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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Jul 13. 2020

게으름의 몇 가지 쓸모

게으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극도의 게으름과 극도의 부지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가 마음에 들어오거나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누구보다 재빠르게 잡아채서 엄청난 에너지로 진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대체로 게으릅니다. 딴짓도 많이 하고, 관심이 없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고 하죠.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대체로 게으른 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들이 귀찮습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이런 게으름은 없어져야 할 악의 축으로 평가되곤 하는데, 게으름에도 몇 가지 쓸모와 몇 가지의 미학이 있습니다.  

     

1. 게으름의 쓸모편 (두둥~)

    

첫째, 게으른 사람은 쓸데없는 걸 하지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입니다. 열정만수르처럼 힘이 남아돌아서 뭘 한다는 개념이 이들 사전에는 없죠. 정말 딱 해야 할 것만 합니다. 도움이 안되거나 필요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나서지도 않습니다. 이들이 뭔가를 한다면, 그건 반드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게으른 사람은 지름길을 찾는데 능합니다.

게으른 자들의 속성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율을 올리고 싶어하는 데 있습니다. 때문에 무작정 뛰어들지 않습니다. 서둘러 길을 떠나는 대신 가장 빠른 길-지름길을 먼저 찾으려고 합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에너지를 덜 쓰고 더 효율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늘 강구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적게 힘들이고 갈 수 있죠. 경우에 따라서는 좀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불법이 아닌 이상 문제는 없습니다.

      

빌 게이츠는 가장 어려운 문제일 수록 가장 게으른 직원을 찾아 맡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쉬운 해법이 필요한데, 게으른 사람들이 가장 쉬운 해법을 찾기 때문입니다. 



2. 게으름의 미학편 (짜, 잔.)

     

첫째,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힘

모든 게으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충 다섯가지만 뽑아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하기가 귀찮아서.

둘은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어서.

셋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서 (기술, 지식, 능력 부족)

넷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섯은 자신감이 없어서.     


만약 평소와 달리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가 자꾸 뒤로 밀리고 진행이 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단순히 귀찮음이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수행하기에 자신감이 없거나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거든요. 특히 새로운 일을 하는 거라면 지식, 능력의 부족으로 자신감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 노력하라고 외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더 현명한건, 게으름의 진짜 원인을 찾는 일입니다. 그래야 제대로된 해법도 가능하거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으름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예기치 않게 게으름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면, 그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서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 주변을 둘러볼 여유

이동하는 속도가 느릴수록 경험하는 것들도 늘어납니다. 바로 여행이 그렇습니다. 비행기보다 차를 타고 가는 게 더 기억에 남고, 차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게 기억에 남고, 그보다 걸어서 여행하는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죠. 천천히 간다는 건 그만큼 주변의 것을 많이 보고 경험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빨리 가면 성취감이야 있을 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못보고 그냥 지나쳐갈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때론 게으름 부리면서 조금 천천히 가다보면, 오히려 예기치 않은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삶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저마다 목적지가 다른데 남보다 빨리 갈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하며 가고 싶습니다. 때문에 비교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자기 속도대로 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근데 비교안하기, 이게 어렵죠.)


셋째. 예기치 않은 일에 열려있는 마인드

게으른 사람들은 남보다 강박이 덜합니다. 빨리 가야한다, 더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이 덜하거든요. 대신, 내가 해야할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뭘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식으로 고정된 생각이 덜하고, 때문에 주변 일들에 더 많이 열려있습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아버지인 프리츠 펄스는 생물체 중 스스로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 뿐이라며, ”실패하려면 노력하라”고 즐겨 말하곤 했습니다. 의식적 노력없이 연습해야 불필요한 힘을 덜 빼고 더 빨리 성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잡을 때 아기들은 힘을 주지 않고 딱 필요한 근육만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자기 불신이 생기면 더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주문이지만, 의식적 노력이 심리적 긴장과 갈등을 유발해 신체를 경직시킨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너 게임>을 쓴 티모시 골웨이는 무작정 노력하는 대신,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들으라고 주문합니다. 초점을 원하는 결과에 두고 행동하다보면 오히려 의식적 노력없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죠. 뭔가를 잘 해내려면, 불필요한 힘을 빼는 게 우선입니다.   


고대 사상가들은 "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를 뜻하는 영어 'Schoo'의 어원이 여가를 뜻하는 'Scholea'에서 온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심한 월요일. 게으름을 빌미로 오늘 하루 더욱 천천히 길을 가보면 어떨까요? 


홍홍홍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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