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님, 우린 왜 사나요?

나도 답은 없어요, 다만.

by 김글리

젊었을 때 만난 사람 중에 미래의 내가 있다

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런가?' 하고 지나갔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내 길을 찾기위해 헤맬 때, 어떤 사람들이 내 삶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들이 남긴 어떤 것들이 내게 영감을 주고, 표지를 주었다. 그리고 그게 나를 다시 구성해갔다. 내 안에는 수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그 중 류시화 시인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때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심한 스트레스로 황달이 왔고, 원형탈모도 생겼었다. 그 스트레스를 유발한 건 바로 이 질문이었다.


넌 누구야?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중학교를 마치고, 인근 도시의 고등학교로 홀로 유학을 갔다. 아직도 입학식이 생생하다. 수백 명이 모인 강당에 들어갔는데 그 중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마치 섬처럼 외로웠다. 그들은 나를 전혀 몰랐고, 나도 그들이 누군지 전혀 몰랐다.  그렇게 암담하게 시작된 고등학교. 낯선 아이들이 내게 묻기 시작했다..

"넌 누구야? 넌 뭐 좋아해? 넌 어떻게 생각해?"

뭐라고? 너무 당황했다.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왔기에 그런 질문을 받아본적이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인간인지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자각했다.


‘그러게, 나는 누구지? 나는 어떤 인간이지?’ 답을 구하려고 애쓸수록, 이는 '나는 여기에서 뭐하는 걸까, 대체 왜 태어난걸까‘ 라는 더 큰 고민으로 발전해갔다.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밥 먹을 때도, 공부할 때도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이 물음은 내 모든 생각을 빨아당기는 블랙홀같았다. 너무 괴로워서 나는 날마다 잠을 잤다. 얼마나 잤던지, 고 2때는 수업을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ㅡ.ㅡ 그런데 주변엔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도, 질문할 사람도 없었다. 한번은 학교 상담실에 용기내 찾아갔다가 이런 답만 들었다. "흠.. 넌 좀더 현실적인 목표가 필요하겠구나." 그러니 대체 내가 누군지 말할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나는 결국 책으로 파고들었다. 잠을 자지 않으면 도서관에 가서 심리학이며 철학, 에세이, 소설, 고전, 무협지, 자기계발서 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그 중에서도 힌비야와 류시화 책을 좋아했는데 특히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으로 만난 류시화는 내게 삶의 신비를 맛보게 해줬다. 절판된 것까지 그의 책을 모두 찾아 읽으며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 그래, 그라면, 내 고민을 이해해주고, 답해줄거야.'


류시화님, 우린 왜 사나요?

나는 당장 류시화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몹시 절박했고, 절실했다. 답을 찾지 못하면, 시시하게 살까봐, 남들이 살라는 대로 살게 될까봐 두려웠다.


'류시화님,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요? 지금 고 2인데 왜 공부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고민만 하다 보니 머리만 아파오고, 어제는 머리카락이 500개나 빠졌어요. 그런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거 같아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 제발 좀 알려주세요.'

라는 내용으로 4장에 걸쳐 긴 편지를 썼다. 주소를 몰라서 출판사로 보내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는데 답은 오지 않았다. 석달이 지나고는 아예 잊어버렸다. 그런데 넉달 뒤, 놀랍게도 집으로 소포 하나가 왔다. 발신인 류.시.화. 우와~~~ 할렐루야!!!! 주님 부처님!!! 알라.

!!!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소포 안에는 책 한권과 엽서가 들어 있었다. 그는 친필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엽서에 적었다.


"편지는 잘 전해받았습니다. 겨울을 인도와 네팔에서 지내고 돌아와, 이 봄 자연에 대한 잠언시집을 엮었습니다. 햇빛 좋은 날 몇 편 꺼내 읽어 보기를 바라구요. 편지에서 '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원했더군요. 왜 살아야 하는가는 나는 아직 모릅니다.다만 알고 있는 것 하나는, 그 질문을 끝없이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 질문을 무시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우리는 계속 물어봐야 합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살다가 죽을 수는 없으니까."

1999년 4월
류시화

좋았다. 엽서를 몇 번이나 읽었다. 거꾸로도 읽고 뒤집어도 읽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답은 없었다. 그도 모른단다!!! 이럴 수가.... 솔직히 정답까진 아니더라도 명쾌한 뭔가를 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이렇게 살아보세요, 라고 달콤한 조언한마디라도 해줄법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품고 살라는 말만 해줬다.


덕분에 내 고민은 더 깊어져갔다. 이 고민은 죽도록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름에 잠긴 어느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을 읽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당신은 참으로 젊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작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름 아니라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질문을 품고 가보기

고등학교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인생 선배들이 충고해준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온 몸으로 이 삶을, 내 질문들을 경험해보기로 했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한번 가보자, 어려울수도 있겠지만.가는 길 포기만 않으면 괜찮겠지. 언젠가는 내 삶이 답을 해주겠지.'


그 뒤로 나는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었다. 세계여행을 떠나고, 호주에서 살아보고, 히말라야를 오르고, 직장을 다니고, 기자로 글도 쓰고, 무전여행을 하기도 했다. 팬플룻 불어 돈도 벌어보고, 사랑도 해보고, 인도에서 3개월간 수행도 했다.


세상에는 성공에 대한 법칙은 넘쳐났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조언하는 사람도 넘쳐났다. 개 중에는 "이렇게 살아야 해" 라고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는 이도 있었다. 그들을 겪으면서 나는 류시화가 '나는 모른다'고 말한 사실이, 얼마나 큰 것이었지 오히려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좌충우돌., 몸으로 하나씩 해보면서 내방식을 찾아갔다. 나와 맞지않는 방법론을 따를 땐 언제나 몸이 먼저 아파왔다. 하지만 꼭 맞는옷을 입은것처럼 몸도 마음도 편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아, 이게 내 방식이구나.


지금도 가끔 "왜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 질문을 품고 가는게 중요합니다" 라던 류시화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할수 있을 거 같다. 돌아보니, 질문을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바로 나였다. 그 답을 찾아 헤매던 그 여정 자체가, 내 길이 되었다. 질문을 품고 살라는 류시화 시인의 말이 이젠 이렇게 들린다.

"질문을 품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삶입니다."

류시화가 보내준 친필엽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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