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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나의 어린시절, 나의 어른들

추억은 사사롭기에 더욱 강하게 기억된다

아마 내가 9살 때 쯤 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8살보다는 많았던 것 같고 11살보다는 어렸을 때인 것 같으니 아마 내가 지금의 욱이 나이였을 때 쯤 이었던 것 같다.


9살, 10살이었던 그 무렵 나는 이모, 이모부와 처음으로 남이섬에 왔었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남이섬을 찾았을 때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어린시절 이모, 이모부와 함께 왔던 남이섬에 대한 기억은 밀랍인형 박물관에서 보았던 실제 사람들 같아 신기해했던 밀랍인형들에 대한 기억이 전부이다. 


하지만 기억은 흐릿하게 남아있지만 처음 타보는 배에 설레어 했던 감정과 배에서 내려 처음으로 섬이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신기하고 신났던 기분은 여전히 선명히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러 9살 때 처음 남이섬에 왔었던 나는 25살이 되어 9살, 12살이 된 사촌동생들과 또 그 아이들의 부모이자 나의 이모, 이모부인 어른들과 함께 다시 이 곳을 찾았다.


남이섬에서 한창 시간을 보내던 중 이모부는 내게 “주연아 너 여기 예전에 이모부랑 왔었던 거 기억나?”라는 질문을 하셨다.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인지 쑥스러워 그저 “네”라는 대답만 했을 뿐 더 많은 말을 잇지는 못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종종 내가 혼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혼자인 것 같은 순간에도 혼자이지만은 않았었다. 나는 내 어린시절을 찬찬히 들여 다 봐준 어른들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저 잊고 지냈을 뿐이었다. 나조차 잊어버려 흐릿해진 내 어린시절을 여전히 나보다도 더 선명하게 기억하며 간직해주고 있는 어른들이 내 곁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어린시절이 나에게 따뜻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 시절 내 곁에도 나를 위해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었던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 그런 어른들이 있었다는 것, 그랬기에 내가 어른이 된 지금 내 어린시절을 이렇게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고마움이 느껴졌을 때 나는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모부가 내게 넌지시 던졌던 “주연아 너 여기 예전에 이모부랑 왔었던 거 기억나?”라는 질문처럼, 이모부의 질문에 “에이 뭘 그런 걸 물어봐”라며 이모부에게 핀잔을 주던 이모처럼 어른들은 티 내지 않았지만 조용히 내 성장을 지켜봐 오고 있었다. 어린시절 내 곁에도 이런 어른들이 있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지금도 여전히 내 곁에 계셔 주신다. 


10살이던 내가 25살이 되어 이제 막 10살인 된 당신들의 아이들과 함께 다시 남이섬을 찾았을 때, 이모와 이모부는 어떤 기분을 느끼셨을까. 


어렸을 적 나를 당신의 무릎에 뉘여 놓고 내 귀지를 파주던 이모, 매번 놀러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 주셨던 이모부. 그 사소하지만 진한 애정으로부터 나온 어른들의 행동이 내 어린시절을 사랑으로 채워주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여전히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계셔 주신다. 가끔가다 다 큰 조카의 귀지를 거리낌없이 파주겠다며 자신의 무릎에 나를 뉘이는 이모처럼, 내 생일에 고기를 듬뿍 넣어 미역국을 직접 끓여 주신 이모부처럼. 


여전히 내 귀지를 파주겠다고 하는 이모에게서 나는 어린시절의 이모를 다시 추억하게 되고, 내 생일이라고 정성껏 미역국을 끓여 주시는 이모부에게서도 어린시절 늘 맛있는 음식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던 이모부를 다시 추억하게 된다. 추억은 원래 사사로운 것이고 사사롭기에 더욱 강하게 기억된다. 


찬이와 나는 오늘 남이섬에서 함께 2인용 자전거를 탔다. 이 기억이 찬이에게도 언젠간 기억 속 서랍에 들어가 꽤 오랜 시간 묻혀져 있을 기억이 되겠지만, 이모부가 내게 했던 질문처럼 언젠가 나도 찬이에게 “찬아 우리 예전에 남이섬 왔었던 거 기억나? 그때 우리 자전거 같이 탔던 거”라는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찬이에게도 지금의 시간이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이 이 아이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추억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어른들이 내 어린시절에 따뜻한 추억을 선물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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