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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Mar 28. 2021

5살 눈으로 바라본, 킬링필드

[영화리뷰]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캄보디아 딸은 기억한다>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20세기 최악의 학살극으로 꼽히는 '킬링필드'를 5살 꼬마의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다. 영화는 사건의  실제인물인 '로웅 엉'이 쓴 동명의 자전적 소설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다. 온가족이 집단농장에 끌려간 뒤, 부모를 잃고 살아남은 형제들과 겪은 4년간의 일들이 생생히,그러나 가슴아프게 펼쳐진다.     

 

처음엔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봤는데,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에 '여성감독인가?' 하고 이름을 봤다가 안젤리나 졸리인 걸 보고 깜놀했다. 영상미가 상당히 좋고, 절제된 연출로 잔인함의 수위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당시의 시간을 생생히 보여줘서 보고나면 여운이 상당히 깊고 오래간다. 역사에 관심있거나, 잔잔하지만 섬세한 연출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좋아할만한 영화다. 


영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킬링필드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당시 국제정세 이야기: 크메르루즈가 힘을 얻게 된 배경


킬링필드는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 루즈'정권이 사람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사건으로, 애초 어떻게 이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가가 궁금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국제정세를 알아야 하는데, 영화 역시 당시 캄보디아의 국제정세를 다루며 시작된다. 


1960~70년대는 미국과 베트남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로, 이때만 해도 캄보디아는 중립국이었다. 남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지만,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베트남이 캄보디아 국경을 보급루트로 이용하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남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이 맞붙어있는 지도


미국은 베트남의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미명아래, 하지 말아야 할 공격을 한다. 중립국인 캄보디아에 1969~1973년 사이에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한 것. 당시 폭격이 어느 정도 규모였냐면, 2차 세계대전때 미국이 일본에 쏟아부은 폭탄량이 18만톤이었는데, 이때 캄보디아에 쏟아부은 폭탄은 그 세 배에 달하는 54만톤이었다!! (급 분노가 치밀어 오르네..) 


(이미지출처: 네이버)

'작전명 메뉴'로 불렸던 이 캄보디아 공습으로 인해 당시 수십만 명의 캄보디아인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때 죽은 사람들이 40만~80만명이라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확실한 건, 이로 인해 캄보디아 내부에서 반미감정이 매우 악화되어갔다는 것. 이 틈을 파고 든게 바로 반미를 앞세운 '크메르 루즈'다! 크메르 루즈는 '붉은 크마에'라는 뜻으로,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급진적 공산주의 무력단체를 말한다. (일설에 의하면, 미군의 폭격에 가족을 잃은 많은 청년들이  크메르루즈로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크메르루즈군(좌)와 그들의 상징인 기(우)

마침내 1975년 4월, 당시 반미정서를 등에 업은 ‘폴 포트’가 이끄는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 루즈군이 ‘론 놀’의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니까 크메르루즈가 세력을 키우고, 캄보디아의 정권을 장악한 데에는 '미국'이 결정적인 일조를 한 셈이다. 


 

# 다시 영화이야기: 캄보디아판 문화혁명의 시작...


이야기는 1975년 4월,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에 입성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5살 소녀 '로웅 엉'은 6남매 중 5번째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아버지는 론 놀 정권에서 대위를 지내며, 이들 가족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리고 있었다. 멋쟁이인 어머니와 최신 유행을 따라 선그라스에 나팔바지를 입은 오빠들, 언니들과 함께 로웅 엉은 집에서 신나게 춤을 추며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공식예고편

사실 크메르루즈군이 프놈펜에 입성할 때만해도 시민들은 크메르루즈가 미군을 몰아낸 영웅이라며, 크게 환호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들은 점령하자마자 이빨을 드러낸다. 

프놈펜에 입성하는 크메르루즈군 (출처: 다음카페)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는 사회주의식 새 세상을 건설한다며, 프놈펜에 입성한지 몇 시간만에 이들은 모든 시민들을 농촌으로 대대적인 이주를 시킨다. 느닷없는 농촌이주 명령이 떨어지며, 루앙 가족도 옷 가지 몇벌만 챙겨서 부랴부랴 떠나게 된다. 


농촌으로 이동중인 로웅 가족 

이때문에 당시 인구 200만이던 프놈펜은 단 3일만에 2만 5천명으로 줄었고, 걸으며 이동하다 보니 도중에 죽은 사람만 2만명이 넘을 정도였다. 마우쩌둥의 문화혁명을 신봉한 폴 포트가 캄보디아의 문화혁명을 시작한 순간이다. (말은 '문화혁명'이지만, 실제로는 '문화대파괴'였다. 특히 교육이 특히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 시기에 유아기나 학생기를 겪은 이들의 문맹률이 두 나라 모두 엄청나게 증가했다.)

