기가 떨어질 때 한번 써먹어보시길 권합니다. 효과 좋습니다.
자존감은 뭔가 대단한 걸 하는게 아니라, 평상시 내가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셀프만트라를 왼지 10여 년, 어느 때보다 제 삶에 감사하게 됐고 누구보다 스스로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는 마음에 주문을 겁니다.
오늘의 주문은 란초의 '알 이즈 웰',
결국 모든 게 잘 될 거니까요. 오늘 하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