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스스로 그은 경계들
스스로 그은 경계들
문득, 사방에 경계가 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난 여기 까지라며,
스스로 그어 놓은 것들이다.
2-2. 스스로 그은 경계들
새로운 일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을 모아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다. 하지만 그냥 여행과는 많이 다르다. 중간중간에 여러 산업 시설을 방문하여 그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우수 업체 탐방 해외 연수'라는 이름을 붙인 이 특별한 여행 패키지가 연간 수백 억 원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고객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공무원까지 매우 다양한데, 우수 사원이나 장기근속 사원 표창장과 함께 '일본 산업 연수 패키지'를 부상으로 주는 기업이나 단체가 당시만 해도 꽤 많았다.
연수단을 이끌고 현지에 다녀올 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참가자들의 티켓팅부터 현지 숙박, 산업 현장 방문부터 실습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준비하고 진행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손 가는 게 참 많은 일이다. 그중 실수가 용납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인원 파악이었다.
어느 날 인천 공항에서 출발 인원을 파악하던 때였다. 정원 20여 명 중 한 회사에서 오기로 한 세 명이 나타나질 않는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니 곧 도착한다고는 하지만, 일찌감치 나와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의 불만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온다. 잠시 후, 드디어 세 사람이 저기서부터 걸어오는데, 그중 한 분의 표정이 좋지 않다. 너무 늦지 않게 온 건 다행이지만, 혹시 어디가 아프신 건가 해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봤다.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못 피우는 게 싫어서 한 분이 오다가 포기하려는 걸 억지로 데리고 왔단다.
30년 근속 표창으로 연수를 떠나시는 최 계장님 이셨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현장에서 평생을 일하신 분이 처음 떠나는 해외 연수인데, 1시간 20분 담배 못 피우는걸 못 참아 포기하려 했단다. 같이 출발하는 동료 직원들이 가까스로 설득해서 데리고 오긴 했지만, 막상 우리를 보더니 또 한 번 몸을 사리신다.
"난 담배 때문에 외국을 나가본 적이 없어. 아무래도 난 못 갈 것 같아."
이 분은 같은 문제로 그동안의 모든 해외여행 기회를 놓치며 살아오셨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서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되기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해외 나가시는 게 처음이시라면서요.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요. 비행기 타셔서 잠깐 눈만 붙이셔도 금방 도착할 거예요."
계장님을 향한 짧은 설득이 통한 건지, 먼저 와서 기다리던 다른 일행들의 싸늘한 시선이 부담되었는지 어물어물거리더니 우리를 따라나선다. 결국 비행기를 무사히 타긴 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이분에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틈틈이 괜찮으시냐고 여쭤보는데 생각보다 비행기 안에서는 잘 참으시는 듯했다. 무사히 나고야 공항에 도착한 후, 내리자마자 흡연실부터 안내해 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일행들이 자기 때문에 지체되는 게 싫다며, 쑥스러운 듯이 자기는 신경 쓰지 말란다. 그렇게 일정은 시작되었고, 그 후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게 모든 일정을 잘 따라다니며 지냈다.
이 여행의 특징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어색하게 시작하지만 일주일간 똑같이 먹고 자고 체험하고 실습하다 보면 다들 꽤 친해진다는 거다. 함께 일본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기며 료칸(旅館:일본식 전통 숙박시설)을 잡아 근사하게 식사하던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분의 담배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분이 물었다.
"아니 계장님, 가만 보니 담배 잘 참으시던데 처음에 오실 때 왜 그러셨어요."
그러자 계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그동안 이게 뭐라고 해외여행 한번 못 가고 살았나 몰라."
한바탕 요란스러운 이야기와 웃음이 이어진다.
일주일간의 짧은 여행기간 동안, 눈 꼭 감고 자기가 60 평생 그어온 경계를 넘으신 최 계장님은, 이제 앞으로 전 세계 어디로든 갈 수도 있다는 마음의 프리패스를 얻은 채 집으로 돌아가셨다.
해보면 별거 아닌데, 해보지 않아 평생을 하지 못하는 어떤 것.
계장님의 이 작은 에피소드는 그 후로도 이어지는 생각의 단초를 제공했다.
난 여기까지야 라고 경계를 긋는 것, 좀 더 생각해 보니, 이런 경계를 만드는 이유는 분명했다. 경계를 그어 버리고 그 안에만 머물기로 하면, 혹시 올지도 모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는 거다.
그게 무엇이든, 해봐야 해낼 수 있다.
경계 안에서 두려움을 회피한 대가는,
선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못하는 초라한 자신이다.
3개월이 지났을 때다.
교수에게는 여전히 답이 없다. 이쯤 되니, 등록금만 내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가서 이번엔 한바탕 싸우기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두고 지금 하는 이 일을 계속하면서 그냥 살까? 갈등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으로 부터 또다시 국제 우편 메일이 왔다. 봉투에 내가 아는 회사 이름이 쓰여있다. 전에 일본에서 연구할 때, 연구비를 지원하고 싶다고 내게 이메일을 보냈던 회사다. 연구비 이야기를 내게 할 건 아닌 듯하여 받은 그대로 조교와 교수에게 포워딩해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한참 후 이렇게 업체 대표가 직접, 그것도 일본도 아닌 한국의 우리 집으로 무엇을 보내다니, 내용을 무척이나 궁금해하며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계약서처럼 생긴 서류에 편지 한 통이 있었다. 내가 메일을 포워딩 한 이후 연구실 측과 연구비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고, 연구실에 상당액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단다. 연구비 지원을 하는 이유는 연구 결과물의 소유권을 자기네 회사와 공유하길 원하기 때문인데, 자기네들이 원하는 연구가 바로 원격 의료 시스템과 치매노인 관리 시스템이라고 했다. 두 가지 다 실질적으로 개발하고 유지 보수하고 있는 내가 연구의 지속적인 개발을 해 줄 것과, 결과물의 소유권 이전에 동의해 주는 절차를 넣기를 원한다며, 동봉된 동의서에 사인을 해 달라는 내용이다.
어차피 대학원생 신분인 내가 아무리 좋은 무언가를 만들었어도 연구물의 소유권은 연구실에 있다. 따라서 교수의 사인만 받아도 법적인 문제는 없었을 텐데, 나에게까지 이렇게 동의서를 보낸 것을 보니 지금 이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예산이 집행되는 사안인 만큼 꼼꼼히 일을 처리하는 일본 기업의 치밀함도 엿보였고, 시스템의 주 개발자인 나의 공로를 인정받는 듯하여 살짝 기쁘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거다.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이리 힘들게 공부하게 될 줄 몰랐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가족들 볼 면목이 없었다. 내가 이것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끝까지 이 공부를 마칠 수 있을까?
최 계장님과의 일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이맘때 딱 맞추어 날아온 이 편지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 동의서에 사인하지 않고 그쯤에서 공부를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내 머릿속을 맴돌던 한 가지 만을 생각했다.
해보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내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 그때까지 모아 온 새 학기 등록금도 친구를 통해 학교에 보내어 학기를 연장했다.
얼마 후 관련자들이 모두 도장을 찍은 소장본이 도착했다. "1. 조태호의 연구에 소요되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지원하고 논문 발표 및 학회 발표에 소요되는 모든 제작비와 교통비를 지원한다"라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이 동의서 원본을 아직도 나는 가지고 있다.
이 동의서가 훗날 내가 학교로 돌아가는 데 있어서 뜻하지 않은 역할을 하게 될 줄, 그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