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everything

길 위의 모든 걸 체험하라.

by 김글리

“Take everything.”

호주 여행 중 만난 아저씨가 해주신 말이다. 동물원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당시 21살때라 나이를 말했더니,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경험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Take everything. 모든 걸 받아들여라. 니가 늘 배우려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한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경험들이 너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그를 스승으로 삼아라."

아저씨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없는데, 이 말만은 내도록 살아있었다.


여행자들의 사랑방

쿠바 아바나에 가면, "호아끼나 아줌마집"라고 한국인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숙소가 있다. 싸고 시내 중심지에 있어 편리한데다, 여행자 정보가 가득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언제나 만석이다. 수년 전 이곳에 한 여행자가 쿠바 여행 정보를 담은 노트를 만들어뒀는데, 이후로 무수한 여행자들이 오가며 알짜여행 정보와 노하우를 덧붙여갔다. 그게 여러 권의 여행노트로 쌓여가면서, '그 노트만 봐도 쿠바여행은 다 했다고 봐도 돼' 입소문이 널리 났다. 때문에 노트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덕분에 호아끼나 아줌마집은 여행자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래는 그 유명한 노트의 부분들; 어디 커피가 맛있고, 택시를 어떻게 싸게 탈수 있는지 갖가지 생활정보가 빼곡하다. ㅎㅎ]


한 번은 한국인 여행자 7명이 모여 호아끼나 아줌마 집에서 저녁을 해먹은 적이 있다. 휴학생부터, 직장 그만두고 나온 사람, 짧은 휴가로 온 사람, 갓 군대 제대한 사람까지 다양했다. 우린 감자전부터 시작해, 닭백숙, 스파게티 국수까지 배불리 해먹고 거실에서 앉아, 두런 두런 이야기 나누었다. 다들 여행을 꽤 다닌 사람들이라 이야기거리들이 많았다. 여행담에서 특히 사건사고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난 주제다.

여기가 바로 '호아끼나 아줌마네' 거실이자 여행자들의 사랑방!!

사건 사고는 뭐, 이 정도?

한 청년은 첫 세계여행으로 아프리카 갔다가 택시 강도를 만났다고 했다. 탄자니아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으슥한 데로 가더니, 느닷없이 건장한 남자 둘이 택시에 타더란다. 그리고 칼을 들고 위협하는데, 지갑을 줘도 내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야, 이거 잘못하면 죽겠구나', 싶어 비상용 칼을 몰래 꺼냈다. 천우신조인지, 그는 막 특전사를 마치고 여행 나온터라 패기가 가득했다. 그는 자신을 잡고 있던 강도 한명을 처치하고 가까스로 탈출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이 너무 커서 세계여행을 그만둘까, 할 정도로 애를 먹었다고 했다.


또 한 명은 세계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배낭을 통째 도둑맞은 전력이 있다. 멕시코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도착하고 나서 속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근처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 사정을 말하고 화장실을 잠시 썼다. 큰 배낭이라 카운터에 맡기고 갔는데, 돌아와보니 그새 카운터 직원이 바뀌어 있었다. 더불어 그의 가방도 종적없이 사라져버렸다. 따져도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여권과 신용카드는 몸에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졸지에 모든 걸 잃어버린 그는 그 뒤로 옷 한벌만 가지고 다니며 아주 단촐히 여행했다. 당시 그의 배낭은 작은 책가방만 했는데, 그나마 든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짐이 참 가볍다며, 얘기해주는 표정이 해맑았다. 잘된건지, 안된건지. ㅎㅎ


또 다른 한명은 남미에서 신용카드가 복제되는 바람에 통장에 있던 돈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일을 겪기도 했다. 그 문제는 여전히 은행측과 협의중이라고 했다. 사실 나도 혼자 여행하면서 사건사고가 많았다. 앞선 얘기와 비교하면 소소한 편이지만, 내게는 큰 일이었다.


한번은 모로코에서 길가는데, 어느 미친 남자가 아무 이유없이 날 세게 걷어 찬 적이 있었다. 어찌나 세게 차였던지, 순간 눈앞에 별이 왔다갔다 하고 눈물이 왈칵 나올정도로 아팠다. 페루에선 유명한 원주민 시장에 갔다가 10분만에 소매치기 시도가 3번 들어온 적도 있었고, 실제로 소매치기도 여러 번 당했다. 모로코,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주 인터내서날로 다양한 소매치기들을 겪을 수 있었다. 다른 여행자에게 사기 당해 수십만원 잃기도 했는데, 짐을 잃어버려서 도와달라거나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겠다며 접근해 오는 바람에 깜빡 속아넘어갔다. 이 밖에도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는 성추행을 당한 건 셀 수도 없다.


한국에 있을 땐 험한 일을 별로 당해본 적이 없었다. 돈을 도둑 맞아 본일도 없고, 우산 빼고 기억남도록 큰 물건을 잃어버린 적도 없다. 그런데 여행하면서, 특히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게 얼마나 많은 위험요소가 있는지 몸소 경험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한동안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얘기나눴던 '그날'의 흔적들...


이야기의 결을 더하라..

세계여행을 떠날때 여러 사람들이 인사해줬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넓은 세상을 담아 와.”

알았어, 나는 쉽게 대답했다. 그때 막연히 '무언가를 담으려면, 날 비우면 되잖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잖아',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짜증부터 났다. 내 인생엔 무지개만 가득해야지, 폭풍우나 바람 따윈 불어선 안됐으니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래서 너무 화가 났다. 소매치기 당할 때도, 몸이 아플 때도, 누군가 조금만 불친절해도,

"아씨,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야?"

"아, 왜 하필 나냐고!!!!!!"

하늘에 대고 주먹을 날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조차 지나고 나면, 한 편의 이야기로 남는 걸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실은 아무리 큰 일도 그 순간이 지나면 다 이야기꺼리가 된다. 신기하게도.... 또 안 좋은 일들 뒤에는 꼭 좋은 일이 왔다. 내가 소매치기 당해 거금을 잃자, " 돈 잃은 건 나쁜 게 물러가고 좋은 올거라는 뜻이에요."라며 위로해준 이도 있었고, 차비하라며 돈을 보태준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내가 울때 나를 위로하며 눈물 닦아준 사람도 있었다.... 그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날 서로 이런 저런 경험담을 나누는데, 참 재밌었다. 여행이 길면 길수록 이야기꺼리도 풍부해졌다. 고생하고, 애먹고, 울며불며 지나왔던 것들을 우린 '여행담'이라고 한다.ㅎㅎ 그래, 이야기는 그냥 쌓이지 않는다. 이야기가 풍부해진다는 건, 그만큼 일상의 결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또 다시 호주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길 위의 모든 걸 경험하거라.

무엇이 찾아오든 내치지 말고, 두팔 벌려 환영하는거야.

그 모든 것들이 네 삶을 풍성하게 해줄 결들이 되어줄 테니... "

모든 게 결국은 한편의 이야기가 된다는게... 재밌지 않아??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 가슴을 두근대게 만들고, 모험의 여정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시 한편을 소개한다.


네가 삶의 길로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삶의 여정에서 흥분되는 시장에 이를 때 마다
잠시 길을 멈추고 어여쁜 물건들을 사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삶의 냄새를 모험과 배움의 구석구석 배어 나오는 그 먼지 냄새를
그 배움의 즐거움을.
네가 이를 곳을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목표만이 너를 이루게 할 것이라 생각지 마라

삶은 너에게 이미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너의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니
목표가 이제 너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현자가 되었으니
비로소 삶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었구나.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이타카>를 구본형 선생이 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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