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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ug 20. 2019

예정된 미래로부터 탈출하라!

Get the midnight express!

길이 보이지 않을 땐 딴짓을 권함


1986년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책이 나오고 일본 열도에는 여행바람이 불었다. "이 책을 읽고도 배낭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젊은이도 아니다!" 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일본 젊은이들이 배낭을 매고 떠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사와키 고타로’, 그는 당시 일본 최정상급 논픽션 작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정궤도를 찾아가는 시점에서 모든 걸 버리고 떠난다.   


"입사 첫날 회사를 그만두고, 우연히 프리랜서 르포라이터가 된 나는 꽃피는 어느 봄날 모든 의뢰를 거절하고 하던 일도 포기한 채, 돈만 받고 착수도 하지 않은 책의 인세를 달러로 바꿔 여행에 나섰다. "당신의 글은 궤도에 올라섰어. 지금이 제일 중요한 때야." 이렇게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세상에서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보다는 '미래를 잃는다'는 형벌 집행을 유예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내가 여행을 통해서 얻어내려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무작정 떠난 유라시아 버스 여행은 나에게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해줬다.” 


'사와키 고타로'는 입사 첫날 남들처럼 양복을 입고 도쿄역에서 내려 비 내리는 거리를 묵묵히 걷고 있었다. 샐러리맨의 행렬에 몸을 맡기며 걷다, 바로 그때 회사 따위는 집어치우자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제 겨우 막 안정궤도를 찾아가던 미래를 박차고 나온다. 당시 상황을 사와키는 이렇게 표현한다


예정된 미래로부터의 탈출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의 원제는 '심야특급(MidnightExpress)'이다. 심약특급을 뜻하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는 터키 교도소  수감자 사이에서는 '탈옥'을 의미한다. 사와키는  자신의 인생이 한 방향으로 결정돼버리는 것이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프로작가의 세계를 선택하지도 그렇다고 다른 길을 찾지도 않은 채  모든 걸 유예시키기로 한다. 그리고 런던까지 버스로 여행하는 대장정에 나선다. 여행의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 의미도 없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러나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하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서... 였다.


친구들은 말렸지만, '자신이 보란듯이 '런던에 도착해 전보를 칠 것'이라며 친구들의 격려금과 자신의 쌈지돈을 가지고 출발한다. 동전까지 탈탈 털어 마련한 2000$, 옷 몇 가지, 지도 몇 장이 전부다. 계획도 일정도 없지만 6개월 후에는 런던에 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6개월이라 미리 결정지어둔 자신의 계획에 비웃음 날리고는 1년 이상 하게 된다. 유명 관광지를 단 하루만에 주파하고, 별 볼일 없는 시골 마을에 몇주 씩 장기체류 하기도 한다.  그는 유라시아를 버스를 타고 육로로 통과하며, 미처 꿈꿔보지 못한 삶들을 엮어간다. 


일년간의 여행 끝에 하여간 어디론가 떠나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와 같은 여행을 다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행이란 것은 그당시, 그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위의 책중 

Midnight Express (이미지출처:www.flickr.com)




예정된 미래로부터의 탈출


때로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막연한 상태를 좀더 연장하고 싶은 때가 있다. 주어진 길을 가느라, 아직 미처 피워보지 못한 다른 미래를 그대로 없애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그와 같은 심정이었다. 기존의 길에서 벗어난 건, 이미 짜여진 미래로부터 탈출과도 같았다. 탈출은 했지만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어디로 가야 할지 별다른 그림이 없이 막막할 뿐이었다. 과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사실 예전부터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세계여행‘


주머니 사정이 허락되는 한 세상을 구석구석 다녀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지금이 딴 짓을 할 기회다! 


사표를 쓴 뒤 요가와 물리치료를 병행해 열심히 재활했고, 1년 만에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바로 짐을 꾸렸다. 언제 돌아올지 몰랐기에, 중국으로 가는 편도티켓 한 장만 들고 길을 나섰다. 실크로드를 따라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뒤의 일정은 가보고 정할 참이었다. 실크로드의 시발점이자, 첫번째 목적지인 중국의 시안 Xian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메모를 써두었다. 

‘길을 찾기 위해선, 길을 잃어도 봐야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땐, 딴 길도 가보고 헤매도 봐야 한다. 
가만히 서서는 알 수 없으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를 땐 딴 짓을 권함.’
                         
처음으로 내 길 위에 섰다. (이미지 출처: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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