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터키 커플의 이야기
나는 여행을 꽤 다녔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해진 방식에서벗어나, 낯선 방식을 만나는 게 좋아서였다. 우리처럼 아침에 밥을 먹는게 당연한 곳이 있는가하면, 밥먹는다고 화들짝 놀라는 곳도 있다. 우리처럼 일요일이 공휴일인 곳이 있는가하면, 금요일에 쉬는 국가도 있다. 돼지를 먹는게 당연한 곳이 있는가하면, 돼지를 먹는게 금기시 되고 더럽다고 여기는 곳도 있다. 여자 목소리가 남자보다 더 큰 곳이 있는가 하면, 여자 혼자서는 외출도 못하는 곳도 있다. 나는 여행을 통해서 살아가는데엔 정말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걸 배웠다.
여행하면서 확실히 한국과는 다른 속도, 다른 시선,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터키에서 좀 재미난 커플을 만났다. 거지철학자로 유명한 '디오게네스'의 고향인 '시놉Sinop'에 갔다가, 우연히 식당에서 이들을 만났다.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초청을 받아서 이틀간 함께 머물렀었다.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풍습을 가진 '터키'에서는 이런 초청은 드문 일이 아니다.
나를 초대해준 커플은 30대 후반의 부부였는데 3살된 딸이 하나 있었다. 남편은 1년에 절반은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마도로스(주로 국제 항로를 다니는 뱃사람)고, 부인은 집에서 3살난 딸을 키우는 전업주부였다. 이틀간 이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만끽했다. 바다를 따라 자전거 라이딩도 하고, 티하우스(터키식 카페다. 이곳에 모여 차마시며 수다떨고 게임하고 논다) 에도 가서 몇 시간이고 수다떨고, 2시간씩 아침 식사를 즐겼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부부에 대해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평소 나는 결혼이란 건, '사랑'이 바탕이 된 동맹이라고 여겼다. 사랑이 없다면 불행해질테고,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내 관점에서 보면 이들 부부는 시작부터가 좀 특이했다.
남자는 터키사람이고, 여자는 중국사람인 국제커플인데, 인터넷 펜팔로 처음 만났다고 했다. 1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다가 실제로 만나게되었다. 처음에 둘다 아무 감정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가 먼저 "결혼합시다"라고 했고, 여자가 "그럽시다" 라고 받았다. 그게 만난지 3일째 일어난 일이었다. 아니, 결혼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사랑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결혼했지? 처음엔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한 입으로 말했다.
"우린 결혼이 그렇게 대단한 거라곤 생각 안했어요. 그냥 때가 되면 하는 거지."
이 부부의 거침없는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우린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 않아요."
"맞아, 누군가 떠나더라도 미련없이 보내고 다른 인생을 살 준비가 돼 있어." 심지어 이런 말도 나왔다.
“내가 보기에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경영을 하는 거야. 사랑은 일종의 속임수거든. 결혼에는 사랑하는가보다 존중하는가가 중요한거야.”
이 부부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너~무 쿨한거 아냐?' 생각했다. 그런데 이틀을 같이 지내보니, 이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닥 나빠보이진 않았다. 깨 쏟아질듯 행복하진 않아도, 이들은 현실적으로 서로를 인정해줬다. 입맛이 달라 터키식, 중국식 두 가지 요리가 동시에 밥상에 올라왔고, 레저 좋아하는 남편은 남편대로 사교 좋아하는 부인은 부인대로 취미생활을 즐겼다. 내가 만났을 때 이들은 결혼 5년차였다. 남편의 직업 때문에 돌아다니느라, 일년에 반 정도만 같이 산다. 부인은 직업상 남편이 해외 가 있는 동안은 친정인 중국으로 가서 지내거나, 나름대로 생활을 꾸려갔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지내다보니, 오히려 이렇게 환상도 없이 기대도 없이, 행복한 척 사랑하는 척 하는 없이 살아가는 게 더 현실적이고 건강해보였다. 그들은 결혼 생활이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서로에 대해 큰 기대도 없었다. 그래서 '니가 이렇게 해줘야지, 우린 이렇게 해야해' 라는 게 드물었다. 자신들이 죽든 감정이 다하든, 언젠가 관계의 끝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지냈다. 충돌이 있으면 있는대로, 맞춰지면 맞추는대로 살아갔다. 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답과는 달랐지만, 자신들만의 답을 가지고 살았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뭐 나름 잘 살아가네. 이것도 답일수 있겠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건, 그만큼 정답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무엇이건 한 가지 답만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나의 답을 찾아 그에 따라 살면 그만이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먹고 마시며 좀더 얘기나눈 끝이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지금도 이 부부와 페이스북 친구로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다. 가족의 사진이 종종 올라오는데,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듯 보였다. 딸은 아주 귀여운 숙녀로 성장해가고 있고, 현재 결혼 8년차인 이 부부는 터키와 중국을 오가며, 여전히 자알 살고 있다. 자신들의 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