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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에필로그

결국 나에게 가족은 회귀였다

‘가족’이라는 건 꽤나 복잡하다.

 

처음에는 특별한 것 없는 보통의 4인 가족이었다.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내가 12살이 되는 해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한 후에는 잠시 단촐한 세 식구가 되었고, 이후 엄마의 재혼으로 복작스러운 여섯 식구가 된 우리 가정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때로, 아니 사실 많은 순간, 나에게 ‘가족’은 가장 벗어나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가장 편해야 할 곳에서 가장 마음이 불안했다. 가정 안에서 나는 늘 긴장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내 마음이 어려울수록 ‘가족’의 중심은 잘 잡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꽤나 절망적이었고 어린시절의 나는 ‘나’의 어려움보다 ‘가족’의 어려움이 더 무서웠다. 내 마음이 흔들리는데서 오는 불안감보다 가족이 흔들리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의 어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것은 대수롭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가정 안에서 어렵게 중심을 잡아나갔다.

나는 내가 괜찮은 줄만 알았다. 여러 어려움들도 있었지만 참 대견하게도 큰 문제없이 잘 자랐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재혼과 또 한 번의 이혼, 엄마의 유방암,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차상위계층이라는 나의 경제적 신분.

 

이 모든 게 대단히 유별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지극히 평범한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싶었나보다. 평범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럼에도 괜찮고 싶다는 바람에 나는 나에게 벌어졌던 일련의 평범치 않은 일들을 과하게 평범하게 여기려 했다.

어쩌면 그게 나의 가장 큰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나는 자기 연민을 극도로 경계한다. 남들이 보기엔 불행해 보이는 상황속에서도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었고 무엇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웃고 싶었고 많이 웃기도 했다.

 

조금은 평범치 않은 나의 가정사로 인해 괜한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았고, 더 큰 폭의 이해를 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벌어진 이 일련의 일들을 생각보다 더 과하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문제였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유난을 떨 정도로 힘든 일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별 일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너무 가볍게 별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했고 그 생각을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별 일이긴 했다는 것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별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며 나를 계속 질질 끌고 가지는 않았어야 했다.

 

사실 좀 별 일이기는 했다고, 별 일이었는데, 분명 조금 힘든 시간들이 나를 지나갔는데, 잘 이겨내왔다고 그래서 참 고맙다고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어야 했다. 나를 더 일찍 돌봐주었어야 했다.

 

엄마가 자신의 삶에서 이혼, 재혼, 그리고 또 한 번의 이혼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엄마의 삶에 속해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나 역시 어떤 영향들을 받아왔을 텐데 나는그 시간들이 내게 남겼을 흔적들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잘못된 노력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만나 아이들과 함께 조금은 느린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제야 나의 지난 시간들이 내게 남긴 흔적들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게 참 복잡하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다시 가족 안에서 치유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가족’은 나의 태어남을 가장 처음으로 목격한 집단이고, 나의 성장과정을 가장 가까운 데서 지켜봐 온 집단이지만 어쩌면 나를 가장 잘 모르는집단이기도 하다.

 

우리 집안은 유독 가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서로에 대한 무심함으로 그 흔한 명절 스트레스를 주는 친척들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유독 강하다. 

네 자매인 엄마와 이모들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사정들을 잘 알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살뜰히 챙긴다.

 

하지만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때론 ‘가족’의 이런 끈끈함이, 이모들의 애정이 따뜻하고 많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적도 많았다.

 

누구보다도 가족에게서 벗어나 혼자만의 생활을 하고 싶었던 나였는데, 이런 내가 ‘가족’이라는 집단에서 찬이와 욱이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큰 위로를 받았고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커질수록 이모들이 어린시절 나에게 주었던 사랑의 기억들이 조금씩 다시 되살아났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아이들과만 함께 한 시간은 아니었다. 내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나의 어른들과도 함께 한 시간이기도 했다. 어린시절의 기억에 멈춰 있던 이모들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며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한 시간이었고, 존재만으로도 나에겐 늘 큰 힘이 되어 주시는 이모부에게는 더 큰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는 ‘할머니의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며 먹먹함과 죄송함을 느껴보기도 한 시간이었다.

 

결국 나에게 가족은 회귀였던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저 어른을 흉내 낼 뿐이었던, 애어른에 지나지 않았던 내가 이제야 정말로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갈 수 있었다.

 

별 일이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왔던 내 아픈 시간들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던, 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시간의 시작과 끝에 찬이와 욱이가 있다.

 

‘어른이의 돌봄일기’라는 이름으로 기록해온 지난 1년여 간의 시간은 나의 소중한 어린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담은 스물다섯의 내가 남기는 현재의 편지이며, 동시에 긴 시간이 지나 언젠가 이 아이들에게도 어른이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이 아이들이 나에게 편히 기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쓰는 미래의 그 어느 시간을 위한 타임캡슐 편지이다.

 

가족으로 인한 힘겨움 때문에 시작된 이 글이 가족에 대한 고마움 덕분에 마무리될 수있었다.

 

머리만 복잡하게 가득 차 있었지 가슴은 텅 비어 있었던 나였다. 그저 무거운 줄로만 알았지 어떤 것이 나를 진짜 무겁게 하는 줄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만나고 이 아이들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 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머리는 무거운데 가슴은 텅 비어 있어서

그 무게의 차이 때문에 버거웠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 덕분에 머리에 가득 차 있었던 복잡함은 조금 덜어낼 수 있게 되었고, 텅 비어 있던 가슴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어차피 살아가는 것이 아픈 일 투성이라면, 누군가로 인해 머리 아플 일보다 가슴이 아플 일이 더 많은 시간들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 머리가 아팠던 것은 무언가를 너무나 잊고 싶은데 잊혀 지지가 않아서 였지만, 마음이 아팠던 것은 무언가를 잊지 못해서, 잊고 싶지 않아서 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플 거라면 무언가를 잊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잊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아프고 싶다.

 

그렇게 앞으로는 잊고 싶은 것 보다 잊고 싶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시간들을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많이 가슴에 담아가며 살아가고 싶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로 상처를 받더라도.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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