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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마지막 수업

아름다운 아이

마지막이라고 울 줄은 몰랐다. 2020년 12월 27일 일요일 오늘은 찬이의 공부를 봐주는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은 영화 ‘원더’의 원작 소설인 ‘아름다운 아이’ 책을 읽고 찬이와 생각을 나누는 수업을 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했고 수업이 다 끝난 이후에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평범한 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는 지금처럼 자주 오지는 못하겠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놀러 오겠다는 말을 전하며 그렇게 나는 우리의 지난 1년 여 간의 수업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주말마다 조금은 더 쉴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수업을 그만 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다시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아이들을 보러 한 달에 한 번 씩은 놀러간다고 했으니 아이들이 그립게 느껴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섭섭하다거나 아쉽다기보다는 개인 시간이 더 많이 생기게 됐다는 마음에 홀가분한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그렇게 나는 마무리를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하며 지난 시간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돌아보았다. 찬이와 수업을 하면서 나는 찬이에게 참 많이 화를 냈었다. 조금 더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찬이가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찬이에 대한 애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이 아이에게 유독 더 화를 많이 내곤 했다. 그건 여전히 내가 참 많이도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찬이와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이제 찬이에게 더 이상 공부 때문에 화를 낼 일은 없겠지. 다행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다시는 찬이와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나게 될 일은 없을테니 이 아이에게 화를 낼 일도 없게 됐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 밑바닥까지의 모

습을 참 많이도 보였던 찬이에겐 그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함께 공부를 하면서 화도 참 여러 번 냈고 이 아이를 울리기도 했다. 내 성질을 못 이기고 이 아이에게 화를 내고 결국엔 이 아이를 울리게까지 하고 났을 때 나는 항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안함에 더 큰 자괴감에 시달리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럴 일이 없어서 좋았다. 이제는 그저 언니로서의 역할만 하면 되니까. 혼내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고 그저 응원만 해주면 되니까. 찬이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버렸다. 여전히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을 것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겠지만 그때의 우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살 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문득 정말 오늘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함께 지지고 볶으며 아이들의 어린시절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그 안에서 내가 너무나도 따뜻했고 행복했던 그 시간이 오늘로써 마지막이었다는 생각에 갑자기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꿀벌 내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욱이의 모습, 늘 잠에 들어있는 내가 깰까봐 욱이를 조용히 시키던 찬희의 작은 목소리, 우리가 밤마다 함께 걸었던 산책길, 욱이가 많이 좋아했던 숨바꼭질, 그 안에서 우리가 주고 받았던 작고 귀여웠던 여러 말들이, 아이들의 얼굴이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졌다. 


우리는 앞으로도 언제든 만날 수 있겠지만 그 때의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테니까. 그때의 우리들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테니까. 그리고 슬프게도 그 유일한 기억조차 언젠가는 옅어질 테니까. 갑자기 그 사실이 너무 슬퍼졌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그 시절이, 옅어질 그 기억들이 사라져버리고 있는 것 같아서 울음이 났다.나를 살게 했던 시간들이었기에, 나에게는 생각만해도 너무 고마워서 가슴이 저릿해지는 시간들이었기에. 

어른이인 내가 어린이인 아이들을 돌봤던 시간이 아니라 사실은 어린이인 아이들이 아직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인 나를 참 살뜰이도 돌봐주었던 시간이었기에. 


마지막 날까지도 나에게 고맙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아이들이었다. 찬이에게 우리의 마지막 수업은 '아름다운 아이'의 어기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우리의 마지막 수업은 나의 아름다운 아이였던 찬이와 욱이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났다. 



P.S 찬

찬아 무수히 많은 순간 나는 너에게 고마웠어. 이모부가 차로 나를 집에 데려다 주던 수많은 날들에 차 안에서 들리던 큰 라디오 소리보다도 내 마음에 더 크게 들렸던 건 작게 소곤대던 너의 목소리였어. “자잖아. 소리 좀 작게해” 나를 생각해주는 너의 그 사소한 말들이 내게는 그 어떤 소리보다도 크게 들렸어. 때론 너의 그 사소한 말에 눈물이 날 정도로. 나는 너의 어린시절을 잊지 못할 거야. 언제나 너의 작은 목소리를 가장 크게 들으려 하는 내가 될게. 너는 내 삶에 다시 온기를 가져다준 사람이었어.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너무 포근했어. 

정말 고마워 찬아. 


P.S 욱이

욱아 꿀벌 내복을 입고 항상 내 무릎에 앉고는 했던 너를, 무당벌레 내복을 입고 내 무릎에 앉아 나에게 푹 기대던 너의 온기를 잊지 않을게. 너와 함께했던 날들이 내게는 모두 '재미있는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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