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투자대가들의 위대한 오답노트
우리가 아는 투자의 대가들- 즉, 워런 버핏, 찰리 멍거, 벤자민 그레이엄, 케인즈, 잭 보글 같은 사람도 실패한 적이 있을까?
반갑게도 답은 "있다"다. 마이클 배트닉이 지은 책 <투자대가들의 위대한 오답노트>엔 16명의 위대한 투자 대가들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 하나. 몇 달 전 주식에서 한 종목으로 수 백만원을 까먹는 엄청난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너무 화가 나서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이 실수를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실수를 딛고 더 나은 투자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이 책을 보게 됐고, 이 책이 나같은 사람을 위한 책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이 책은 16명의 투자 대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을 다룬다. 과연 천재라 일컬어진 세기의 투자가들은 어떤 실수를 저질렀을까? 일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등 비극적인 결말을 맺지만, 일부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해 더 큰 부를 이룬다.
"성공한 투자가들은 한결같이 그 성공에 필적할 만한 실패를 경험했다. (중략) 모든 투자자는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실패는 대개 자초한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처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과거의 실수가 미래의 판단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책은 대가들도 실패하고 실수한다는 걸 보여준다. 자신의 실수를 극복한 위대한 투자가들처럼 우리 자신도 스스로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걸 일러준다. 또한 실수도 게임의 부분이라고, 그걸 받아들이라고. 누누이 말한다. 사실 위대한 투자가로 추앙받는 이들도 이렇게 멍청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걸 보면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누구나 실패를 한다. 위대한 투자가도 예외는 아니다. 가치투자가의 아버지이자 월가의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공황 시절에는 남의 돈을 포함해서 무려 70%의 투자 손실을 봤다. 그는 증권분석을 최초로 개척했지만 대폭락장에서는 안전마진이고 뭐고 다 소용없었다. 그가 절치부심하며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낸 방법론이 바로 '가치투자'이다. 그러니까 세기의 방법론인 가치투자는 투자 실패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큰 손실을 보고도 그레이엄은 결국 주식이 진정한 가치를 향해 간다고 믿고 저평가된 종목을 계속 매수해간다. 그리고 20년간 매년 시장대비 3%p 가까운 초과수익률을 기록하는데, 이는 거의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월가에서 50년을 보내는 동안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갈수록 종잡을 수 없었으나 투자자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점점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태도의 변화다."
-벤저민 그레이엄
ETF라 불리는 지금의 지수추종펀드역시 마찬가지다. 지수 펀드를 처음으로 만든 '잭 보글'은 원래 기술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 전략을 운용하는 회사 CEO였다. 그런데 회사 대표상품이던 웰링턴 펀드에서 심각한 손실을 맞고 CEO에서 해임된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다. 이후 그는 뱅가드 그룹을 만들고 47세에 지수펀드를 만들었다. 지수펀드는 성공했고, 20년만에 자산이 6억달러에서 910억달러로 증가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단 재현가능한 방법이어야 한다. 투자에 정해진 절차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많은 변화구를 던지는 주식시장에서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잭 보글
투자는 오로지 연습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고, 그저 하고 또 하고 반복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또 반복할 수 있다. 그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 대가들을 통해 알게 되는 건 투자는 '일생동안 계속되는 긴 여정'이고, 그 여정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손실 규모를 미리 정해두라'는 것이다. 재앙에 가까운 손실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내가 가장 뼈저리게 깨달은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돈을 잃은 건, 미리 손실규모를 정해두지 않았고 리스크에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던 탓이 크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손실이 발생한 종목에 지나치게 오래 매달린다. 패배를 지연시키고 자아도 다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작은 손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손실에 매달리다가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5% 손실이 10%로 커지는 것을 무심히 지켜보고, 그것이 20%로 악화되는 것을 걱정하다가, 손실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으 공포에 떨며 보게될 것이다. "
- 위 책 48쪽
'마크 트웨인'을 다들 아실 것이다. 소설가로 아주 유명한 그 양반 말이다. 혹시 그가 투자자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론 실패한 투자자로 말이다. 그는 손대는 것마다 실패했고, 자신의 전재산은 물론 부인의 재산까지 다 날렸다. 본전을 만회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런 투자 명언을 여럿 남겼다.
"인생에서 투기를 하지 말아야 할 때가 두 번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때 그리고 감당할 수 있을때다."
"은행가는 화창할 때 우산을 빌려주고는 비가 오기 시작하면 즉시 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다."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는데 뒷북이 내 전문이다."
저자 배트닉은 "위험과 보상은 '복사하기와 붙여넣기'처럼 함께 한다"는 재밌는 표현을 쓴다.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손실을 관리하는 것이다.
400년도 더 전에 출판된 미겔 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이런 말이 나온다. "현명한 사람은 내일을 위해 오늘 인내하고, 달걀을 한 바구니 안에 담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분산투자는 현명한 위험 관리법이다. 금융계에 "부자가 되려면 집중하고 부자로 남으려면 분산투자하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세쿼이아 펀드'라고,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 철학으로 오랫동안 큰 성공을 거둔 펀드가 있었다.
