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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마음을 드려요

사랑: 상처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준다는 건 그 사람으로 인한 상처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처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그 마음이 내게는 사랑이었다.

 

그동안 나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그 누구도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이 아이들을 통해 용기를 내어 사랑을 건네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됐다. 이 아이들에게 만큼은 상처 받을까 두렵다는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그 어떤 경계도 없이 내 솔직한 마음을 전부 내어줄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들이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나 내게 상처를 주게 되더라도, 그 상처에 내가 아파하게 되더라도, 그 상처까지 기꺼이 감내해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 이 아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큰 가치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주는 일이 결국엔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아이들이었다.

 

사람들은 때로 친밀한 관계에서 친하다는 이유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친해진 만큼 무례함에 있어 헐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와 깊이 친해지는 게 어려웠다. 서로에게 상처를 허용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는 게 어려웠고, 때론 겁났으며, 친하다는 이유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강했다.

 

누군가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내게 무심결에 건넬 무신경한 말들이 줄 상처들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단단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그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상처를 주지 못하도록 나만의 단단한 벽을 견고히 세워왔다.


그건 지독한 방어기제였다.

 

그런 노력 끝에 나는 많은 사람들과 서로 ‘고운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운 정’을 넘어서 ‘미운 정’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편한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 가장 좋은 사람은 편한 사람일 텐데 말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고운 정 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미운 정을 공유하는 관계를 원했다. 하지만 그런 편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기에 나는 너무 오랜 기간 그 누구에게도 나에 대한 미운 정이 쌓일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참 많이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를 방어하는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써왔고 그렇게 견고히 세운 나만의 벽 뒤에서 나는 때때로 외로워했다.

 

나는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상처를 주지 못하도록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절히 잘 통제해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나는 그저 모든 관계를 부자연스럽게 막아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나의 지독한 방어기제를 허물어준 것이 아이들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인간이었던 나에게 아이들은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사랑을 건네는 법에 대해 알게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스물 다섯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데에 있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친하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가할 수도 있는 상처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줄어들었다.

나는 너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고, 나는 그런 걸로 상처받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방어적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것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방어기제를 허물어 준 이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사랑을 전한다. 시간이 더 흐르고, 언젠가 우리의 사이가 지금과 같지 않게 되는 때가 오더라도 언제나 나는 너희들의 근처에서 편하고 만만한 ‘주식이’로 존재하겠다고 약속한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것이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에는 아이들이 지금처럼 나를 찾거나 필요로 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나는 그저 아이들이 나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게 될 그날까지 아이들의 흥미를 채워주며 즐거운 기억들만을 남겨주면 그 뿐이다. 내 역할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먼 훗날 자신의 어린시절을 추억하게 되었을 때 나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통해 잠시 웃음지을 수 있게 하는 것, 지금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 뿐이다.  

 

한 친구는 어차피 어린 시절이 지나면 기억도 잘 나지 않을 텐데,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크면 나이 차이가 많은 사촌 언니 하고는 어색해지고 서먹해질 텐데 뭐하러 그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지극 정성이냐고도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흐릿하게 잊혀지더라도 지워지지는 않는 것처럼, 그 언젠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릴 때 아이들이 나와 보냈던 시간들을 통해 흐릿하게나마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의 나처럼 이 아이들에게도 혼란스러운 어른이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나와 함께 보낸 기억들로 잠시나마 즐거워질 수 있다면, 그게 나에게도 큰 기쁨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의 소중한 어린시절에 ‘주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내게도 큰 행복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먼 미래에 어른이 되어 있을 이 아이들에게 흐릿하게 남아있을 어린시절의 기억을 보다 선명하게 다시 떠올려볼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지금 이 아이들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을 기록해 놓는다. 어린시절에 대한 흐릿한 잔상이, 그때의 따뜻한 기억들이 어른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꽤 오래 든든한 힘이 되어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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