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태호 Feb 22. 2019

내가 있어야 할 자리

2-1. 기다림

햇살이 눈가를 두드려 실눈이 뜨였다. 주차장 너머로 사람들이 오가는 게 보인다. 차 안 공기가 숨이 막혀 창문을 조금 열었다. 시간을 보니 이미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다.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잡아 보는데,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 도저히 갈 수가 없겠다. 어제 고객과 있었던 일, 길에서 잠이 들어 위험할 뻔했던 상황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전화로 병가를 내고 집으로 차를 몰고 와 잠을 청했다. 그다음 날까지 내리 잠을 자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회사에 나가 부장님께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아무래도 일이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장님은 2천만 원 가격을 내린 새 MRI 계약서를 내민다.


원하는 가격을 맞춘 계약서를 들고 고객을 찾았다. 표정이 환해진다. "그동안 진심이 아니었던 거 알지?"라고 들릴 듯 말 듯 흘리며 여기저기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본다. 회사로 돌아가 완료된 계약서와 함께, 사표를 제출했다.  





아이는 점점 커가는데 나는 또 백수가 되었다. 이제 뭘 하지? 그때 우리는 지낼 곳도 없어 처갓집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처갓집에 일본에서 온 국제 메일이 꽂혀 있는 걸 발견한 건 그리 지내던 즈음이다. 와카츠키 교수의 조교가 보낸 건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이 학교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자퇴를 하기 바란다 - 와카츠키"


그리고 자퇴서 양식이 첨부되어 있었다.



일본으로 돌아가 죽기 살기로 부딪혀 보기로 결심한 건 바로 이때다.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을 모아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2-1. 기다림


일본은 학기가 4월, 10월에 시작한다. 4월 학기 휴학에 이어 10월에 재차 휴학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신 '자결'하라는 명령서처럼 자퇴서 양식이 날아오는 바람에 놀라서 날아온 길이다. 우선 학교 사무실에 찾아가 등록금부터 내고 나니 벌써부터 남은 돈이 별로 없다. 어쨌든 발걸음을 오랜만에 연구실로 향했다. 


몇 달 동안 못 나간 연구실을 다시 찾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조심스레 문을 여니 선배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자살 명령을 어기고 돌아온 패잔병을 대하는 서늘함 같은 게 날 훑고 지나간다.


쭈뼛거리며 가방을 끌고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하지만 이내 멈칫하고 서버렸다. 누군가 내 자리를 쓰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어물쩡 거리다 연구실 가운데 있는 큰 책상에 일단 가방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조교가 들어오더니 가방을 다 가지고 따라 오란다. 이것저것 싸들고 온 터라 짐이 꽤 컸다. 주섬 주섬 들고 따라나서는데 복도에 멈추어 서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교수님의 허락이 없이는 더 이상 연구실에 들어올 수 없어요."


"네?"


"교수님이 당신이 혹시 오거든 전하라 하신 것을 그대로 전합니다. '나는 지난 4월 말에 있었던 학회에 당신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근거로, 당신이 더 이상 학업에 열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에 당신을 지도하지 않기로 했다.' 이상이에요. 우편으로도 통보했지만 교수님은 이미 당신께 자퇴 권고를 했어요. 자퇴원을 학과 사무실에 제출하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무미건조한 톤으로 전하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매번 적응이 안된다. 4월 학회에 참석을 안 했으므로 자퇴하라니. 교수 본인이 장학금을 끊는 바람에 4월부터 생활비가 없어졌고,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한 채 한국으로 향해야 했던 상황 아닌가. 무슨 이유를 갖다 붙였든, 복학이 쉽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조교는 이 말을 하고 자기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무심하게 연구실로 향한다. 조교를 붙잡고 교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학회 출장 중이란다. 언제 돌아오는 지를 물으니 학회 이름을 툭 던지듯 알려주고 가버린다. 


일단 도서관으로 향했다. 교수가 갔다는 학회 일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다음 주 월요일이면 돌아올 것 같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에만 집중했다. 고심 끝에, 교수가 좋아할 만한 새로운 '연구 계획서'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수는 학구적 자부심이 강해서, 지식을 나누어 주는 입장에 서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낙후된 곳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원격 의료 상담 시스템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도쿄-오키나와'간의 원격 의료 상담 시스템 기획안을 마침 내가 만들었으니, 이를 업데이트해서 '도쿄-서울'간의  국제 원격 의료 상담 시스템 기획안을 만들어 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자료를 하나씩 모으고 추리기 시작했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디서 자야 할지 정해야 했다. 서둘러 검색해 보니 도쿄의 저렴한 비즈니스호텔도 5,000엔 이상을 주어야 하고, 캡슐하우스도 3,500엔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일정이다 보니 남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더 싼 숙박을 애타게 검색하다가, 킨시쵸(錦糸町) 역 부근에 있는 한 목욕탕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1인당 400엔, 밤샐 경우 300엔 추가라고 쓰여있었다. 하루 700엔에 잘 수 있다니. 여기로 정했다.


