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재발견] 제 4 초식
멕시코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조상은 옥수수신이다. 처음 옥수수신들이 지상에 내려왔을 때, 신들은 질문을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하면서 걷고, 걸으면서 질문하기로 결정했다. 걸으면서 질문하기!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어떤 질문도 행동이 함께하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
정말 오랫동안 이 질문을 잡고 있었다.
나는 지난 20대를 길 위에서 보냈다. 끊임없는 질문들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왜 결혼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그 어느 것도 내겐 당연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안 그래도 바쁜데, '반드시'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내게는 절박한 물음이었다. 그 답을 찾지 못하면, 나는 세상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개미군단의 일개 병정으로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삶이었다.
그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세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성배를 찾아다니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답을 찾아다녔다.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이 생길 때마다 해결책으로 뭔가를 벌였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흘간 무전여행을 하기도 했고, 호주 원주민 부족을 만나고 싶어 호주로 가기도 했다. 나를 새롭게 만들고 싶어, 한 달간 지리산에 들어가 단식하기도 했다. 절에 들어가 40일 동안 수행하며 지낸 적도 있다. 어릴 때부터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끼다 인도 아쉬람에 들어가 3개월 동안 지내며 온갖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다.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나만의 ‘왜’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하나 둘 발견해 갔다. 사실 나는 학교-취업-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천편일률적인 삶이 싫었다. 나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 싶었고, 여행은 내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그런 갈증을 풀어주었다. 나이 일흔에 젊은이들과 같이 배낭여행을 하던 영국 할아버지,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탐색 과정으로 배낭여행을 택한 네덜란드 아이, 스물네 살에 귀농학교 원예선생으로 활동하던 여성, 고위공무원에서 일반 요리사로 전업한 터키 아저씨, 백발이성 성한데도 캠핑카를 몰며 호주를 여행하던 할머니까지! 내가 만난 다양한 삶은 “사회 관습에 따라가지 말고,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가라.”고 일깨워주었다. 나는 생긴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곳을 어떻게 오를 것인가? 똑같이 목표지점을 정했더라도 사람마다 오르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무엇이 적합한 것인가? 당신이 편안함을 느끼고, 하면서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방식이다.
2008년 개봉한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는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주인공인 팬더 '포'는 평화의 계곡에서 아버지의 국수가게를 돕고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쿵푸마스터'에 있다. 어느 날 포는 위대한 쿵푸 마스터가 되어 무적의 5인방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의 포는 과한 식욕과 넘치는 뱃살 뿐. 비대한 뱃살로 서면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고 둥글둥글한 몸에 근육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다. 그가 잘하는 것이라곤 먹는 일과 국수 만드는 것뿐. 하지만 포는 기이한 우연으로 용의 비법서의 후계자가 된다. 포는 쿵푸마스터가 되기 위해 과정에 입문하지만, 누구도 그가 쿵푸마스터가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부인 '시푸'도, 오랫동안 수련해온 무적의 5인방 중 누구도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그렇기는커녕, 모두들 비웃을 뿐이다. 천덕꾸러기가 된 속에서, 주위의 냉대를 받으면서 포가 견디는 것은 '쿵푸'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꿈꿔왔던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앞날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포가 가진 것은 쿵푸에 대한 열망뿐이다. 엄청난 좌절과 실패 속에서 그는 마침내 자신에게 적절한 방법을 찾아낸다. 포가 먹는 것에 환장한다는 것을 알아낸 사부 '시푸'는 먹는 것을 이용해 그를 수련시킨다. 자신이 편안하고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수련에 돌입한 포는 아주 놀라운 속도로 쿵푸를 익힌다. 끝내주는 낙천성을 더해 자기만의 쿵푸 스타일을 완성한 포는 용 문서를 얻고, 희대의 강자 '타이렁'을 물리쳐 마을을 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쿵푸의 달인'이 된다.
산을 오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계곡으로 갈 것인지, 날아갈 것인지, 걸어갈 것인지, 계곡으로 갈 것인지... 등등 자신이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 경우, 나는 행동하고 질문하는 걸 동시에 했다. 질문이 생기면, 질문과 관련된 키워드로 갖가지 책을 섭렵해갔다. 예를 들어 나의 소극적인 성격에 문제를 느낀다면, 소심&소극 관련된 성격심리학 책과 인간관계책, 그리고 대담함을 필요로 하는 세계여행 책 등을 읽으며 관찰하고 배워갔다. 이런 식으로 느끼고 행동하는구나.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과 책에서 본 인상 깊은 구절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메모해갔다. 그 가운데 내가 해 볼만한 것들은 해보았다. 먼저 밝게 인사하다든지, 수업시간에 질문을 더 열심히 한다든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들을 쓰면서 다시 정리해갔다.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야 해. 성공해야지. 대기업 들어가면 팔자 피는 거야. 공무원이 최고지. 좋은 남편 만나면 인생 성공한 거야… 이런 답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별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세상에 성공에 대한 법칙은 넘쳐났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조언하는 사람도 넘쳐났지만, 나와 맞지 않는 방법론을 따를 땐 언제나 몸이 먼저 아파왔다. 내게 맞지 않는 것들도 하나씩 걸러내 갔다. 내 방식을 하나씩 찾아갈 때면, 마치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나는 답을 찾아온 세상을 헤매고, 온갖 사람들을 만났다. 찾고 찾다 보면 짜잔, 하고 정답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건,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였다.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 그 말은 곧 내 삶을 통해 어떤 답이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자신의 ‘답’을 주려는 이들이 참 많았다.
2002년 도보여행 때 일이다. 나는 오른쪽 왼쪽도 헷갈리는 굉장한 방향감각 덕분에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길을 잃었다. 덕분에 거의 100미터 마다 길을 물어봐야 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그들의 반응이 재밌었다. 열에 일곱은 내가 어디로 간다고 하면, 손부터 내저었다.
“걸어서 가려고? 에이 안 돼, 너무 멀어. 걸어선 절대 못 간다고. 그냥 택시 타.”
처음에는 그렇게 먼가? 택시 타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그냥 가봤더니, 아무리 멀다 해도 대개는 한~두 시간이면 도착하더라고, 싱겁게도. 아마 내게 걸어서 못 간다고 했던 사람들은 거기까지 걸어가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그걸 몇 번 겪고 나니, 사람들이 만류해도 “아, 예 예” 하면서 그냥 내 갈길 갔다.
호주에서 1년 정도 살아 보겠다,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간다고 하자, 몇몇은 부러워했고 몇몇은 "위험해, 미친 짓이야"라며 말리기부터 했다. 정말 그렇게 위험할까 했는데, 정작 말린 사람을 보니 외국에 나가 본 경험도 없었다. 이후 중국을 갈 때도, 인도를 갈 때도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걱정하고 말렸다. 역시 한 번도 그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때 알았다. ‘아, 안 해본 사람들이 주로 반대하는구나.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안될 거라고 하는 거구나.’ 내가 다른 사람의 말에 답에, 그들의 한계에 매일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계여행을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전 세계 30개국에 2천 개의 지사를 가진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을까.' 똑같이 목표지점을 정했더라도 사람마다 가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다양한 방법과 방식이 나올 수 있다.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명의 답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왜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 질문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게 필요하다" 던 류시화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 그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바로 나였다. 그 답을 찾아 헤매던 그 여정 자체가, 내 길이 되었다.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 걸어가면서 나는 느끼게 되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