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결심하고 생긴 일
'라이터스 블록 (Writer’s block)'이란 게 있습니다. 글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작가뿐만 아니라, 화가, 음악가, 연구자 등에도 일어납니다. 분명 능력은 있지만, 아무리 해도 작품이나 연구가 진척되지 않습니다. 이런 고통이 너무 커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재영 한동대 석좌교수도 그런 일을 겪었다고 고백합니다. 3년간 강의만 하다 연구를 재개했는데,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았답니다. 이 교수는 좌절감이 너무 큰 나머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3일 동안 틀어박혀,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밤낮으로 자기 삶의 궤적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남겨질 가족들이 이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줄도 써지지 않던 글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3일 동안 그렇게 쓰고 탈진해 버린 이 교수는 무작정 밖을 나갔습니다. 근처 재래시장을 갔다가, 깻잎을 파는 할머니를 보게 되죠. 할머니의 주름살을 보며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아, 위대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위대한 것이구나!”
그는 자살을 미루고, 스스로에게 1년의 유예기간을 주기로 합니다. 놀랍게도 이때부터 연구가 거침없이 진행되어 갔습니다. 이 교수는 ‘자신이 3일간 적었던 행위’가 자기 안의 천재성을 끄집어냈다고 확신합니다.
이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게, 저도 매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제 이야기를 써서 책으로 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다되도록 책은커녕 제대로 된 글 한 줄 쓰기도 어려웠죠. 노력을 안 한 게 아니었습니다. 매일같이 글을 써보려고 별짓을 다했습니다. 모닝페이지도 몇 년간 써보고, 단식하면서 글도 써보고, 절에 들어가 쓰기도 하고, 새벽에도 쓰고, 필사도 하고, 다른 사람 글을 모방해 쓰기도 하면서, 수 백편의 글을 썼지만 어느 글도 제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가슴팍에 팍, 하고 꽂히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모든 글이 다 죽어서 나오더군요. 너무 괴로웠습니다.
원인은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잘 해내야겠다. 멋지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거든요. 그게 제 안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죠. 원인은 알았으되, 해결방법이 없었습니다. 수년간 온갖 방법을 다 써도 해결하지 못한 채 점점 좌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해결이 됐습니다. 이재영 교수와 똑같은 방법으로 말이죠.
당시 우울감이 극심했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이젠 정말 죽어야겠다 굳게 결심합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내가 지금 죽으면 뭐가 젤 후회될까?’ 아무래도 내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더군요. 특히 세계를 여행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수집해 온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너무 많았는데 혼자만 간직하는 게 너무 아깝더군요. '그래, 그 이야기를 다 쓰면 죽자'라고 마음먹고, 스스로에게 4개월의 유예기간을 줬습니다. 2달 동안 글 쓰고, 2달 동안 출판하자. 이런 계산이었죠. 그 계획이 실현 가능할 거라고는 1도 따져보지 않았어요. 그냥 실행했습니다. 계획을 세운 그날부터 매일같이 한 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죠.
참 신기했던 게 어떻게 해도 안 써지던 글이, 죽어야겠다고 마음먹자, 날개 돋친 듯 훌훌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펄펄 날아다니는 겁니다. 글자가 너무도 생생히 힘차게 날아다니면서 제 가슴팍에도 팍팍, 하고 꽃혀 들어왔습니다. 그게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충만해졌어요. 내가 세상의 왕이 된 것처럼 몹시 우쭐해졌습니다. 정말이지, 이 지구를 통째 준다고 해도 바꾸지 싶지 않을 만큼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간 글을 썼는데요. 놀랍게도 두 달 뒤, 우울감은 종적을 감췄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았죠. 그리고 그 글들은 정말로 2달 만에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완벽이란 놈에 발목 잡혀 한 걸음도 못 나갈 때> 타이틀로 말이죠)
이후 강의를 시작했고, 계속해서 글도 쓰게 됐습니다. 작가로, 강사로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죽을 각오를 하고 썼던 필사必死의 글이, 오히려 나를 되살리는 필생必生의 글이 됐던 겁니다. 내 안의 글을 쓸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글의 힘을 진심으로 믿게 됐습니다.
이재영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천재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우리 손으로 끄집어내야 하죠.”
저 역시 매우 동감합니다. 저는 그를 이렇게도 말합니다.
"내 안에 뭐가 이는지 직접 표현해 봐야 알 수 있다."라고.
글쓰기의 힘을 경험한 이후, 사람들을 만나면 '글을 써보라'고 자꾸 권하게 됐습니다. 특히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시는 분들, 변화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더욱 열성으로 권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보시라'고요. 그런데 들을 땐 다들 쓸 것처럼 하다가도, 돌아서면 아무도 쓰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관심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쓰지 못한 나름의 고충들이 다 있으시더군요. (그 고충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실은 글쓰기 강의를 시작했고, 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죠.)
경험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글을 쓸 때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데 대개는 좋지 않은 생각들입니다. '내 까짓게 쓸게 있나'부터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비웃으면 어쩌지, 내 글이 별로라고 하면 어쩌지', '이게 과연 읽을 가치가 있나', '내가 과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갖가지 생각이 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엄습하면 두려움과 걱정, 불안 등등 다양한 감정이 뒤따릅니다. 그런데도 용기 내어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잡다한 생각들, 두려움으로 꽉 막혀 있을 때, 이를 뚫고 가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그 방법을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