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가 날 찾아왔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파블로 네루다, ‘시가 내게로 왔다’ 중
칠레를 여행하면서 내가 기억나는 건, 패러글라이딩과 파블로 네루다뿐이다. 파블로 네루다 (Pablo Nefuda, 1904~1973)는 칠레의 국민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내가 존경한 구본형 사부는 남미에 가면 파블로 네루다를 꼭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의 시를 읽을 때 남미의 붉은 태양처럼 살고 싶어진다"고 했다. 나는 일부러 네루다의 모든 집을 순방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시를 좋아했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아주 재밌게 읽기도 해서 그를 꼭 보고 싶었다. 칠레에는 그의 집이 3채가 남아있다. 산티아고, 발파라이소, 그리고 여기 이슬라 네그라.
‘이슬라 네그라’는 “검은 섬”이라는 뜻인데,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배경이 된 곳이다. 네루다는 1939년부터 1973년 마지막 순간까지 이곳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네루다의 본명은 리카르도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 그는 10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를 쓰기 위해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을 만들었다. 그게 15살때였다. 그리고 나중에 법적 이름으로 아예 바꾸었다. 네루다는 사회주의에 몸바친 혁명시인으로도 알려졌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더 많이 남겼다. 그는 평생 시로 사랑과 혁명을 노래했다.
그의 집을 찾아 다니면서, 그의 매력에 더 빠졌다. 그렇게 재미난 집은 처음 보았다. 지금껏 살면서 무수한 집을 보았고, 멋진 건축물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집 주인의 철학과 가치가 온통 스며든 집은 처음 보았다. 네루다는 바다를 사랑해서 집 전체를 선박으로 꾸며놓았다. 침실을 밀실로 꾸며 보이지 않게 만드는가 하면, 배의 느낌을 살리려고 일부러 삐걱거리게 복도를 만들었다. 또 집안에는 여행다니며 수집한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했다. 집 구석구석에 유머가 있었다. 마리화나도 있고 바는 세 군데나 있고 몰래 숨겨진 거실도 있었다. . 집만 봐도 느낌이 팍, 왔다. 이 시인. 진짜 삶을 사랑한 사람이었네...
네루다는 매혹적인 인물이었다. 사랑, 우정도, 열정도 넘쳐났다. 어느 평론가에 의하면 그는 죽을 때까지 '철들지 않는 소년'이었다. 대자연에, 사랑에, 순수함에, 아름다운 사회에 대한 꿈에 매혹돼 있었고, 그를 시로 옮겼다. 그의 시에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날아온 말들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를 열렬히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매혹을 느끼는 건.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그가 끌어내어 주기 때문일지도.
'파블로 네루다'의 집을 다녀오고, 그날 밤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 뒤척이다, 결국 새벽 5시 아무도 없는 거실로 나와앉았다. 몹시 허기가 졌다. 하지만 막상 배가 고픈게 아니었다. 허기가 진 곳...
나는 노트를 폈다. 파블로 네루다는 어느날 시가 내게로 왔다며, 시를 썼다. 엄마 말씀에 의하면 나는 어느날 혼자 글을 깨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게 7살 무렵이었다. 9살엔 김삿갓에 심취해 동시 대신 고대시조를 지으며 놀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불교철학과 장자와 노자에 빠져있었다. 내 안에는 커다란 폭포수같은 글줄기가 있었다. 후에 국문학을 공부하고,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하고 기자로 잠시 일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언제나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강박적으로 기록을 하고, 공저로 책도 낸 것도 그런 내 안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글쓰기를 완전히 멈추었다. 수 년 동안 글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글이 싫었던 거 같다. 나는 내 글이 아름답지 않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맨 살의 내 글이 부끄러웠다. “네 경험을 글로 써야 돼. 아깝잖아.” 주위 사람들이 권유하고 재촉할 때도 가슴 한켠이 좀 아리긴 했지만, 그냥 내버려뒀다.
재능에도 시효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그저 지속하는 법은 없다. 활용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고, 결국은 녹슬은 채로 묻혀진다. 이처럼 제대로 쓰지 않아서 그대로 사장된 재능을 가리켜 '재능무덤'이라 표현한다. (<귀한 사전> 5장 12절 발췌) 글은 내 대표적인 재능무덤 중 하나였다. 강박적으로 기록하는 습관도, 끄적이는 습성도 함께 멈추었다. 수많은 것들이 오랫동안 내 안에서 황무지처럼 방치되어갔다. 그런데.... 네루다 집에 갔다가, 우연히 본 글귀가 내 마음의 황무지에 한줄기 바람을 일으켜버렸다.
시인지, 파블로 네루다의 말인지도 알 수 없는 글이 엽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Beware that I am going to write! 내가 글 쓸 거니까 조심하라구!
Please come in, interrupt me, release me from my work. 제발 들어와서, 날 방해하고, 내 일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줘.
Comply with it, sail through out my house, that I will keep on writing withouthesitation. 그것과 함께, 내 집을 항해해 통과하는 거야, 그리고 난 주저함 없이 계속해서 쓰는거야."
그 중 몇 개의 단어들이 돌멩이처럼 내 맘에 날아왔다.
'come in' - 슝
'interrupt me' --슈웅--'
'release me' 또-- 슝- '
그래,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왜 사람들이 내글을 모두 이해해야만 하는거지? 가끔 나 자신도 이해못하는데!왜 항상 아름다워야 하지? 상처투성이 맨얼굴도 아름다울 수 있는데! 흙탕물이면 어때, 정화수처럼 맑으면 어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결론이 없으면 어때, 망설임 없이 되는대로 아니 흘러가는대로 그대로 둬버려. Standard는 알지도 못하고, border는 어디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나 아니냐. 자유로운 보헤미안이라 불리던 나 아니냐.
'keep on writing without hesitation' -퓨우웅!
그래, 이 새벽이 다하도록, 이 노트가 다하도록 글쓰기를 멈추고 싶지 않아.
그 날, 나는 새벽이 다하도록 줄기차게 글을 썼다. 마침내 수 년간 묵혀두었던 내 안의 황무지를 만났다.
오랫동안 버려뒀던 땅. 그곳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 있었다. 버려뒀다고 생각했던 그곳엔 그동안 이끼가 끼고, 낙엽이 쌓이고, 낙엽과 흙이 한데 섞여 썩어가고, 벌레가 찾아오고, 바람이 선들선들 불기 시작하고, 햇살도 그 위로 간간이 비추었다. 그러면서 땅이 썩어갔다. 아니, 묵히어 갔다. 모든 게 한데 엉켜 무질서하게 발효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래, 흙 알알이 사이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방울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발울, 또 한방울. 한방울이 모여 손바닥만 해지고, 손바닥이 웅덩이 만해지고, 또 다른 웅덩이들을 만들어갔다. 곳곳에 만들어진 웅덩이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또 그들끼리 서로 합해지기를 반복해.. 더더큰 웅덩이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연못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흐를만큼의 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러자 개구리가 찾아오고, 꽃이 피고, 주위에 나무가 자라나고, 새들이 찾아오고, 생명체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간 버려져 황무지가 된 줄 알았던 그곳이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채 자신의 색을 지닌, Secret garden이 되어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공간이 되었다. 영원히 말라버린줄 알았던 폭포수가 다시 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지개를켜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물줄기를 흘려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