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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Jun 16. 2020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feat.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

창의성이 부족한 건 내 탓이 아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혹은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을 때 나를 심리적으로 보호해줄 새로운 사고방식을 소개한다. 특히 글이 안써지거나 창의성이 고갈된다고 느낀다면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도 종종 찾아서 본다 ^^) 이 사고방식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이런 혜택이 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두려움과 좌절에 사로잡히는 대신 이를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또 보다 편안하게 나의 능력을 발휘해볼수도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천재성이나 창의성이라는 것이 몇몇의 특출난 사람들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쓴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TED 강연에서 나온 것으로, 아래는 그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창의적인 일을 하면 정신이 불안정해지는 이유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책으로 예상치 못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러자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훌륭한 책을 못 쓸 텐데, 두렵지 않나요?”  


당연히 그녀는 두렵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10대 시절 자신이 맨 처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때, 사람들의 반응도 이와 같았다는 것 또한 기억했다.


“글쓰다가 언젠가 완전히 실패하고 쓰레기 더미 위에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넌 두렵지 않니?”  


그녀는 왜 사람들이 창의적인 일에 그토록 두려움을 가지고 또 건강을 염려할 만큼 두려워해야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글쓰는 걸 좋아하는데, 그를 두려워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게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것인가?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실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평판이 있고,  다른 직종보다 높은 비율로 알콜 중독, 조울증 환자가 많다는 것. 게다가 얼마나 창의적인 사람들이 실제로 요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노먼 메일러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쓴 모든 책 한 권 한 권이 나를 조금씩 죽였다.”


자신의 생애를 바친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적 재능이 결국 번민과 고뇌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서, 이런 이야기에 이미 익숙하다. 하지만 이게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엘리자베스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며,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자기만 보아도 이제 겨우 마흔 살이고, 앞으로  40년은 더 글을 쓰며 살아간텐데. 이런 사고방식으로라면 아침 8시부터 술을 마셔야 한다. 건강하게 내가 사랑하는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앞으로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글을 쓰려면 심리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줄 뭔가가,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그래서 지난 1년간 그런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녀는 창의적인 일에 자연히 따르게 되는 감정적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아보았고, 그의 연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가게 되었다.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창의성이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창의성이라는 건, 미지의 어떤 곳으로부터 알수 없는 이유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찾아와 도와주는 신성한 혼이라고 믿었다. 그리스인들은 창의성을 가져다 주는 신성한 혼을 ‘디먼’이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가 멀리 있는 ‘디먼’이 자신에게 지혜의 말을 들려준다고 믿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로마도 비슷했는데. 이들은 육체에서 분리된 창의적인 혼을 ‘지니어스’라고 불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가 아니라, 마술적인 신성한 혼, 집요정같은 것이라 여겼다.


지니어스는 예술가가 일할 때 몰래 나와 그들을 도와주는 정령같은 존재다. 지니어스 덕분에 로마 사람들은 결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웠고, 또 지나친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았다.  지니어스가 예술가를 도와준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작품의 결과가 아주 좋아도 예술가가 혼자 모든 칭찬을 다 받을 수 없었고, 반대로 엉터리 작품이 나와도 그의 탓만은 아니었다. 누구나 ‘지니어스’가 좀 게을렀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창의성을 이렇게 생각해왔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고대의 개념이 미칠 정도로 변덕스러운 창의적인 과정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창의성과 합리성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고, 어떤 때는 창의성이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가끔 그도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아이디어를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 같이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 제정신으로 일하려면, 창의성이라는 것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 걸까?  음악가 톰 웨이츠가 좋은 예를 보여준다.  


그는 몇 년 전 잡지사의 요청으로 톰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톰은 음악가로 거의 일생을 바로 이 문제로 고민해온 전형적인 현대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톰 역시 조절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창의적 충동들을 어떻게든 지배하려고 발버둥쳤다. 하루는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기막한 멜로디가 갑자기 머리에서 떠올랐는데 안타깝게도 그를 받아적을 연필도, 종이도 녹음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때 그는 마음속에서 불안이 또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 멜로디를 놓칠 것 같은데.. 그러면 이 노래가 나를 따라다니며 영원히 나를 괴롭히겠지. 나는 못나고 형편없는 인간이야‘라고 패닉에 빠져 외치기 직전, 그냥 모든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행동을 했는데, 하늘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이봐, 멜로디야, 지금 내가 운전하는 게 안 보이냐? 내가 지금 옮겨적을 형편이 된다고 생각하니? 니가 정말로 존재하고 싶다면 내가 너를 악보에 옮겨 담을 수 있는 좀 더 적절한 때에 다시 찾아와, 그게 안되면 그냥 어디 가서 다른 사람이나 괴롭히든가!”  


