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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Mar 11. 2022

여행, 좋아하세요?

최초의 인문여행, 그랜드투어


최초의 인문여행, 그랜드투어


여행 좋아하시나요? 2년 넘게 해외길이 막히다보니 여행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행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 이 사진만 봐도 떠나고 싶어지는군요)


여러분은 여행하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해변가, 휴식, 멈춤, 쉼, 다양한 경험... 등 생각만해도 가슴설레는 것들이 떠오르실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행이 지금처럼 낭만과 휴식,레저를 뜻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길어봐야 200년입니다.



여행은 레저? 아니, 사실은


그 전까지 여행은 일생일대의 고역을 뜻했습니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단어 ‘travel’이 어디서 왔는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travel은 ‘노고, 고통’을 뜻하는 라틴어 ‘travail’에 어원을 둡니다. 수 백년동안 여행은 고생을 뜻했고,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군인, 상인, 유목민, 순례자들처럼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추방당한 사람들뿐이었죠. 그런데 고생스럽던 여행이 18세기 들어 바뀌기 시작합니다.


여행이 최고의 수업이다


‘그랜드 투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랜드투어는 유럽 귀족들이 ‘배움’을 목적으로 떠난 최초의 교육여행을 말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수학여행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18세기 영국의 귀족들이 고대 문화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떠나는 게 시초였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유럽을 벗어나 아프리카, 페르시아, 중국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죠.


당시는 여행하기 적합한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강도나 해적을 만나 전재산을 뺏기는 경우도 있었고, 종교적 분쟁이 여전해 심할 경우 잡혀서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경향이 짙어지며 호기심 충족을 위해 자연과 문화에 대한 탐구하는 움직임도 활발지면서 “멀리 나가야 많이 본다”는 풍조가 일게 됩니다. 여기에 영국이 가진 섬나라의 열등감이 한 몫합니다. 영국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건 19세기 이후의 일이고, 17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은 자국의 문화가 뒤처지기 때문에, 대륙의 문화를 보고 체험하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처음으로 그랜드투어를 다녀온 사람은 영국의 귀족자였던 ‘필립 시드니’였습니다. 그는 18세이던 1572년에 영국을 떠나, 3년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오스트리아를 여행하고 귀국합니다. 이 일정이 그랜드 투어의 보편적인 일정이 되었죠. 이때부터 귀족 자제들은 가정교사와 하인을 거느리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파리, 피렌체, 베니스가 주요 경유지였고,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습니다.


(이미지출처: 트래블조선 travel.chosun.com)

적게는 6개월에서 보통 2~3년을 다녔고, 길면 7년도 되었습니다. 수많은 수행원을 대동했기 때문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는데요, 한 명의 귀족이 여행하는데 1년에 2억 이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 인기는 점차 커져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습니다. 영국에서는 한해에만 4만여명이 유럽에 체류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죠.


그랜드투어를 떠난 영국귀족 자녀들 모습 (이미지출처: 한국경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컸습니다. 그래서 귀족 자제들은 사교육으로 대체했고 사교육도 만족할 수 없어 해외여행이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큰 물을 경험해야 진정한 교육이 이뤄진다는 믿음이 팽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랜드 투어를 엘리트교육의 최종단계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외국물을 먹고 돌아온 영국의 귀족 자제들은 여행으로 키운 국제감각을 통해 훗날 영국 전성기를 여는 주역으로 큰 몫을 합니다.


당시 그랜드투어를 통해 많은 여행서가 출간되었는데, 최초의 여행안내서는 스위스 의사였던 테오도어 츠빙거가 유럽을 여행하고 쓴 <여행방법>이었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도 그랜드투어의 산물이었습니다. 유럽이 지금의 EU와 같은 한 단위로 인식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그랜드투어에서 시작되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여행이 여러모로 좋은 기회가 된 것입니다.


나가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


이후 19세기 들어 증기선과 증기기관차가 발명되면서 여행은 더많은 계층으로 번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2019년까지 매년 증가하다, 2019년에 40억명으로 고점을 찍고, 2020년에 –80%로 대폭락. 2021년엔 15억명으로 조금 반등합니다. 재밌게도 지난해 ‘김포-제주’ 노선이 무려 1022만명으로 전세계 국내선 중 이용객수 탑을 찍었더군요.


세계항공수요 예측 (출처:여행신문30)

이런 저런 이론을 갖대댔지만 아마도 인간이란 존재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최초의 인문주의자이였던 이탈리아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이런 말을 합니다.


“새로운 곳을 보고 싶어하고,

자꾸 다른 곳에 살아보고 싶어하는 바람은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니, 겨우내 눌러왔던 노마드의 피가 끓어오릅니다.

어제는 인도 타지마할이, 오늘은 태국 치앙마이가 자꾸 눈앞에 어른 거리네요.

전쟁과 산불, 인플레이션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만 좋은 봄날만큼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 참고

책 <그랜드 투어> 설혜심 지음

방송 <심용 환의 타박타박 세계사> 2021년 8월 22일 방송분

기사 <그랜드 투어, 세상을 배우려는 꿈의 결정판>, 신동아, 2017.05.11. 정여울

지식브런치 유튜브 <EU통합의 뿌리가 된 18세기 영국 오렌지족의 호화 여행 그랜드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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