목욕탕은 생각했던 것보다 멀었다. 늦은 시간, 입구에 도착해 입장권을 받아 들고 남탕이라고 쓰여 있는 출입구를 열었다. 


. 그런데, 역한 쉰 내가 훅하고 코를 찌른다. 안으로 들어가니 낡고 벗겨진 수납장에 칸칸이 쑤셔 넣어져 있는 더러운 옷가지들이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곳이란 느낌이 왔다. 하지만 이제 다른 곳을 찾을 수도 없다. 수납장이 작아 짐 넣기를 포기하고 짐을 다 든 채 안쪽으로 향했다. 탕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는데 목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잠자는 곳이라고 쓰여 있는 방의 커튼을 열고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서니 등을 젖힐 수 있는 긴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다. 사람들이 그곳에 다 있었다. 몇몇이 실눈을 뜨고 나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곳이 노숙자들, 막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의자 옆에 짐을 내려놓고 등을 붙이니 잠시나마 피로가 풀린다. 하지만 건너편에 누워있던 사람이 이유 없이 내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신경이 쓰였다. 일어서면 누군가 짐을 가져갈 것 같은 생각에 화장실도 가지 못하겠다. 가방들을 최대한 내쪽으로 끌어 모아 가방 끈을 팔에 걸고, 여행가방을 다리에 닿게 해 놓으니 잠이 좀 온다. 그렇게 선잠을 청하며 밤을 지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놀라 눈을 떴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자고 있던 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몇몇이 나누던 대화를 통해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이들은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는 길이었다. 그제야 이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가 올 때까지 낮에는 도서관에서 기획안을 준비하고, 밤에는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 수 있는 약간의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며 연구 기획안을 완성했다. 드디어 교수가 오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교수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도 없다. 아직 출근 전인가 해서 문 앞에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전 내내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연구실에 가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교수 허락 없이 다시는 연구실에 들어오지 말라던 조교의 말이 여전히 싸늘하게 남아 있다. 혹시나 해서 대학원 사무실을 찾아가 교수의 일정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다. 누군가 오후에 외부 특강 스케줄이 잡혀 있는 걸 보니 오늘은 학교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특강이 있는 학교 주소와 시간을 부탁해서 받았다. 인근의 전문학교였다. 


서둘러 출발했다. 늦지 않게 도착하긴 했는데,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며 입구에서 막는다. 할 수 없이 교문 앞에 서서 교수를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니, 저 멀리서 교수가 걸어오는 게 보인다.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나를 못 보고 걸어오다가 내가 인사를 하자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만난 교수도 적잖이 당황해 보였다. 시간이 없기에 본론을 바로 이야기했다. 


"교수님, 제가 연구 기획안을 만들었는데.."


"지금 수업을 해야 하니 비켜요"


"아, 네 교수님, 여기서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알았으니 비켜요"


내가 특별히 길을 가로막은 것도 아닌데 자꾸 비키라면서 내 옆을 휙 지나간다. 아무튼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교수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3시간이 넘도록 나오지를 않는다. 동네 주민들이 슬쩍슬쩍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지나가는 사람인양 교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학교 관계자인 듯 한 사람이 다가온다. 나보고 뭐하냐고 묻는다. 오늘 특강 진행한 교수님을 기다린다고 했더니, 그 특강 한참 전에 끝났고 교수는 뒷문으로 나갔다고 알려 준다. 


나를 보지 않겠다는 교수의 의중이야 예상했던 거다. 교수가 보기 싫어한다고 해서 그만둘 것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학교로 찾아갈까 했는데 날이 너무 늦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목욕탕에서 하루를 더 자고, 아침 일찍부터 교수실을 찾아 문 앞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교수가 나타난다. 나를 보더니 얼굴에 못마땅한 빛이 가득하다. 일본 사람들이 하듯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연구 계획서를 만들었으니 이것만 한 번 봐 달라고 부탁했다. 복도에 나를 세워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여전히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마지막 말은 확실히 알아 들었다. 


"... 그래서 뭘 할 건데?"


