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중한 재산은 사려깊고 헌신적인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친구는 중요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우정이며, 행복순위 상위 10%의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우정이 행복을 두 배로 만든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일단 마음에 든 친구는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놓치지 말라”고까지 당부합니다.
그런데 친구를 논할 때, 정작 우리가 빠트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의 관계가 우리가 접하는 모든 관계의 근본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친구로 삼아야 할 한 사람, 과연 그는 누굴까요?
먼저 ‘트레이시 맥밀란Tracy McMillan’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방송작가이자 연애코치입니다. 트레이시는 매춘부 엄마와 마약딜러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는데요. 생후 3개월부터 위탁가정에 맡겨져 9살 때까지 24개의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자라면서 그녀가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은 건 “절대 혼자가 되지 말자 Never be left”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방법으로 ‘결혼’을 택하죠. 그게 어딘가에 속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유일한 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19살에 첫 결혼을 하지만 5년 뒤 이혼합니다. 29살에 두 번째 결혼을 하지만 4년 뒤 다시 이혼합니다. 그리고 40살에 세 번째 결혼을 하는데 불행히도 1년이 채 안돼 남편이 바람피는 바람에 다시 이혼합니다.
어찌보면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엉망인 관계를 경험하며 그녀는 관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잘못된 대상과 결혼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었죠.
남자들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녀는 앞서 두 명의 남편은 정말 멋지고 좋은 남자였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 남편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것이죠. 내가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그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트레이시 맥밀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입니다.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뭔가를 배웠어요. 제가 배운 건 머리맡에 앉아 제 손을 잡고 위로해주는 법, 나를 안심시켜주는 법, 무엇보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죠.
이제 다른 사람으로부터 결혼하자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나 자신에게 들었기 때문이죠. 나와 결혼하는 건 마치 나를 산 꼭대기나 바다 저 아래로 데리고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과 같아요. ‘난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전 제가 정말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제 자신과요.”
“인생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결국 내가 나누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 많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정말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힘들 때 곁을 지켜줄 사람, 외로울 때 벗이 되어줄 사람,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봐 줄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고 그녀는 고백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법,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이 달라진거죠.
모든 관계는 ‘내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서 출발합니다. 이걸 놓쳐선 안됩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믿기 힘듭니다. 스스로를 존중할 수 없는 사람이 남을 존중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죠.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만이, 즉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자만이 남에게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친구가 된다는 건 뭘까요?
‘좋은 친구’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행복하고 인생이 잘 풀릴 때 곁에 있는 사람은 좋은 친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이 뜻대로 안 풀리고, 이혼하고, 버림받고, 실패하고, 실수할 때조차 곁에 있는 사람이 좋은 친구입니다. 또 좋은 친구는 나의 멋진 모습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결점까지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자신과 친구가 되려면 때론 무서울 정도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합니다. 원하는 직업을 갖지 못했더라도, 몸이 아프더라도, 실패했더라도, 게임을 너무 많이 하더라도, 뚱뚱하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낙담하고 좌절할 때조차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와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겁니다.
나와 좋은 친구가 될 때 비로소 타인과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자만이, 남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나답게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절대 놓쳐선 안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나를 나의 가장 큰 지지자이자 좋은 친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답다는 건 멋지고 쿨한 모습만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양면성, 나의 약한 부분, 숨기고 싶은 결점까지도 모두 포용한다는 것이고 그를 모두 받아들이고 살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그러니 나답게 잘 살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을 먼저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지지자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놓쳐온 것이자, 가장 공을 들인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를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죠.
오랫동안 저는 저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실수할 때 누구보다 가혹하게 책망하는 건 다름아닌 나였고, 잘 하다가도 곧 망할거라며 저주를 퍼붓는 것도 나였으니까요.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잘 되어가다가도 엎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살 수가 없었습니다. 수시로 올라오는 자기혐오와 깊은 우울은 저를 극단으로 몰고 갔습니다.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바꾸고 싶었죠. 하지만 어떻게?
일대 전환점을 맞은 건, 자살을 결심했던 2016년 2월의 어느날이었습니다. 더 이상은 이대로 살 수 없어서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죽기 전에 내가 그간 겪어온 이야기나 적고 죽자 싶어서 2달의 유예기간을 주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뭔가가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엉망이라고 생각했던 내 인생이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점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두 달 뒤 원고를 탈고했을 땐, 만성 우울은 오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죽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사라졌죠. 대신 이런 생각이 들어섰습니다.
‘나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내 삶은 내 기억보다 훨씬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이었구나.’
그 뒤 스스로를 극진히 대하려고 했습니다. 이상적인 친구가 '나'라는 생각으로 나를 대하기 시작했죠. 몇 년이 걸리긴 했지만 마침내 저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완벽한 인간이 된 건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결점 투성이지만, 그것도 괜찮습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제는 이해하니까요. 여전히 실망스럽고 좌절하는 순간이 있지만 그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잘 할 수 있다는 걸, 이런 것쯤은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이제 아니까요. 힘들 때 나를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을지, 어떻게 힘을 내게 하는지 이제는 압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내가 가장 힘들 때 지지하고 위로해주나요, 아니면 매서운 눈초리로 책망하나요?
오늘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The only way to have a friend is to be one.”
-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 참고
TED 동영상, “당신이 정말 결혼해야 할 사람” 2014, 트레이시 맥밀란 https://youtu.be/P3fIZuW9P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