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없이 세계여행하기

하고싶은대로 하면서 사는게 가능할까?

by 김글리

세계여행하면 돈이 얼마나 들까?

내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고, 떠나기 전에 나 역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답은 없다. 왜냐하면 여행스타일에 따라 드는 돈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세계여행 1년 하는데, 3천만원정도 예산을 잡는다고 한다. 이건 평균이고, 레저 좋아하고 이것저것 즐기고 싶다면, 돈을 싸짊어지고 가야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떠날 당시 내 전재산이 1500만원이었다. 이걸로 얼마나 여행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서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떠났다. "내 가진 돈을 다 탕진하면 그때 돌아오겠소!!" 그런데 그 돈으로 나는 총 16개월을 여행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놀라는데, 나만의 비결이 몇 가지 있긴하다. 그 중 하나가 현지인으로 사는 것. 어디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건, 대개 몇 곱절 비싸다. 하지만 현지인처럼 밥 먹고, 현지인처럼 차타고, 현지인처럼 자면 그것만으로도 돈이 굉장히 절약된다. 예를 들어 쿠바에서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서 먹으면 천원이면 되는데, 관광객용 식당은 만 원 줘야 한다. 또 현지인이 타는 택시를 타면 5백원이면 되는데, 관광객용을 타면 보통 5천원에서 요금이 시작된다. 그러니 그게 벌써 열 배 차이다. 그런데 이런 나보다 더 한 친구들도 많았다. 아예 히치하이킹으로만 여행하던 친구도 있었고, 입장료 내는 곳은 절대 안가는 친구도 있었다. ㅎㅎ 그 중의 왕은 바로 이 친구들이었다.


자가충전 여행자들을 만나다

“너 음악하니?”

중국 우루무치의 숙소에서 체크인 하는데 레게머리 한 서양친구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메고 있던 검정색 팬플룻 가방을 본 모양이었다. 밝은 금발에 귀여운얼굴이 마치 어린왕자를 떠올리게 한 그는프랑스 청년 '아튜'였다.


"응, 팬플룻 불어. 난 지니야." (*내 영어 이름이 지니다) 나도 소개를 하며 그를 관찰했다. 레게머리에 허름하고 헐렁한 옷차림, 거기에 맨발. 결정적으로 끊임없이 발사하는 웃음! '히피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등뒤로 그와 아주 흡사한 차림의- 그러니까 히피차림의 친구가 무려 6명이나 더 있었다. 다들 나를 보더니, 이가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어주었다. 알고보니, 이들은 남자 5명, 여자 2명으로 구성된 세계(무전)여행 자전거 팀이었다. 3개월만 더 있으면, 세계여행한지 3년이 된다고 했다. 다음 목적지가 카자흐스탄인데 비자 발급이 늦어져 우루무치에서 열흘째 체류중이라 했다.


"여기서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자전거타고 갈거야. 지난 2년동안 스페인가서 아르젠티나로 넘어갔다가 거기서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올라갔지. 거기서 다시 동남아시아로 가서 자전거 타고 여기(중국)까지 온거야.. 물론 도중에 기차를 몇번 탔지. 알다시피 중국은 굉장히 크잖아."


아튜는 자기들 여정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이 놈의 중국은 그냥 큰게 아니라, 오나전 크다. 바로 옆도시를 가려고 해도 기차로 기본 7시간이고, 좀 간다 싶으면 20시간을 달린다. 아무리 멀어도 5시간이면 어디든 가는 우리로서는 정말 숨막히는 거리개념이다. 그런 곳을 자그마치 '자전거'로 이동한다니… 나도 모르게 두 손가락을 쳐들었다. 니네가 짱이다!


이들은 모두 20대 초반이었는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혹은 대학교를 한 두해 다니다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돈도 별로 없어보였다. 대체 어떻게3년이나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날 오후 그들의 비밀을 알았다.


오후가 되자, 숙소 뒤편에 있는 잔디밭에 이 프랑스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각자 가방에서 뭘 하나씩 꺼내들었다. 누구는 곤봉, 누구는 깃발, 누구는 기타를 꺼내들더니 그를 가지고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난 그 옆에서 "야, 참 재밌게들 노네."하며 부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까 그 아튜가 와서 말걸었다. 


"이따 저녁에 근처 공원에서 공연할 건데, 올래?"

"공연? 무슨 공연?" 내가 묻자, 아튜가 설명해주었다.

"우린 주로 캠핑하면서 이동하거든. 시골에선 그냥 텐트치고 치고 자면 되는데, 이렇게 도시에 오면 숙박비를 마련해야니까 공연해."


아.... 알고보니, 이들은 '자가충전'여행자였다. 자가 충전 여행자는 미리 모든 걸 준비해서 떠나는 부류가 아니다. 방전되면 배터리 충전하듯, 여행하면서 그때 그때마다 필요할 것들을 구한다고 해서 자가충전여행자라 한다. (<귀한사전> 7장 여행편 5절 참조) 보통은 텐트에서 잠자고 자전거로 이동해서 식비 외에 돈 들 일은 거의 없지만, 만약 돈이 필요하면 이렇게 공연해서 경비를 만든다. 그 말인 즉슨, 결국 이들은 돈 없이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것도 3년씩이나!!!


"너도 보고싶으면 와."

