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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구김살, 해맑지 않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구김살 있이 컸기에 오히려 더 반듯해질 수 있었다

찬이와 욱이는 구겨진 곳 하나 없이 참 해맑다. 아이들의 구김살 없는 모습이 주는 밝고 맑은 에너지가 있다. 구김살 없이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많은 순간 기쁨이 되어준다.


그래서 “얘는 참 구김살이 없어”라는 말은 오랫동안 칭찬처럼 사용되어 왔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해맑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좋은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이가 되지 못했었다.


구김살 없이 해맑은 찬이, 욱이와 달리 나는 꽤 구김살 있이 컸다.


많은 아쉬움과 답답함을 남기고 간 2020년의 여름.유난히 답답한 여름이었고 유난히 모두가 구겨진듯 접혀 있었던 여름이었다. 그 누구도 저마다의 더운 숨을 마스크 바깥으로 제대로 내보내지 못한 채, 그 더운 숨을 다시 들이마시며 자기 몫의 더운 숨을 그저 감내해가며 보낸 여름이었다.


돌봄 교실에서 돌아온 욱이는 오늘 돌봄 교실에서 만들었다는 종이부채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 부채는 어린 시절 나도 만들어본 적이 있었던 부채였다. 종이를 앞 뒤로 여러 번 접어 만들었던 주름진 부채. 그렇게 만들어진 주름으로 작은 바람을 만들어내 부쳐보곤 했던 부채. 주름이 많을수록 더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어린시절 나는 종이부채를 꾸깃꾸깃할 정도로 접고 또 접어 최대한 많은 주름을 만들어 내곤 했다.


구김살이 없는 종이 부채는 바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접히고 또 접힌 구김살 많은 부채일수록 더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번 접은 부채보다는 두 번 접은 부채가, 두 번 접은 부채보다는 세 번 접은 부채가 더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혹시 사람도 더 많이 접혀 본 사람이 자기만의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구김살 있이 자랐다. 그래서 구김살 없이 자란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해맑은 에너지를 통해 기쁨을 전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구김살 없이 자라지는 못한 사람이라면 나는 구김살 없는 모습을 동경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가진 구김살에 당당해지고 싶었다.

누구나 치열하고 조금은 지치는 삶 속에서 저마다 자기만의 구김살을 가지고 살아간다.구김살은 감춰야 되는 모난 모습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잘 견뎌내 온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대견한 흔적이다. 그렇기에 힘들게 잘 버텨온 그 모진 시간이 남긴 나만의 구김살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어야 한다.

구김살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나의 구김살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것. 자기의 구김살까지도 사랑하겠다는 노력을 들이겠다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아픈 시간을 외면하지 않고 잘 다독여주겠다는 것을 의미할 테다.


구김살 있었던 나의 모든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구김살 있이 컸기에 오히려 더 반듯해질 수 있었다. 구김살 없는 아이들의 해맑음이 내게 많은 순간 기쁨이 되어준 것과 달리 해맑지 않은 내 구김살은 누군가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전해주지는 못할 테지만 내 구김살도 누군가에게 위로는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해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웃음을 잃지도 않았었던 그 누군가의 구김살 많은 모습에 나 역시 많은 순간 위로받았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기쁨은 되지 못해도 해맑지 않은 위로는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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