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하는 행동이 결국 나의 정체성이 된다
9년전쯤 올라온 Ted강연 중에서 아직도 큰 호응을 받는 강의가 있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에이미 커디(Amy Cuddy)의 “당신의 신체언어가 당신이 누군지 결정한다 Your body language shapes who you are”라는 강의입니다. 커디 교수는 여러 연구를 통해 '우리의 자세가 마음가짐을 바꾸고, 마음가짐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결과를 바꾼다'고 설명합니다. 될 때까지 그런 척을 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게 강의의 핵심이죠. 이 강의가 더 큰 호응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커디 교수의 개인적인 경험담 때문입니다.
그는 19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머리를 크게 다칩니다. IQ가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학업이 어려워져 대학도 그만둬야 했죠. 그 사고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자신의 핵심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이후 몸이 회복되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넌 이제 대학에 돌아가기 어렵고, 간다 해도 졸업할 수 없을 것‘이라 얘기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핵심정체성을 놓아버릴 수 없었던 커디 교수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대학을 졸업합니다. 친구들보다 4년 반이 더 걸려서 말이죠. 이후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첫 강의를 시작하게 되고, 노스웨스턴 대학을 거쳐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항상 자신이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저 될 때까지 계속 하라"는 지도교수의 격려로 결국 해냅니다. 5년만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여러 MBA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커디교수는 말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척을 하면 바뀝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속이세요. Fake it until you become it."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단순히 어떤 행동을 반복하라는 건 줄 알았습니다. 단순히 반복한다고 바뀔까?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여기엔 두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첫째, 내가 원하는 정체성을 그리고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런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지 생각해본 뒤 그 행동양식을 반복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그렇게 될때까지 척하라는 말입니다. 재밌는 예가 있는데요. 매우 뚱뚱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나중에 살을 45키로나 뻽니다. 어떻게 뺐냐고 했더니, '날씬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매일 매일 했다고 합니다. 날씬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먹을까? 날씬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움직일까? 실제로는 뚱뚱했지만 날씬한 사람인척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죠.
핵심은 그 행동을 습관이 될 때까지 충분히 많이 하는 겁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통찰이 생깁니다.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이죠. 이를 잘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쓴 제임스 클리어입니다. 그는 고등학교때 야구를 하다가 친구가 던진 야구배트를 이마에 정통으로 맞고 뇌가 골절되고 안구가 함몰되는 큰 사고를 당합니다. 열흘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정상 생활을 다시 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죠. 그 사고로 클리어는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었고, 야구선수라는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그는 아주 작은 행동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도전이라고 할수도 없을만큼 사소한 행동들이요. 일어나자마자 침구를 정리한다거나, 일찍 잔다거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며, 사소하지만 생활 컨디션을 높여주는 습관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년 뒤 다시 야구를 시작했고 전미 최고 야구 선수로 뽑힙니다. 그는 ’야구선수‘라는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습관으로 다시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일과 학업에서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됩니다.
제임스 클리어가 습관에 대해 재밌는 표현을 썼습니다. 습관은 계속 반복해서 생겨나는 어떤 행동 양식인데, 이게 우리가 매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투표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저녁에 야식을 자주 먹는다고 칩시다. 야식먹는 행위를 늘어날수록 ’나는 야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견고해집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야식을 끊고 저녁 7시 이후에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칩니다. 그러면 매일 저녁 나는 투표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야식을 즐기는 사람‘에 한 표를 던질 것인지, ’저녁 7시 이후에 먹지 않는 사람‘에 한 표를 던질 것인지. 내가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얼마나 자주 그 선택이 쌓이는지에 따라 습관이 형성되고 그 습관에 따라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걸 보면 왜 어떤 습관은 잘 고쳐지는데 어떤 습관은 죽어도 안 고쳐지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습관은 정체성과 관련돼 있습니다. 내 정체성과 부합하는 것들은 쉽게 바뀌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습관화하는게 어렵습니다. 내가 흡연가라는 정체성이 있는한 흡연습관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봤자, 매일 야식하고 하루에 30분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 실제 정체성은 내 생각과 다릅니다.
평소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만약 내가 바꾸고 싶은 어떤 습관이 나의 정체성과 맞지 않으면 그 습관은 정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습관을 만들어가면 그 습관이 우리 정체성을 만들기도 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지난 2년에 걸쳐 습관 바꾸기를 하면서, 정말 많은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건 쉽게 바뀌는데 어떤 건 끝까지 안 바뀌더군요. 가장 대표적인 건 식습관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제게는 '나는 마음껏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 ’나는 식사를 빠르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더군요. 정체성을 바꾸지 않고서는 습관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습관을 버리지도. 바꾸지 못하는 이유죠.
그래서 저는 행동을 바꾸기 전에 먼저 '그런 사람인 척'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내가 원하는 사람을 그려보았죠. 제가 원하는 건 '소식하면서도 천천히 맛있게 즐기는 사람'이고, '양보다 균형잡히고 질적으로 우수한 식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어떻게 밥을 먹을까, 매 식사시간마다 생각하며 그런 척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몇가지 습관이 자연스레 바뀌기 시작하더군요. 동영상을 보면서 먹는대신 조용한 음악을 틀고 먹기 시작했고, 내가 뭘 먹었는지 관찰하며 식사일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또 기존의 탄수화물 위주 식단에서 단백질과 채소가 가미된 균형잡힌 식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2주정도 했는데, 몇달이 걸리든 정말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때까지 계속 반복할 작정입니다. 어떤 변화가 생길지 매우 기대가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이 전부다'며 그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습관은 단순한 행동양식이 아니에요. 우리 정체성을 대변하죠. 기억하세요. 우리가 매일 하는 모든 행동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한 표 던지는 투표행위와 같다는 걸. 결국 내가 표를 많이 주는 쪽이, 좋든 싫든 나의 정체성이 되는 겁니다.
**참고
동영상 https://youtu.be/Ks-_Mh1QhMc (에이미 커디 교수의 테드강연 동영상)
책 <아주 사소한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