아튜가 고맙게도 자기들 공연에 나를초청해주었다. 나는 유명 뮤지컬라도 초대받은 듯 들떴다.


'나의 이야기'로 돈벌기

저녁 7시가 되자, 프랑스 친구들이 악기를 챙겨 숙소 뒤편에는 큰 공원으로 갔다. 아직 공연이 시작도 안했는데도, 중국인들이 '이 노랑머리들이 뭘 하려나' 호기심 넘치는 눈을 하고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7명의 친구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한듯 보였다. 개 중 똘똘해뵈는 한 친구가 어디서 배웠는지, 꽤 유창한 중국어로 소개를 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우린 프랑스에서 왔어요. 자전거로전세계를 여행중이고, 3개월만 더 있으면 3년이 됩니다.

저희가 쇼를 보여드릴테니, 많은 호응부탁드리겠습니다.”

프랑스 친구들의 공연 모습

마침내 쇼가 시작됐다.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됐다. 누군가 나와 마임을 하더니, 갑자기 노래 중창이 시작되고, 그러다가 또 다른 친구가 나와 연극을 했다. 그러다 클라리넷도 불고, 기타도 치고.... 정말 말그대로 '쇼'를 했다. ㅎㅎ 솔직히 말하면, 여행다니면서 갈고 닦은게 분명해보이는 실력이었고 용기가 가상한 수준이었다. 노래와 악기연주는 그래도 봐줄만했는데, 마임과 연극은 어찌나 썰렁한지 내가 다 부끄러웠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중국인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십 여명에 불과했는데 삼십분이 지나자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연단을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공연하나가 끝날때마다 여기저기서 돈이 쏟아졌고, 우쿠렐레 케이스 통에는 돈이 수북히 쌓여갔다. 하지만 이런 난리법석을 도시 곳곳에 깔린 공안(중국 경찰)이 그냥 지나칠리 없었다. 한 시간이 채 못돼 공안 두 명이 왔다. 인상을 쓰며 프랑스 친구들에게 중국말로 뭐라 뭐라 하는데, 공연이 불법이라고 제재하는 듯 싶었다. 그를 지켜보던 중국인들이 되려 "왜 그러냐, 그냥 공연하게 놔두라" 고 경찰에게 강력히 항의해줬지만, 막상 프랑스 친구들은 문제 생기는 걸 원치 않았던지 바로 철수해버렸다. 그렇게 공연은 막을 내렸다.


오늘 그들이 공연하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좀 충격을 먹었다. 두가지 감정이 올라왔다.


하나는 부러움이었다. 사실 공연이라기보다 자기들끼리 재밌게 한 판 논것처럼 보였다. 친구들과 기타치고 노래하고 마임하고... 그런데 그걸 남앞에서 하면 돈도 벌 수 있다!!! 나는 그게 참 부러웠다. 재밌게 놀면서 돈벌기. 나도 예전에 호주 여행할 때 돈이 떨어져서 팬플룻을 불면서 나흘간 길거리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경험 덕분에 이들에게 더욱 감정을 이입했던 거 같다.


또 하난, 경외심이었다. 숙소에서는 말수도 그리 많지 않고 얌전하게만 보이던 '아튜'가 마임한다고 용쓰고, 괴성지르는 걸 보면서 굉장히 안쓰러웠다. 한편으론 절벽에서 바위를 뚫고 피어난 민들레를 보면서 느꼈던,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다. '아, 살아남으려면 저 정돈 해야겠구나' 사실 내가 실력이 별로라고, 혹평을 하긴 했지만... 꼭 잘할 필요도 없다. 그저 어디서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남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하니까. 그리고 바로 그들이 3년동안 여행하면서 그를 온 몸으로 증명했다.


하고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하고싶은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고싶은 걸 하기 위해선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한다. 이게 순서다. 타당한 말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두 친구가 있었다. 둘 다 돈이 별로 없는데, 여행이 하고 싶었다. 한 친구는 '에이, 나중에 돈 벌어서 해야지' 하며 나중을 기약했다. 또 다른 친구는 '돈이 없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찾기 시작했다. 그는 후원사를 찾아야겠단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기획서를 만들어 여러 곳을 찾아간 끝에 결국 후원을 받아서 그 돈으로 유럽을 80일 동안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 프랑스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건, '또 다른 친구'처럼 일반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조건이 갖춰질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뒤로 미루는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그냥 했다. 돈이 없으니 비행기 대신 자전거를 타고, 호텔에서 자는 대신 텐트를 치고 잤다. 그걸 누가 알아주거나 월급주는 건 아니지만, 그저 좋으니까 하는 거다, 수년 동안!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러다 돈이 필요해지면 거리로 나가 여행으로 쌓아온 자신들의 이야기를보여주고 돈을 벌었다.


"살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어." 자주 듣는, 익숙한 말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그게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뭘 하든 대가를 따른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도, 잃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잃는가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무엇을 얻는가, 거기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게 다른 점이었다.


나는 그 얼토당토 않은 공연을 펼쳐 돈을 벌던 프랑스 친구들을 보며, 또 다른 친구를 보며 한가지 배웠다.

일반적인 생각처럼 하고싶은 걸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건, 사실 용기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무엇을 먼저 할것인가라는, 내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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