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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살아있다

(기고칼럼) 한국박물관협회 뉴스레터 7월호

by 김글리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 (2006) 은 밤마다 박물관 전시품들이 살아 움직이며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코미디 영화다.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 살아나는가 하면, 카우보이, 글래디에이터들이 되살아나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기발한 설정으로 영화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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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 포스터 (좌), 되살아난 전사들의 스틸컷(우) (출처: 네이버)

하지만 현실의 박물관은 대체로 '죽어 있는 듯' 하다. 유서 깊은 유물과 작품들이 전시돼 교육공간으로 가치는 높지만, 딱 그뿐인 경우가 많다. 박물관은 문화와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 수단으로 여행자와 학생들에게는 꼭 방문해야 하는 공간이지만, 한편으로 그냥 스쳐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억에 남거나, 깊은 영향을 주는 곳이 드물다.


지금껏 3년 넘게 세계여행 다니면서, 최소 200군데가 넘는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름 모를 길거리 갤러리부터 뉴욕현대미술관(MOMA), 이집트 박물관까지 수 많은 곳을 찾았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뉴질랜드 웰링턴에 있는 '테 파파 국립 박물관(Te Papa National Museum)'이었다. 그보다 더 유명하고 더 훌륭한 곳도 있었지만, 이곳은 내게 박물관이 어떤 곳인지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준 곳으로 기억된다.


GuidedTour:IntroducingTePapaMuseum.webp 테 파파 박물관 전경 (출처: klook.com)


테 파파 국립박물관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니만큼, 뉴질랜드의 자연사, 역사,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문화까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자료와 유물이 전시돼 있다. 다양한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키즈존부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게임 형태로 자연 변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모의 시뮬레이션 기구, 마오리족의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전통 체험관까지 최대한 관람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두었다. 덕분에 관람이 아닌 '체험'하고 '교감'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더 좋았던 건 박물관의 분위기였다.

Te-Papa-Sea-exhibition.jpg 테 파파의 해양생물관을 보고 있는 아이들 (출처: mustdonewzealand.co.nz)

보통 박물관에 가면 '만지지 마세요. 이거 하지 마세요' 라는 경고 문구가 수도 없이 붙여져 있다. 때문에 경직된 자세로 멀찌감치 감상하다 나와야 했는데 이곳은 달랐다. 안내하는 문구도 딱딱하지 않고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편하고 재미있었다. 어딜 봐도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 '와 같은 문구는 없었다. '제발 만져주세요', 라는 문구가 가득했고, 만지지 말라는 문구도 "저를 눈으로만 봐주세요, 살고 싶다면 말이죠. Only touch me by eyes, if you want to survive" 와 같이 재치 있게 써두었다. 이처럼 박물관 전체가 그런 재치와 창의적인 표현으로 가득해 마치 살아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Weta-Workshops-Mary-Doyle-with-larger-than-life-figure-of-Percival-Fenwick-Photograph-by-Norm-Heke,-Te-Papa.jpg 전시된 작품을 만져보고 있는 관람객 (출처: https://media.newzealand.com)


정말이지 그렇게 매력적인 박물관은 처음이었다. 하나라도 더 보려고 6층짜리 건물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녔고, 돌아다니는 내내 혼자 낄낄대며 재밌어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나보다. 나중에 박물관 후기를 찾아보니, "박물관을 싫어하는데 여긴 정말 좋았다"는 후기를 다수 볼 수 있다. 이런 매력 때문에 여행자 뿐 아니라 현지 학생들, 어른들 사이에서도 테 파파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무료로 운영되지만 돈을 주고 봐도 아깝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그 뒤로도 많은 박물관을 다녔지만, 아직 테 파파 국립박물관만큼 인상적인 곳은 보지 못했다. 덕분에 지금도 종종 테 파파 국립박물관이 생각난다. 박물관은 ‘지루하고 교훈적이고 딱딱한 공간’ 이었는데, 이곳을 통해 박물관도 ‘재미있고, 교감하고, 살아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직접 체험하고 만져본 기억 때문인지 그곳의 경험이 오래 오래 남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학생들의 창의적 체험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많은 박물관에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물관은 그 자체로 다양하고 가치 있는 교육자료를 가진 공간이기에,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다만 학업에 매몰된 학생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고, 관심사를 넓혀주려면 보다 ‘살아있는 공간’이 될 필요가 있다. 박물관이 딱딱한 교육공간이나 전시공간이 아니라, 함께 뛰어 놀고 체험하고 깊은 영감을 주는 그런 친구와 같은 공간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정말 박물관이 살아있다! 고 말하고 싶어질 것 같고, 더 오래 머물고 싶고, 더 자주 방문하고 싶어질 것 같다.




*위는 한국박물관협회 뉴스레터 제 4호 (2020.7월)에 제 이름으로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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