"국제 원격 의료 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정리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떤 기능을 추가할 것인지, 이를 통해 어떠한 것들이 기대되는지를, 미리 준비한 기획안을 넘기며 빠짐없이 설명했다. 교수실로 들어가면서 말한다. 


"조교한테 두고 가" 


검토해 보겠다는 의미 같다. 일단은 됐다. 그 길로 조교에게 가서 내가 만든 자료와 보충 자료들을 제출했다. 

놀랍게도 그날 오후 바로 조교에게 답신이 왔다. 


'한국으로 돌아가 도쿄-서울 간의 원격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 테스트할 것. 원격 의료 시스템이 완성되면, 연구실이 원할 때 언제든 접속 가능하게끔 대기할 것.'


이렇게 쓰여있었다. 아무튼 일단 복학이 가능하다는 뜻일 테다. 자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더 이상 체재할 비용도 없었기에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가슴에 응어리진 것들은 다 끝나고 나면 풀기로 마음먹은 채 남은 돈을 모아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계획서에 써진 그대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플래시 커뮤니케이션 서버를 이용해 공유 자료를 양방향에서 에디트 할 수 있게끔 했다. 얼마 전에 나온 최신 기능이다. 기타 자잘한 버그를 잡았다. 몇 주 후, 시스템을 양국에서 테스트하는 날이 되었다. 화상 채팅 너머로 선배들과 교수가 보였다. 전에 오키나와에서 했던 것 그대로 재현하고, 새로 업데이트한 공유 기능을 동원해 세미나를 진행했다. 수고했다며 다들 좋은 평가를 해 준다. 잠시나마 뿌듯했던 순간이다. 늘 하던 대로 소스파일을 잘 정리해 연구실 서버에 올려 두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이후 교수든 조교든 내게 아무런 연락이 없다. 연구실이 원할 때 언제든 접속 가능하게끔 대기하라고 해 놓고서는 시스템을 시연하라는 이야기도, 세미나를 하라는 요청도 없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며 기다릴 수는 없기에 연구실 주간 스케줄에 맞추어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 나갔다. 한 주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보내고 저널 스터디 일정에 맞추어 논문을 정리해서 보냈다. 전에 했던 치매 노인 증강 현실 시스템도 뜯어고치기 시작해서 훨씬 더 세부적인 움직임이 인식되게끔 업그레이드시켰다. 이를 보고해도 여전히 교수로부터의 답장은 없다.


다음 학기 등록금도 준비해야 하고 집안 가계에 도움도 주어야 했던 나는 한편으로 다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구인 사이트의 광고 하나하나를 세심히 찾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광고를 보게 된다. 여의도에 소재한 국내 대형 컨설팅 업체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통역 및 벤치마킹 투어 가이드를 맡아줄 사람을 뽑는다는 광고다. 아, 이거라면 내가 일본을 정기적으로 오갈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교수를 찾아가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원서를 냈는데, 다음날 바로 연락이 오더니,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일주일 만에 채용이 되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맡은 일은, 일본의 공장이나 회사를 견학하려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이끌고 약 일주일 간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이야기를 듣고, 동행하는 것이다. 훗날, 놀라운 소식과 함께 다시 학교로 복귀할 때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일을 계속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답신 없는 리포트를 교수에게 쉬지 않고 보내며 학업을 이어가게 된다. 


뜻하지 않게 시작한 '일본 벤치마킹 투어' 가이드의 일, 그런데 이것이 평생 기억될 여러 만남을 선사해 줄 줄은 정말 몰랐다. 


스타트업 기업인, 최고 경영자, 노동자, 취업 준비생, 정치인에서, 공무원들까지...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 유쾌한 사람들, 슬픔을 품고 사는 사람들, 화를 못 참는 사람들,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 


사람들은 특별한 여행지에서 만난, 그리고 돌아가면 바로 헤어질 사람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비교적 쉽게 털어놓는다. 이 일을 하며 내가 함께 먹고, 자고,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의 숫자가 도합, 1,000명이 넘는다. 내가 이 일을 안 했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싶은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 먹고자며 어울리던 이 시간은, 단순히 공부와 병행하는 아르바이트의 수준을 넘어, 수많은 이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듣게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삶의 선택권을 되찾고 내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한 여정 중에 반드시 만났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은 날 돌아볼 수 있었고, 나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며,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던 시간. 


지금 돌아보니 연구실엔 내 책상이 없었지만,

내가 정말로 있어야 할 자리가 

준비된 내게 스스로 찾아왔다. 



이전 06화 이 이야기가 소망을 줄 수 있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