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실패를 두려워하고 전전긍긍할 때,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곳에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고, 엉터리라도 자꾸 해보는 것 자체가 의미있습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매우 자유로운데요, 때문에 직업의 경계도 매우 흐릿합니다. 버스운전사였던 사람이 갑자기 IT 기술자가 되고, 또 체스를 두던 사람이 어느 날 작곡가, 금융업에 종사하는 식입니다.
행복을 찾아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했던 미국기자 '에릭 와이너'에 따르면 바로 ‘아이슬란드’가 그런 곳입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유난히 실패에 관대한데 찬양하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시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며,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아이슬란드는 고작 32만명이 사는 파리똥만큼 작은 나라지만, 일 년 내내 수많은 축제가 벌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파리똥이라 표현되지만, 실상 세계에서 대한민국과 영토 면적이 가장 비슷한 나라입니다. 파리똥 원, 투)
아이슬란드는 인구 대비 작가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책을 1권 이상 출간한 작가가 무려 인구의 10%나 됩니다. 음악가는 60%고요. 대체 이 작은 나라에 예술가와 작기 비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 해답을 얻으려 와이너는 '라루스'라는 현지의 유명 음반 프로듀서를 찾아갑니다. 라루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실패 때문입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를 오히려 찬양하죠."
아이슬란드에선 실패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미국이나 다른 곳에선 실패해도 좋은 건, 그 결말이 성공으로 이어질 때만입니다. 차고에서 볼품없이 사업을 시작했던 창업가의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건,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 아이슬란드에선 실패가 메인 코스입니다. 이곳 사람들을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유럽식 사회복지제도 덕에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있거든요.
덕분에 아이슬란드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태도 덕분에 아이슬란드 예술가들은 엉터리 작품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를 기꺼이 인정합니다. 하지만 엉터리가 없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없는 법! 그래서 에릭 와이너는 아이슬란드를 '거듭난 사람들의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와이너가 어느 아이슬란드 사람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요? 더 이상 재기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 그 말을 들은 아이슬란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블랙홀에 떨어지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블랙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런 '실패찬양' 나라 아이슬란드에 실패투성이 삶을 마무리하고자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강은경 작가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완벽한 실패자로 여겼습니다. 그도 그럴 게 세 아이를 낳고 꾸린 결혼생활은 10년만에 파경을 맞았으며, 소설가를 꿈꿔 30년동안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일용직을 전전하며 글을 썼지만 노안이 와서 더 이상 글을 쓸 수도 없게 됐습니다.
결혼, 일, 꿈 모든 것에서 실패하고 홀로 된 인생 실패자. 그게 자신이었습니다. 더 이상 기댈 곳도, 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죽을까도 생각하지만, 죽기 전 아이슬란드로 떠나기로 합니다. 돈도 없어서 히치하이킹과 캠핑만으로 71일간 아이슬란드 곳곳을 누비죠.
한번은 현지에서 만난 할머니와 얘기 나누다, 본인의 실패한 삶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쓰고 싶은 글 쓰면서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그는 실패를 찬양하는 아이슬란드를 죽을 만큼 걸어 다니며,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걸 깨닫죠. '사실 인생엔 실패가 없다'는 것을. 또 이런 작은 깨달음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순간 순간 잘 놀아야지, 뭐가 되려고 아득아득 애쓰지 말고."
30년간 꿈에 발목 잡혀 실패자로 살았던 강은경 작가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글을 씁니다. 32곳의 출판사에서 퇴짜 맞고 33번째 출판사에서 자신의 여행기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어떤 책)를 냅니다. 책은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되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녀의 말입니다.
“여행 뒤 내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사라졌어요. 실패나 성공 그런 잣대로 내 인생을 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는 성공으로 이어진 실패만 찬양하죠. 아이슬란드인들은 결론까지 실패로 이어져야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나라 사람들은 지금 뭘 하는지에 의미를 두더군요.”
'잘될 거야!'라는 뜻의 아이슬란드 말입니다. 얼음과 화산으로 뒤덮여 있고, 일 년에 몇 개월은 어둠 속에 있는 땅 아이슬란드. 이런 척박한 땅에 살면서도 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페타 레다스트'라고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페타 레다스트! 직장이 없어? 페타 레다스트! 화산이 폭발했다고? 페타 레다스트! 오늘 기분이 안 좋아? 페타 레다스트!
실패해도 괜찮다는 아이슬란드,
그곳에서 실패를 만끽하고 돌아와 실패자로 다시 일어선 나이 든 작가.
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해도 정말 괜찮다면, 그러고도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오늘 나는 뭘 하게 될까? 실패의 두려움 없이 뭔가 도전할 수 있다면, 뭘 할까?'
여러분은 뭘 하실 건가요?
*참고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웅진지식하우스, 2008
"깡으로 한 '71일 이국땅 히치하이킹 여행'이 삶 바꿨죠" 한겨레신문, 2017.4.18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강은경, 어떤책,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