이 펀드는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를 통해 수익을 거두었는데, 특히 20년간 버핏의 버크셔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면서 많은 초과수익을 올렸다. 그러다 분산투자 원칙을 깨고, 밸리언트 제약사의 주식을 최대로 매수하며, 집중투자를 하게 된다. 하지만 밸리언트 제약사는 회계부정과 가격부풀리기로 주가가 90% 하락하게 되고, 세쿼이아 펀드도 반토막 난다.
저자 배트닉은 주식에서 큰 돈을 벌고 싶다면 2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다양한 종목을 매수해서 장기간 보유하는 것
다른 하나는 소수 종목을 매수하고 자기 선택이 옳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분산투자는 느리고 지루하고, 집중투자는 재밌고 흥분된다. 하지만 어느 쪽도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며, 흥분이 따르는 데는 대개 위험도 따르는 법이다. 배트닉은 집중투자로 인한 손실을 예방하는 방법이 몇가지 소개한다.
첫째, 매수할 때 그 이유를 기록해둔다.
둘째, 출구전략을 기록해둔다. 얼마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지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손절가격을 미리 정해둔다.
머리가 좋다고 투자를 잘할까? 누구보다 똑똑했던 뉴턴은 주식투자로 많은 자산을 잃었다. 똑똑하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나중에 시장의 방향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
예측도 부질없다. 시장을 지배하는 건 물리학 법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투자 수익률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이익예측능력'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주가를 결정하는 건 '투자자의 기분과 기대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인스는 투자를 '미인대회 투표'에 비유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관건이다.
거시 경제학의 거장 케인스는 처음엔 원자재, 주가흐름 등 모든 걸 예측하려 했다. 하지만 1936~1938년도에 재산의 70%를 잃고 나서 그는 거시경제를 예측하는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는 능력이 없으면 정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나서였다. 그는 그예측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서야, 뛰어난 투자성적을 기록했다. 저자는 조언한다. 예측하려는 게임을 그만두고,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자산배분에 집중하라고.
중요한 건 예측이 아니라,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다.
"성공한 투자가는 강세장이 왔을 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없이 충분히 상승세를 누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약세장이 닥쳐 주변 사람이 이성을 잃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잘 훈련된 투자자는 다양한 시장 환경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상세히 파악해 자신의 개성에 맞는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다." (완벽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대충이라도 맞는 포트폴리오가 낫다) - 위의 책 184쪽
워런 버핏의 최고 파트너인 찰리 멍거. 그는 많은 차별점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기회에 정신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IT 주가가 최고조에 달하는 5년간 버크셔 헤서웨이 주가는 S&P500 지수 수익률을 무려 117% 하회했다. 버핏과 멍거는 IT를 잘 몰랐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큰 손실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뒷방 늙은이라 흉보았지만, IT 버블이 꺼지고 나서 버크셔는 되살아났다. '나쁜 날 없이 좋은 날도 없다.' 장기투자라는 구조안에는 대형손실이 있고, 이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큰 수익도 거둘 수 없다. 멍거는 투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바구니가 세 개 있습니다. 가져갈 것, 버릴 것, 너무 어려운 것. 너무 어려우면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가면 됩니다.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성공한 투자가에게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바로 통제가능한 것을 걱정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범위가 아무리 좁아도 그 안에 머무른다. 버핏은 말했다.
"투자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냉철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이다."
무려 16명의 투자가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재밌게도 마지막 장은 저자 자신의 실수담이다. 그는 학교에서도 실패하고 취업에도 실패하는데, 그의 말대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저자의 과거를 보노라면 두 가지 감정이 올라온다. 참 솔직하다는 감탄과 이런 인물도 말도 못하게 한심한 시절이 있었구나를 확인하는 안도감이다. 심지어 그는 블로그 명칭으로 '하찮은 투자자'를 쓴다. 그는 책에서 말한다.
"앞으로 커다란 손실이 발생하거나, 일찌감치 팔아치우고 싶거나, 어떻게든 본전이라도 회복하고 싶을 때는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평범한 투자자는 실수에 주저앉지만 위대한 투자자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자는 말했다.
"지혜를 얻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성찰하는 것으로 가장 고상한 방법이다.
둘째는 모방하는 것으로 가장 쉬운 방법이다.
셋째는 경험하는 것으로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자기 돈을 잃는 경험을 하기 전, 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교훈을 배우는 게 가장 좋겠다. 책은 250페이지 정도로 두껍진 않다. 하지만 풍부한 사례와 통찰이 잘 버무려져 있다. 자신의 투자 실책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분이라면 , 최근 손실을 봤다면 무조건 일독을 권한다. 투자자들이라면 기억해야할 아주 주옥같은 경구가 많다. 특히 지금처럼 실수하기 어려운 장일수록,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