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이 세상은 진짜일까?
페르난도 보테로. 그의 이름을 몰라도, 한번쯤 이 그림은 봤을지 모르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해 아주 뚱뚱한 모나리자를 그려낸 이 그림. 보테로 하면, 뚱뚱한 사람을 그리는 화가, 고전을 재해석 해서 그려내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마른 것을찬양하는 현대에 일부러 부풀려 뚱뚱함을 강조한 그의 그림을 보면서 참 신선하다,고 생각해오던 터라 그의 고향인 콜롬비아의 '메데진'에 도착하자마자, 열일 제쳐두고 보테로 박물관부터 찾았다.
미술관 한 가득 전시돼 있는 그림과 조각들은 하나같이 뚱뚱했다. 이목구비는 살에 묻혀 조약돌만 하고, 몸체는 갓구운 식빵처럼 터져나갈 듯 풍만했다. 몸에 비해 너무 작은 이목구비가 볼륨감을 더해준다. 토실토실 살찐 모습이 혐오스럽기보단 귀여웠고 섹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주 친근했다.
하하하. 달덩이같은 얼굴과 저 조막한만 눈코입 좀 봐. 아놔~ 모든 실제들을 간단히 파괴해버리는 그의 그림들, 너무 좋다!
보테로는 소재를 실제보다 부풀려, 과장된 인체비례와 뚱뚱한 모습을 그린다. 사실을 말하자면, 실제 모델들이 뚱뚱한 게 아니라, 보테로가 뚱뚱하게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왜 이렇게 실제를 왜곡해 뚱뚱하게 그렸던 걸까? 미술관에선 '보테로 나름의 현실 재해석이자 해학이 곁들여진 사회적인 비평'이라 설명을 해줬지만,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보테로가 이에 대해 답한 게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뚱뚱하게 그린 적이 없어. 색감과 볼륨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풍만함이 강조됐을 뿐이지.”
그는 젊은시절부터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대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연구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 타고난 남미의 다채로운 색채감이 더해져 명랑한 원색과 살아있는 볼륨을 지닌, 보테로 특유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이제는 보테로의 손을 거치면 어떤 소재도 풍만하게 되어 나온다. 보테로에겐 그만의 세상이 존재했다.
두어 시간 실컷 보테로 작품들을 감상하고, 밖으로 나왔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현지인들이 바삐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풍경들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진짜일까? 덜컥 의심이 생겼다.
사실은 마구 휘어져 있는데, 내가 그를 직선으로 착각하고 있는 아닐까? 저 앞에 지나가는 예쁜 아가씨가 미드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안에 괴물을 탑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광장 앞에 있는 카페 주인이 영화 <맨인블랙>처럼 목이 막 돌아가는 외계인은 아닐까? 사실은 모든 게 주황빛인데 내가 파란빛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본 세계를 사실이라 믿어왔는데,실제를 왜곡시켜서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해낸 보테로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니, 갑자기 어질어질해졌다. 내 눈을 믿기가 어려워졌다. 사실 누구나 자기 눈에 얼마간의 색안경 혹은 콩깍지를 씌워넣고 보잖아…나도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보고 있는거고.
사실 , 보테로도 그걸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