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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사막을 건너는 법

방향을 잡아줄 자신만의 이정표를 만들 것

by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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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갈 길이 뚜렷하게 보이는 산이라기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사막을 더 닮았다.“

경영컨설턴트 스티브 도나휴의 말입니다. 그는 20대 때 친구들과 사하라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서아프리카 열대 해변에서 2월을 보내겠다며 별 계획없이 시작한 길이었는데, 사막을 건너는 40여 일동안 죽을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결혼, 이혼을 거치며 인생이란 것이 자신이 건넜던 사막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도 처음엔 인생이 ‘산’과 같은 여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표를 뚜렷이 세우면 갈 길이 뚜렷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제 앞으로 길은 한 번도 뚜렷하게 나 있었던 적이 없었고, 목표 역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매번 모양을 바꾸는 모래사막처럼, 저의 길도 계속 변해갔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또 길을 잃은 건가? 매우 당혹했습니다. 그런데 도나휴의 말 대로 인생이 ‘사막’이라면?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면 이해가 갑니다.

도나휴는 산을 오르는 법을 머리에서 지우고 사막을 건너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인생이 불확실하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때, 아무리 계획하고 준비한들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막에서는 눈에 보이는 목표가 없습니다. 사막은 끊임없이 모양이 변하기 때문에, 지도 대신 방향을 잡아줄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오래 전, 별을 보며 방향을 잡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별이 사라지면 더 이상 방향을 잡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따라서 별이 사라지는 건 재앙이었죠. '재앙'을 뜻하는 영어 ‘디재스터 Disaster’의 원뜻이 ‘별이 사라지다’에서 온 것이, 이해가 가시죠? 방향을 잡게 도와주던 나침반, 별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제가 바로 며칠 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제가 딛고 서 있던 땅이, 저를 살아있게 했던 이유가 갑자기 증발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아주던 저의 별이 사라진겁니다. 그리고 제 길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모든 것에서 무기력해졌습니다. 새벽 5시에 눈을 떠도, 일어나야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의욕을 북돋우고, 용기를 충전하는 건 누구보다 잘 하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힘을 못씁니다. 도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살아있게 했던 꿈, 저의 별이 사라지자 솔직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더군요.

스티븐 도나휴는 사람들이 방황하는 건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진정 이르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방황하는 것이죠. 즉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겁니다. 방향감각은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가야할 방향을 잡을 줄 안다는 뜻입니다. 방향만 올바르다면, 길이 좀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또 방향이 올바르다면 목표가 아니라 사막을 건너는 여정 자체에 중점을 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다시 길을 만들어가야 할까요? 어떻게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할까요?

예전에 사막에서 어떻게 물을 찾는지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껏 갈증을 느끼는 낙타를 풀어놓습니다. 그러면 낙타가 아주 희미한 물의 흔적을 따라 갑니다. 그를 따라가면 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지금 저의 무기력한 상황이 낙타를 풀기 전의 상황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은 상황에서 다시 방향을 잡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스스로 답을 찾게 하라.

지난 20년간 제가 수 없이 방황하고 여행하면서 발견한, 방향 잡는 법입니다. 여행할 때 길을 몰라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도와준 건, 언제나 질문이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분명하고 그를 제대로만 질문하면, 길을 잃어도 괜찮았습니다. 결국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을테니까요.

책 <몰락의 에티카> (신영철 지음)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좌표가 사라지면 자유가 오는 것이 아니라, 좌표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온다."
별이 사라졌다는 그 자체가 재앙은 아닙니다. 기존의 별이 사라졌는데, 아직 방향을 잡을만한 새로운 별이 없다는 사실이, 진짜 재앙이죠. 이정표가 사라진 자리에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이정표는 새로운 질문, 즉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갈건지 다시 기준을 잡을 수 있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건너야하는 자신만의 사막이 있습니다. 도나휴는 결국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자신만의 사막을 건너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그 길을 알려줄 수 없고, 누구도 나를 대신해 사막을 건너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밖에 없습니다. 까짓 지금껏 수 백번도 더 길을 헤맸는데, 한 번 더 길을 잃었다고 큰 일은 아닙니다.


오늘, 그를 위한 저의 질문을 찾아야겠습니다.
막다른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저에게 다시 방향감각을 되찾아줄 질문을,
제 삶의 기준을 새롭게 잡을 수 있는 질문을요.
건투를 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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