이 일을 계기로 톰은 내면의 ‘지니어스’요정을 자신과 완전히 분리시켜버렸고, 작업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이야 힘든 건 똑같았지만, 무거운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는 깨달았다. 창작활동을 하며 느꼈던 그 고통의 원인이 바로 지니어스를 내면화했기 때문이라는 걸.  엘리자베스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탓으로 모두 돌리던 작업방식을 조금씩 바꾸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크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바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쓸 때였다. 그녀는 책을 쓰면서 매우 큰 번민에 빠졌는데, 이 책이 큰 실패작이 될 것이고, 쓰레기 같은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엉터리 책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 책을 쓰는 걸 포기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때 그녀는 톰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같은 방식으로 해봤다. 글을 쓰다말고 자신의 작업실 빈 구석을 향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이봐요.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이 책이 뭐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게 전적으로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걸 알지 않나요?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요? 난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 책이 더 잘되기를 바란다면 당신도 나와서 당신 몫의 일을 하세요. 당신이 오든 말든 나는 계속 글을 쓸 겁니다. 이게 내 일이니까요. 아 참 그리고 당신이야 어쨌든 나는 오늘 내 몫의 일을 하러 왔다는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 싶어요.”



영감이 떠나간 자리


여러 세기 전 북아프리카 사막에 살던 사람들은 달빛 아래에 모여 밤새도록 종교댄스와 음악을 즐겼다. 공연은 다음날 새벽아침까지 계속 되었는데, 어쩌다 한번씩 아주 신기한 일이 생기곤 했다. 춤추는 댄서 중 한명이 초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시간이 정지하고, 댄서는 무아지경에서 춤을 춘다. 그의 몸과 다리가 마치 몸의 내부로부터 타오르는 신성한 불꽃으로 보이며 더이상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때 북 아프리카인들은 뭔가 신성한 일이 펼쳐지는 걸 알고 두 손을 모아 그 신성함을 불렀다.


“알라, 알라, 알라! (신이여, 신이여)”  


(이는 훗날 스페인으로 전해졌고, 알라는 수백년을 거치며 '올레'로 바뀌었다) 문제는 그 다음날 아침이다. 댄서는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신의 화신이 아닌, 그저 무릎이 아픈 인간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다시는 그와 같은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다시는 그처럼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절망해야하나? 이제 그는 남은 생애동안 뭘 해야할까?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영감을 받은 한 인간이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재적응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애초에 창의적인 일을 하는 그 특출함이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창의적 일을 하는 사람들의 번민이 그렇게 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창의적인 재능은 일시적으로 빌린 것이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믿어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만사가 달라진다.   


엘리자베스는 곧 새 책을 출판할 예정인데, 이전 책이 믿을 수 없을만큼 성공했기 때문에 새 책에 대핸 기대가 무서울정도로 크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지난 몇 달간은 더욱 그랬다. 새 책 때문에 겁이 나면, 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고, 위압당하지 말고 그냥 내 일을 하자.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계속해서 내 몫의 일을 하러 나가자.

춤추는게 직업이면 춤을 추자.

지니어스가 내 노력을 통해 한 순간이라도 나타난다면 ‘올레’의 순간이 될 것이고,

지니어스가 나타나지 않아도 내 춤은 내가 추면 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올레라고 외치자.“  




이 강연을 보고 나서,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데우스'가 떠올랐다. 그는 인간이 끝내 신이 되려고 한다며 그를 경고한 바 있다. 인간은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로 돌아서며, 신비, 신의 영역이라 불리던 걸 모조리 인간의 내면으로 포함시켜버렸다. 그리고 여기에서 많은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는데, 창의성도 그 중 하나다.  고대 인간들은 나의 천재성/ 창의성이 신이 준 것이라고 여겼는데, 현대의 인간은 내가 바로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두고 인간이 태양을 삼켰다고 비유한다. 천재성, 창의성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임에도 그를 컨트롤 하려고 하다보니,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이 글의 요지는 창의성을 내면화하지 말고 외부로 돌리고, 그냥 내 할일만 열심하자는 거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창의성이나 영감이 찾아오고 그러다 성공할수도 있지만, 만약 아니어도 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진인사대천명과 연결이 된다. 진인사 대천명... 요새 참 많이 생각하게 된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필립 로스, <에브리맨>

이 강연을 수십번 봤는데, 오늘처럼 깊숙하게, 명확하게 와닿은 건 처음이다.  내용의 전문은 아래<TED> 강연에서   있는데, 작가의 입담이 좋아서 19분이 ~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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