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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Oct 24. 2021

넘어져도 괜찮을 기술 하나쯤

넘어져도 괜찮을 인생낙법치기


잘 넘어지는 기술


고 3 수능이 끝나고, 3개월간 유도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재미삼아  배우려고 갔는데, 관장님이 저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아, 내가 널 국가대표로 만들어줄 수 있었는데…왜 이제 왔니!"  많이 안타까워하셨죠.  아닌게 아니라 저는 키도 크고 뼈대가 잘 발달되어 있어 운동선수라는 오해를 꽤 받습니다. 공원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면 아주머니들이 저를 따라 몸을 푼다거나, 수영배우러 가면 수영선생님으로 오해받는 식입니다.   

 

이런 국가대표급의 몸을 가지고서,  하루에 2시간씩 아주 빡세게 유도를 배웠습니다. 당시 여러가지 기술을 많이 배웠는데, 그중 가장 많이 한 건 '낙법치기'였습니다. '낙법'은 충격을 최소화하여 넘어지는 기술인데,  메치거나 던지는 기술이 많은 유도에서는 필수 방어술입니다.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도 넘어지고, 옆으로도 넘어지며 온종일 넘어지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프고 재미는 없고, 자꾸 꾀를 부리자 하루는 관장님이 이런 말을 해줍니다.  


 "야, 재미는 없어도 이 낙법치기를 잘해야 돼. 잘 넘어질 줄 알아야, 넘어져도 덜 아프고 그래야 또 일어나기가 쉽다고." 


자꾸 넘어지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점차 요령이 생기더군요. 넘어져도 덜 아팠고, 그러니 덜 무서웠습니다. 사실 낙법을 친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닙니다. 대신 충격을 완화시켜서  '조금 덜' 아프게  만들고,  치명적인 부상을 막아주죠.  유도를 하다보면 넘어지기가 다반사인데, 잘 넘어져야 안 다칩니다.  


그런데 대체 잘 넘어지는 건 어떤 걸까요? 핵심은 이렇습니다. 넘어질 것 같으면 오케이 나 넘어질게, 하고 깔끔하게 넘어지기.  안 넘어지려고 버둥대면 온 몸에 힘이 들어가 더 많이 다치게 됩니다.  바닥에 떨어질 때는 충격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손과 다리로 바닥을 탕, 소리나도록 치면 충격이 분산됩니다. 또 몸을 최대한 웅크려 내장과 머리같은 주요기관을 보호합니다. 그러면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에 부딪혀 날아갔는데 낙법치기해서 멀쩡했다,  뭐 이런 무용담도 떠돕니다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이처럼 낙법 기술은, 충격을 분산하고 보호하면서 넘어지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이 낙법의 기술을 잘 활용한 인물로, 아무래도 삼국지의 유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져도, 진 게 아니다, 패왕 유비가 실패를 대하는 법


삼국지의 공공연한 주인공 '유비'.  탄탄한 기반이 있었던 조조나 원소와 달리 빈털털이에서 출발했던 유비는 스펙부터 매우 후달렸습니다. 황족의 후손이라 하지만 허울 좋은 이름에 불과했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야 했죠. 하지만 맨 밑바닥에서 시작해 촉한의 초대황제까지 올랐으니, 자수성가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사실 유비는 '실패의 아버지'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유비는 생애 첫 출정이었던 황건적과 전투에서 크게 진 뒤 죽은 척을 해서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이후로도  수 많은 전투를 치렀는데, 민망할 정도로 자주 졌습니다. 여포에게 지고, 원술에게 지고, 조조에게는 상시로 졌죠. 정사에 기록된 총 22회의 전투에서 유비가 승리한 건 9번뿐입니다.  개중 일가족을 버리고 간 것만 4번에 달했죠.  조조가 8할에 가까운 승률을 자랑했던 것과 달리 3할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승률이었습니다. 이나마도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눈부신 수하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때문에 유비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인데요. 지략가나 용맹한 인물도 아닌 유비가  어떻게 삼국지의 영웅으로 길이 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대체 유비에게는 무슨 능력이 있었던 걸까요? 자료를 모아보면 크게 2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첫째, 공감능력입니다. 

유비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뭘까요? 바로 '의리와 인간미'입니다. 그는 공감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능력이 대단했는데,  요새 말로 하면 '관계지능'이 아주 높았습니다. 영향력을 늘리고, 호감을 사며 사람들을 곁에 머무르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던 거죠.   


유비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비의 인간됨에 매료되었다고 정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정해진 기반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몸을 의탁할 때에도, 유비는 어딜 가나 이상할 정도로 환대를 받았습니다. 유비를 만난 장수들은 그를 끝까지 따랐는데, 덕분에 수시로 싸움에서 졌지만 금세 다시 군대를 모아  일어설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유비는 "사람을 잃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큰 것을 잃는 것이다." 라며 인재를 중시여겼습니다.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习近平)은 유비를 두고 “무능해 보이는 유방과 유비가 지도자로 추대될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한 인재들을 단결시켰기 때문이다.”라고 평했습니다. 이처럼  인재를 알아보고 그 능력을 최대로 발현시킬 줄 알았던 유비는 제갈량과 봉추 같은 천하의 인재를 얻으며 승리하기 시작합니다. 


둘째, 의지력입니다. 

유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싸움에 지고, 무수히 실패해도 유비는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대신 초라한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때를 기다리며 몸을 웅크립니다. 그는 오래도록 공손찬, 조조, 도겸, 유표, 여포, 원소 밑을 전전하다가 오십이 넘어서 나라를 세웁니다. 그때가 221년, 유비 나이 52살이었습니다. 

 "쓸데없는 울적함에 오래 빠져 있지 않으리라. 기다린다. 오래 참고 기다린다. 그러면 언젠가는 때가 오리라."


실패가 연속되면 보통은 자신감을 잃고 '나는 안돼'라며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반복해서 실패하면 '난 할 수 없어' 라고 자신의 능력을 제한해 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습관성 무기력'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유비는 달랐습니다.  유비는 나이 50이 넘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끝까지 달립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하고 뜻을 접을만한데도, 그는 끝끝내 다시 일어나 기회를 잡습니다.  싸움에 질 때마다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졌으나 지지 않았다." 

"실패해도 바로 시인하면, 실패한 게 아니다."  


이게 유비가 실패를 정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유비는  실패를 겪을 때마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를 더욱 다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삼국지>를 지은 '진수'는 “좌절을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유비를 평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사람들이 유비를 좋아하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요?



다시 일어날 수만 있다면


좋은 판단력을 갖추면 실수하거나 실패할 일이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그 판단력은 대체 어떻게 얻어야 하는 걸까요? 미국 카우보이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좋은 판단은 경험에서 나온다. 문제는 많은 경험들이 나쁜 판단 덕에 얻어진다는 것이다."


풍부한 경험이 있으면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사실 그 풍부한 경험들은 어리석은 판단들 덕에 쌓인다는 겁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수 많은 실패가 있고서야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넘어지지 않고는 뭔가를 배우기도, 뭔가를 이루기도 어렵죠.


우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수 많은 기술을 배우고 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스텝이 꼬일 때가 더 많은 게 우리네 인생이고 보면,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건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라, '잘 넘어지는 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3때 배웠던 낙법치기는 이후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생각났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까짓 한 두 번 넘어진다고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잖아? 담번엔 더 잘 넘어져보자." 유비 화법으로 하자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넘어진 게 아니니까요.  여러분은 '넘어져도 괜찮을' 낙법기술 하나쯤, 갖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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