   

영화스틸컷. 집단농장에서 강제노역하는 사람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집단농장에 들어가게 된 로웅 가족은 허기도 면하지 못할 만큼의 음식을 배급받으며 아이 어른 할 것없이 온종일 노역에 시달린다. 아버지는 다리 공사로 차출돼 죽고, 큰언니와 오빠 두명도 병사로 차출되어 큰언니도 곧 죽는다. 로웅 엉은 똘똘해서 따로 군사교육을 받기 위해 차출되었는데, 이때 자신이 심은 지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어머니도 죽임을 당하고 남은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 다시 살 길을 찾아나선다. 천진해야할 아이는 점차 집없이 떠도는 생활에 적응해가며 나중에는 뱀을 죽여 직접 손질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하지만, 전해지는 킬링필드의 이야기들은 매우 끔찍하다. 

아이를 패대기 치는 장면. 자식이나 남편등이 눈앞에서 죽는 걸 목격한 여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심리적 충격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출처: 네이버)

자본주의자들을 색출한다며 전문직 또는 지식인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뿐만 아니라 영어나 외국어를 할줄 아는 자, 피부가 하얗거나 안경을 쓰거나 손에 굳은 살이 없어도 모두 빠짐없이 죽임을 당했다. 크메르루즈는 총알이 아까워, 사람들을 비닐 봉지를 머리에 씌워 질식사 시켰고, 생매장하거나 몽둥이나 돌로 때려 죽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나무에 패대기쳐서 죽였다. 이런 식으로 크메르 루즈는 1975년 4월부터 1979년까지, 단 3년 8개월동안 무려 170만여명을 학살한다. 이는 캄보디아 국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최대 300만명까지도 보지만, 보통 170만명으로 추산한다)

킬링필드를 다룬 또 다른 영화 <킬링필드>의 한 장면. 주인공이 해골이 쌓인 킬링필드를 온몸으로 헤쳐 나오고 있다. (출처: 네이버영화) 


이렇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시체들을 묻은 곳인 킬링필드Kiliingfield는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2만여 곳이 발견되었다. '킬링필드'는 1979년 베트남군과 캄보디아 공산당의 연합작전으로 폴포트가 축출되며 막을 내린다. 하지만 캄보디아 대량학살의 책임자들은 복잡한 정치 이해관계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 영화에 대한 비판점: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 영화에도 몇 가지 비판점은 있다. 


하나는 킬링필드가 미국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일어난 일인데도 미국의 책임의식이 거의 비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반에 닉슨의 발언을 잠깐 보여주긴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결국 미국의 자본(넷플릭스)으로 제작되다보니, 미국의 과오는 최소화하고 크메르루즈에게만 그 과오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고 캄보디아 자체 자본으로 영화제작을 하긴 어렵고..  여러모로 '관점'에 대한 논란은 있다 )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미군에 의해 죽은 캄보디아인이 60~80만 추산, 킬링필드로 죽은 이를 100만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두번째는 후반부에 베트남 군인들이 피난온 캄보디아인들을 도와주는데, 베트남을 너무 좋게 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후 10여년 동안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내정간섭한 것을 사례도 있어서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을 구세주처럼 그리는 걸 매우 탐탁치 않아한다.   



# 그럼에도 봐야한다면: 잔혹함 대신 선택한 인간성과 희망


세계사를 좋아하고, 특히 분쟁과 내전에 관련된 것들을 찾아읽는 사람 중 하나로서, 잔혹한 사진과 자료들로만 접했던 킬링필드가 5살의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게 신선했다. 잔혹함은 줄었지만, 대신 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과 헌신, 살아남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 가족간의 유대감은 더욱 진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저 시대를 살아간다면 어땠을까?’ 하는 대입을 하면서 보게되었다. 감정이나 상황이 절제되어서 그만큼 여운이 남는다.      


감독을 맡은 졸리는 아들에게 제대로된 캄보디아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런 바람답게, 영화는 잔혹함에서 끝나지 않고 희망적으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 아이가 흩어졌던 언니오빠들을 모두 만나면서 웃는 장면으로 해피엔딩을 맺는다. 특히 살아남은 가족의 유대를 그리는 마지막 장면은 세 번이나 돌려볼 정도로 여운이 많이 남았다. 


영화 스틸컷. 뿔뿔이 흩어졌던 남매들이 드뎌 모여 어깨동무하고 간다. (출처: 넷플릭스)
킬링필드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많다 보니, 글이 좀 길었다. ㅡ.ㅡ 본 글은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이다.




 #참고

- 영화돌 유튜브 <영화리뷰: 20세기 최악의 학살극 ‘킬링필드(1984)’ 근대 인류사의 비극>

- 위키 & 나무위키 : 킬링필드, 베트남 캄보디아전쟁, 폴포트, 크메르 루주

- 한겨레21 제 825호 <미군의 숨겨진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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